기사입력시간 18.06.27 05:24최종 업데이트 18.06.2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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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연명의료 거부했지만 3주간 고통 받다 떠난 환자

허대석 교수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유명무실한 자기결정권"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황재희 기자]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벌써 5개월에 이르고 있지만, 여전히 존엄한 죽음을 맞기란 어려워 보인다. 현장의 의료진들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하고,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자 만든 연명의료결정법의 취지가 무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의대 내과 허대석 교수는 2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의 문제점을 밝히며, 최근 겪은 사연을 소개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환자가 서울대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을 받은 뒤 3주 간 중환자실에 머물다 사망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가족들의 동의를 받지 못하고 연명치료를 한  이 사건이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맹점을 그대로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몇 주 전 한 요양병원에서 70대 후반의 환자가 기관지삽관 상태로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이 환자는 10년 전 편도선암으로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받고 문제없이 지냈지만 올해 초 가슴통증으로 병원을 내원했다 폐암판정을 받았다.
 
폐암은 이미 뼈와 간으로 전이됐고, 환자는 항암제치료만 받았다. 그러던 중 거동이 힘들어져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환자는 3차 항암제치료를 받은 뒤 폐렴 의심소견을 받았고,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결국 그는 의식이 저하되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맥박이 거의 잡히지 않았고, 요양병원 당직의사는 심폐소생술을 15분간 실시하고 기관지삽관을 했다.
 
당시 당직의사는 요양병원에 인공호흡기가 없어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당직의사는 구급차를 불러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전원 보냈고, 서울대병원 응급실 의료진은 환자에게 인공호흡기 등의 연명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폐암으로 진단받은 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환자였다. 해당 환자의 의향서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전산망에도 등록된 상태였다.
 
허 교수는 "환자는 사망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인공호흡기를 중단하고 편안히 임종을 보낼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3주간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여러 가지 연명의료를 받다 고통스럽게 사망했다"고 말했다.
 
당시 환자의 보호자들은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고 요양병원 당직의사에게 구두로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직의사는 임종기 환자에게 CPR과 기관지삽관을 실시했다. 환자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연명의료중단등결정·이행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의료기관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원 내에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를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등록해야 한다. 윤리위원회의 위원은 위원장 1명을 포함해 5명 이상으로 구성하되, 해당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사람으로만 구성할 수 없으며, 의료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종교계·법조계·윤리학계·시민단체 등의 추천을 받은 사람 2명 이상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윤리위원회를 둔 의료기관은 상급종합병원 95%, 종합병원 23%, 병원급 0.3%, 요양병원 0.9%수준에 불과하다.
 
허 교수는 "해당 환자가 입원 중이던 요양병원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물론 없었고, 결국 당직의사는 환자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확인할 법적 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환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CPR을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당시 환자의 보호자인 가족들도 나서서 연명의료를 중단하자는 의견을 주도적으로 제안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도 환자가 임종기이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썼음에도 환자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표현하지 않아 의료진이 강제로 중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환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가족들이 중단결정에 미온적이었다"며 "이번 사안은 윤리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됐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냈다. 그러나 문제는 환자 가족의 협조 없이 강제 집행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정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로 본인 의사를 문서화하면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고 편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의료기관중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여부를 전산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병원은 4.3%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요양병원이나 호스피스와 같은 작은 규모의 의료기관은 윤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러한 절차를 밟는 곳은 없다. 위원회가 없는 의료기관이라도 의향서를 열람할 권한을 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허 교수는 지난 25일 국회 최도자 의원(바른미래당)이 발의한 연명의료 중단 시 동의하는 가족의 범위를 조정하는 법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현행법에 따르면 임종과정에 있지만 스스로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의 환자는 환자가족 전원이 연명의료에 합의해야 이를 중단할 수 있다. 최 의원은 가족의 범위를 전원이 아닌 배우자와 1촌 이내의 직계 존·비속으로 한정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허 교수는 "해당 조치는 궁극적으로 답이 될 수 없다. 요즘 가족의 구성원과 범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심지어 가족의 범위를 친족에 국한하지도 않는다"며 "환자를 위해 보편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굳이 직계가족이 아니더라도 가장 가까운 사람이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만의 경우 가족이라도 가까운 순위를 정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진료현장에서 입법취지를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며 "관련 절차를 합리적으로 수정해 말기 환자들이 불필요한 고통을 겪으며 임종하는 일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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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희 기자 (jhhwang@medigatenews.com)필요한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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