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조현병에 대한 선입견과 무지가 조현병 환자의 치료를 기피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사회가 조현병 등 정신질환에 편견을 버리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조현병학회는 9일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사회적 측면에서 조현병의 치료: 현황과 개선 전략'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한국사회 내 조현병에 관련된 문제점과 이에 대한 개선방향이 논의됐다.
한국 치료 시스템 밖에 방치된 조현병 환자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정석 교수는 한국의 의료시스템 안에서 집계되지 않는 조현병 환자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 교수는 "조현병 유병률은 전 세계 어디서나 1%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에 50만명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통계에 집계된 조현병 환자수는 약 10만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은 지역에 거주하는 조현병 환자를 집계한 결과 유병률(18~64세)이 0.16%로 핀란드(0.87%)에 비해 매우 낮게 나왔다. 의료기관에 입원 중인 조현병 환자를 포함하더라도 유병률은 0.28%밖에 되지 않는다"며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조현병 환자가 많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초발 정신질환 치료 현황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2006~2007년 처음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의료기관을 이용한 사람(13~64세)은 2만8095명이었다"며 "이 중 조현병은 1만6239명으로 전체의 58%를 차지했다. 조현병이 그만큼 흔한 질병이라는 뜻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들을 대상으로 약을 얼마나 잘 처방 받는지 약물순응도를 분석했다. 처음 정신질환 발생 후 1년간 약물 순응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소득수준이 낮고 연령이 낮을수록 환자가 약을 처방받는 비율은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조현병이 처음 발생한 환자는 20~30대가 제일 많았다. 이는 기존의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며 "연령 별로는 특히 20대의 약물 순응도가 낮았다. 연령이 증가할수록 순응도가 점차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소득 수준 별로는 소득수준이 낮고 연령이 낮을수록 약물 순응도는 낮은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조현병 환자의 의료비용은 병원에 자주 오지 않은 사람이 많이 지출했다. 평소 약을 처방받지 않은 조현병 환자가 입원일수도 많고 그에 따라 진료비도 높았다. 초기에 관리가 잘 안된 조현병 환자가 점차 중증이 심화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평소 약 처방을 받던 환자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약을 처방받으러 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조현병 환자 특히 처음 조현병이 발생한 환자들이 한국 치료 시스템에 들어와 있지 않다"며 "이는 사회적으로 꼭 해결해야할 문제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보낸 조현병 환자 지역사회는 낙인 찍어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준호 교수는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으로 조현병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지역사회로 나가서 방치될 가능성에 대해 짚었다.
최 교수는 "정부는 인권을 이유로 병원 밖으로 조현병 환자를 지역사회로 내보내려고 하고 사회는 낙인을 찍어 조현병 환자가 치료를 기피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하는 문제가 가장 크고 장기적인 과제다"며 "지난해 우리나라는 정신질환자의 불필요한 입원을 줄이고 환자 인권을 보호하는 취지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 제도가 강제 입원을 어렵게 만들고 치료가 더 필요한 환자를 퇴원시키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의사를 왜 정신질환자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으로 보는지 모르겠다. 이런 인식 차이를 극복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강제입원이 필요한 때에 강제입원을 하지 않고 지역사회에 환자를 내보내는 일이 꼭 환자의 치료에 좋은 것만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를 거쳐 부적합 판정된 115명이 최근에 강제퇴원 됐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퇴원은 환자에게도 당혹스러울 수 있다"며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능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지난해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이후 자의입원 비율이 약 20%p 이상 증가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역으로 비자의입원 비율이 약 20%p 떨어졌다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정작 사회에서는 조현병을 포함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공포증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며 "엽기적인 강력범죄가 발생하면 정신질환자라는 기사가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진단을 하면 정신질환자가 아닌 경우가 대다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의 범죄자를 아직도 정신질환자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한 쪽 팔과 다리가 불편한 뇌 병변 장애를 앓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호주에서 수용시설이 점차 사라지고 지역사회 정신건강 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정신질환자들이 응급실로 밀려들었다. 하지만 응급실은 정신질환자에게 적합한 곳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호주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1년부터 4000억원을 들여 정신건강조기중재센터를 설립했다. 또 2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정신보건 개혁을 시행했다"며 "우리도 정부가 투자해 정신질환자를 위한 정신건강센터 등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입견 보도 자제하고 친근한 콘텐츠 개발 투자해야
용인정신병원 이유상 진료과장은 조현병의 선입견을 양산하는 언론보도를 지적하며 대중문화 콘텐츠를 개발해 조현병 등 정신질환의 사회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장은 "영국의 국가보건의료서비스의 정신건강 수장인 팀 켄달은 '치료를 제공하는 사회가 아니라 치료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며 "이는 사회가 그 자체로 정신건강의 치료를 돕는 분위기여야 한다는 뜻이다"고 말했다.
이 진료과장은 "조현병은 다른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다.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감기 같은 병이다"며 "암은 과거에는 불치병이었지만 조기에 발견하면 만성질환이 된다. 이처럼 조현병도 절대 나을 수 없다는 편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최근 강력범죄 언론 기사를 보면 조현병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닌데 범죄 혐의자가 조현병이라고 단정한다. 언론사가 클릭수를 높이기 위해 조현병을 이용하는 것이다"며 "조현병 환자라고 하더라도 범죄가 병에 의한 것인지 다른 요인에 의해 발생했는지는 살펴봐야하는 문제인데 이런 고민은 없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조현병에 대한 편견은 환자들이 병을 감추고 치료를 기피하도록 부추긴다. 이는 결국 사회에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과장은 "조현병을 기사에 쓸 때는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으면 좋겠다. 밝혀지지 않았다면 조현병 언급을 말아야 한다"며 "만약 조현병을 쓴다면 근거를 제시하고 또 여태 환자가 어떻게 관리돼 왔는지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과장은 "사람은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고유의 존재다"며 "특히 정신질환의 여러 증상은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누구도 정신질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사회가 이를 따뜻하게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중세 시대에는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마녀 사냥이 있었다. 오늘날 조현병 환자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와 분노가 사회가 건강하지 못해 사람들이 가지는 불안이 투영된 결과는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영국과 캐나다에서는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에 대한 선입견을 완화하기 위한 투자가 활발한다. 라디오 프로그램,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도 한다"며 "우리도 편견을 조장하는 언론 보도를 지양하고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정신질환의 이해와 공감을 키우는 콘텐츠가 활발하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국내 보건 예산 중 정신보건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0.59%에 불과하다. 2018년 복지부 총 예산 63조 1000억원 대비 정신보건 예산은 600억에 불과하다"며 "이는 OECD 국가 평균 정신보건 예산 비중인 6%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이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정부가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조현병에 대한 선입견으로 생긴 대중의 공포와 분노가 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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