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악질 범죄에서 심신미약의 기준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견을 참고해서 결정해야 한다. 범죄자가 심신미약이란 이유로 죄질에 비해 가벼운 감형을 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병원에서 근무하는 봉직의사들의 단체인 대한병원의사협회와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21일 서울 강서구에서 일어난 강력범죄에 대한 입장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14일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 SNS와 언론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를 매우 잔인하게 칼로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봉직의들은 “가해자는 평소 우울증으로 약을 복용해왔다. 이 때문에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되는 것이 아닌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우울증을 심신미약으로 해석하지 말아달라는 국민청원은 21일 75만명을 돌파했다.
봉직의들은 “불의의 사건으로 젊은 생을 마감한 피해자와 유가족들께 깊은 위로와 조의를 표한다.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사로서, 또래의 자녀를 둔 부모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이어 “최근 몇 년간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 범죄들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 불행하게도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기 전에 자극적인 보도와 소문이 확산하고 있다. 사건과 관계없는 다른 선량한 정신질환자들이 오해와 편견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봉직의들은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과 심신미약 상태는 전혀 다른 의미다. 기본적으로 심신미약이란 형법상의 개념으로 정신의학이 아닌 법률상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봉직의들은 “중대한 범죄는 사회의 안전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엄중히 처벌받아야 한다. 심신미약 상태의 결정은 단순히 정신질환의 유무가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과 심도 있는 정신감정을 거쳐 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려야 한다. 정신감정은 매우 전문적이고 특수한 과정을 거친다. 정신질환과 심신미약은 동일선상에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다.
봉직의들은 “현재 가해자는 심신미약의 여부는 물론, 정신감정을 통한 정확한 진단조차 내려지지 않았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가해자의 범죄행위가 정신질환에 의한 것이라거나, 우울증과 심신미약을 혼동해 마치 감형의 수단처럼 비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많은 이들에 대한 또 하나의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신질환 자체가 범죄의 원인이 아니며 범죄를 정당화하는 수단은 더욱 아니다. 치료받아야 하는 정신질환이 있다면 치료를 받게 하고 처벌받아야 할 범죄가 있다면 처벌해야 한다”라며 “이 과정에서 정신질환자들이 불필요하게 잘못된 편견과 낙인에 노출되지 않도록 더욱 신중하고 사실관계에 입각한 보도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봉직의들은 “작은 오해가 커다란 편견을 만들고 편견은 환우를 더욱 아프게 한다.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는 작은 오해를 거두는 것에서 시작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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