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자 발표 225건 중 대한항암요법연구회 회원 참여 연구 60건…"세계 무대에서 존재감 커져"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종양내과 안호정 교수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유방암, 폐 육종암(PSC), 대장암 등 다양한 암종을 다룬 국내 연구 성과가 최근 개최된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ASCO 2025) 무대에서 소개됐다. 이번 행사에서 발표된 국내 연구자의 구연·포스터는 총 225건으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KCSG)는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ASCO 2025에서의 주요 연구 성과를 공유했다. 이날 발표에 나선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종양내과 안호정 교수는 KCSG 회원이 제1저자 또는 발표자로 참여한 연구는 60건에 달하며, KCSG 주도 임상은 4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이 주도한 임상연구들이 단순한 참여 수준을 넘어 세계적 주제 발표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며 "정밀의료와 병용요법 전략 등 다양한 접근이 현실적 치료 옵션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가장 주목을 받은 연구는 연세암병원 손주혁 교수가 발표한 '삼중 양성 유방암환자의 1차 치료로서 리보시클립·트라스투주맙·호르몬치료 병용요법'의 1B상 및 2상 연구다.
현재 HER2 양성 유방암의 표준치료는 세포독성항암제와 HER2 표적 치료제인 트라스트주맙, 퍼투주맙을 병용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HER2 표적치료제인 트라스트주맙과 CDK4/6 억제제 리보시클립, 아로마타제 억제제인 레트로졸을 병용 투여했다. 그 결과 무진행 생존기간(PFS)은 30.4개월, 객관적 반응률(ORR)은 61.1%로 나타났다.
안 교수는 "전체 유방암 환자의 20%가 HER2 양성 유방암 환자다. 이 중 10%는 HER2와 호르몬수용체 모두 양성을 띈다"며 "그동안은 세포독성항암제에 의존한 치료가 일반적이었다. 이번 연구를 통해 HER2 양성이면서 동시에 호르몬수용체도 양성이라면, 세포독성항암제를 생략하고 HER2 표적치료제와 호르몬 치료에 CDK4/6 억제제를 병합할 수 있음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고대안암병원 박경화 교수의 '2회 이상 HER2 표적 치료 이후 진행한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서 트라스투주맙-pkrb와 게다톨리십 병용요법' 2상 임상연구를 소개했다.
해당 연구는 대한항암요법연구회 유방암 분과에서 다기관, 연구자 주도로 진행된 연구로, PI3K 신호전달체계와 HER2를 동시에 차단해 암세포 성장 억제를 유도하는 전략이 환자에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실험실 연구를 바탕으로 기획됐다.
연구팀은 2가지 이상의 HER2 표적 항암제 치료에 실패한 환자에서 트라스투주맙 바이오시밀러와 게다톨리십 병용요법을 통해 반응률 43.5%, 중앙 무진행생존기간 5.8개월, 중앙 전체 생존기간(OS) 18.4개월로 고무적인 효과를 입증했다.
안 교수는 "이미 두 가지 이상의 HER2 표적 치료를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했음에도 우수한 반응을 보인 점에 의미가 있다"며 "향후 2회 이상의 HER2 표적치료에 실패하고 PI3K/AKT 경로에 돌연변이가 존재하는 HER2 양성 유방암 환자군에서 PI3K 경로와 HER2 경로를 동시에 억제하는 치료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강조했다.
대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도 주목받았다. 국립암센터 차용준 교수는 '대장암 환자에서 순환 종양 DNA(ctDNA) 기반 보조 항암치료 플랫폼 연구'를 통해 수술 후 미세잔존암(MRD) 상태에 따라 보조항암치료 강도를 조절하는 전략을 제안했다.
미세잔존암 양성 환자에게는 강화요법을, 음성 환자에게는 저강도 치료 경과 관찰을 진행하며 정밀의료 가능성을 확인했다.
안 교수는 "수술한 대장암 환자가 고위험 2·3기로 최종 진단되면 3개월 동안은 표준 2제 보조항암치료를 한다. 그 사이에 미세잔존암이 없으면 연구자 판단에 따라 추가 치료를 결정한다. 하지만 미세잔존암이 양성인 경우에는 다르다"며 "이러한 환자에게 표준 2제 보조항암치료 대비 3제 강화요법의 3년 무재발생존률 향상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다"고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해당 연구는 630명의 스크리닝을 완료했다. 이 중 99명이 실제 강화요법 혹은 표준치료군으로 배정됐으며, 향후 대장암 보조항암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지 결과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서울대병원 김범석·김미소 교수는 '재발성/전이성 폐 육종양암(PSC) 환자 대상 더발루맙·독소루비신·이포스파미드 병용요법'을 평가했다. 연구 결과 객관적 반응률은 35%, 전체생존기간은 9.4개월로 나타났다.
안 교수는 "PSC는 치료가 상당히 제한적"이라며 "더발루맙·독소루비신·이포스파미드 병용요법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응률을 보여 면역항암제 기반 병용요법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향후 표준치료 전략 수립을 위한 후속 연구가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성배 교수는 'HER2 음성 재발/전이성 유방암 환자에서 경구 파클리탁셀(DHP107)과 정맥 파클리탁셀 비교' 임상 3상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는 정맥주사 파클리탁셀의 한계점인 과민 반응 및 신경병증, 주 1회 주입을 위한 잦은 외래 방문 부담을 극복하기 위해 설계됐다.
연구 결과 경구용 파클리탁셀(DHP107)은 주 1회 정맥주사 파클리탁셀과 비교해 무진행 생존기간에서 비열등성(10.02개월 vs. 8.54개월), 객관적 반응률이 더 높음(45.8% vs. 39.7%)을 입증했다.
안 교수는 "경구 파클리탁셀은 주사제와 비교해 호중구 감소증이 높게 발생했으나, 말초신경병증 발생과 과민반응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HER2 음성 진행/전이성 유방암에서 경구 파클리탁셀은 주사 파클리탁셀과 비교해 효과적이고 편리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라선영 교수는 '진행/전이성 위식도 선암 환자에서 렌비티닙·펨브롤리주맙·기존 세포독성항암제 병용요법과 항암제 비교' 3상 무작위배정 임상 연구를 발표했다.
이는 기존 세포독성항암제(FOLFOX 또는 CAPOX)에 펨브롤리주맙과 렌바티닙을 병용했을 때 효과를 비교한 연구로, 면역항암제와 혈관생성억제제를 병용했을 때 항암효과의 시너지가 다양한 암종에서 보고된 것을 기반으로 이뤄졌다.
전 세계에서 880명이 등록된 이 연구는 1차 평가변수인 무진행 생존율(PD-L1 CPS ≥1 기준, 7.3개월 vs 6.9개월)과 2차 평가변수인 객관적 반응률(PD-L1 CPS ≥1 기준, 59.5% vs 45.4%)은 대조군 대비 치료군의 향상을 보여줬으나, 또 하나의 1차 평가변수인 전체생존율은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다(12.6개월 vs 12.9개월, HR=0.84).
안 교수는 "렌비티닙, 펨브롤리주맙, 항암제 병용요법은 항암제 단독군과 비교해 무진행생존기간을 유의하게 향상시켰으나 전체생존기간은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못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안 교수는 "2010년 ASCO에 처음 참가했을 당시에는 한국 연구자가 주도적으로 발표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장 큰 홀에서 주요 연구자로 발표에 나서는 경우가 흔해졌다"며 "한국 연구자 위상이 대단히 올라갔다는 것을 매년 실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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