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의사집단은 인공지능에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는 의사와 인공지능의 지시대로 진료하는 의사로 나눠질 것이다."
연세의대 전우택(의학교육과) 교수는 대한의학회가 발행하는 e-뉴스레터 최신호에 '의학교육의 변화와 과제-하버드의대를 통해 본 새로운 의학교육의 변화'를 게재하면서 미래 의료를 이렇게 전망했다.
전우택 교수에 따르면 하버드의대는 2019년부터 새로운 커리큘럼을 도입하는데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교육 기간 배치를 변경해 1학년 때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에 대한 강의를 모두 끝내고, 2학년 때 임상실습을 도는데 한 환자를 장기간 follow up 하면서 병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보게 하며, 3~4학년은 집중적이고 심화된 학습과 연구(focused, advanced studies and research)를 한다.
또 MD program 등 학생들의 연구력을 높일 수 있는 강력한 프로그램을 트랙으로 도입하고, 새로운 학습방법, 즉 Flipped Learning(온라인을 통한 선행학습 뒤 오프라인 강의를 통해 교수와 토론식 강의를 진행하는 역진행 수업 방식)을 전면 도입했다.
전우택 교수는 "교수는 수업 시간에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강의를 더 이상 하지 않고, 학생들은 수업에 들어오기 전에 사전 제작된 동영상 및 과제물을 통해 먼저 스스로 학습하게 한 뒤 수업 시간에는 소그룹으로 나눠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한 지식 적용 토론을 하고, 교수는 그런 토론을 지도하고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왜 하버드의대는 이런 급진적인 교육 변화를 꾀하고, 이는 미래 의학교육의 어떤 점을 시사하는 것일까?
전 교수는 "이는 의사가 가져야 하는 의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과 형식이 완전히 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환기시켰다.
지금까지 유능한 의사, 명의가 되는 방법은 교과서의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잘 기억하고, 최신 논문들을 부지런히 읽어 알고, 많은 개인적 임상 경험을 통한 임상적 분별력과 지혜를 가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발전과 의료계의 적용은 이런 과거의 틀을 근본적으로 완전히 바꾸게 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교과서적 지식을 기억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고 단언했다.
인공지능은 인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이미 완벽하게 모든 지식을 저장해 가지고 있으며, 한 명의 의사가 가졌던 임상 경험을 토대로 하는 판단이 아니라, 수많은 의사들과 의료기관들의 임상 경험을 빅데이터로 정리해 그 중 최상의 결정을 판단하고 선택하게 한다.
전 교수는 "이런 세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미래 의사들을 교육하는 의대의 교육 방식도 혁명적 변화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면서 "기본적 개념을 이해한 다음 바로 문제 해결을 위해 기존의 지식과 정보를 어떻게 불러내고, 변형해 적용하는지를 스스로 익히도록 하는 것으로 교육의 본질이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 교수는 "미래 의사는 완전히 두 종류의 직종으로 나뉠 것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즉, 인공지능이 지시하는 대로 환자에게 진료를 제공하는 의사집단과 그 인공지능에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입력시키는 의사집단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좀 더 극단적인 표현을 한다면 '인공지능에 지배 받는 의사들과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의사'로 나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 교수는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 의사들은 그 전문성을 점점 더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간호사, 간호조무사, 약사, 간병인, 사회복지사 등과 일정 부분 겹치는 역할로 갈등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반대로,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의사들은 기존의 의사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더 큰 사회적, 의학적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전 교수는 "그들이 인공지능에 입력하는 내용이 한 국가와 전 세계의 의학과 의료를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그래서 제대로 된 좋은 연구를 통해 의미 있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의학교육의 경쟁 내용이 될 것이고, 하버드의대는 그것을 의식하고 변화해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전 교수는 “(하버드의대의 시도는) 의료-인간-사회라는 세 주제가 삼각형 모형으로 서로 이어져 있는 것에 대한 본질적 이해와 그 처리 능력을 갖도록 하는 교육으로 가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임상 실습시 더 다양하고 많은 환자들을 보는 게 중요하지 않고, 한 명의 환자가 처음 외래를 방문한 후 진료, 검사, 수술을 받고, 퇴원해 다시 외래를 다니는 전 과정을 학생 한 명이 전담해 체험하는 과정 속에서 환자의 심리적 갈등, 가족과의 관계 변화, 진료비를 지불하도록 하는 사회 시스템과 제도 등에 대해 배우도록 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강의 시간에 간단히 듣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환자 곁에서 진짜 실제 상황을 같이 겪도록 하는 이런 교육이 의대생들로 하여금 의료와 의학의 진정한 '인간(인문)-사회-의과학의 복합성'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우택 교수는 "이미 미국 의대들은 소위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사회에 대응하는 의학교육으로 혁명적 변화를 시작했다"면서 "이제 전 세계, 각 영역으로 밀려들어오는 4차 산업혁명에서 우리나라가 먼저 대응하고 주도하는 능력을 보일 수 있느냐에 우리 민족의 미래가 달려 있다"며 변화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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