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8.23 07:01최종 업데이트 23.08.2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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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 처리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정신과학회 경고 '현실화'…"비자의 입원 요건 개정해야"

현행법, 비자의 입원 시 '자‧타해 위험성'과 '치료 필요성' 모두 충족…학회 법 개정 당시 "치료 필요한 환자 방치돼 사회적 문제 발생" 예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잇단 '묻지마 범죄' 사건으로 현행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에 대한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해당 법은 개정 당시부터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비롯한 의학계 전문가의 의견을 배제한 채 19대 국회 임기 말인 2016년 5월 19일 졸속으로 처리돼 정신과 의료계로부터 강한 반발을 받은 바 있다.

당시 학회는 지나치게 엄격하게 바꾼 비자의 입원 요건과 지역사회 인프라에 대한 준비 없이 무작정 진행되는 탈원화 정책에 우려를 표하며 치료 시기를 놓친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회적 혼란을 예고한 바 있다.

그리고 학회가 우려했던 그대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자에 의한 각종 사회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재차 제기되고 있다.

지나친 '비자의 입원' 기준 강화로 환자 조기치료 막아…학회 후폭풍 예고했지만 강행

현 정신건강복지법은 보호자와 전문의 1인의 동의만으로 본인 의사와 무관한 비자의 입원을 허용하는 구 정신보건법이 환자의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개정됐다.

이에 따라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의 골자는 결국 비자의 입원을 강화하는 것으로 과거 가족 등 보호의무자 한 명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1인 진단으로 가능했던 강제입원을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 소속인 전문의 2인의 진단을 받아야 2주 이상 입원이 가능하도록 바꾸고,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모든 강제입원을 1개월 이내에 입원적합성 여부를 심사하도록 했다.

특히 비자의입원의 기준을 강화해 기존에는 자·타해 위험 또는 치료 필요성 둘 중 하나의 요건을 만족할 때 비자의 입원이 가능했던 것을 법 개정을 통해 두 가지 요건을 모두 만족해야 비자의 입원이 가능하도록 바꿔 자·타해 위험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 비자의 입원이 불가능해졌다.

물론 애초 법의 취지는 비자의 입원 대상 환자를 줄여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것이었으나 의료계는 입원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도 치료적 개입이 어려운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교실 윤제식, 김창윤 교수와 안준호 교수는 2018년 법 개정 이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학술지 JKNA에 '정신건강복지법 비판 : 비자의 입원 요건을 중심으로' 논문을 게재해 비자의 입원 강화로 인한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연구팀은 "망상과 환청이 있고 이상한 행동을 해도 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치료를 거부하면 자신이나 남을 해치지 않는 한 치료를 시작할 방법이 없다. 발병 초기에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호전될 수 있는데도 증상이 악화되어 자·타해 위험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치료적 개입이 가능하다"고 향후 발생할 위험을 경고했다.

신경정신의학회와 봉직의협회 역시 2017년 5월 30일 법 시행을 앞두고 기자회견과 법 재개정을 요구하는 국회토론회 등을 열어 해당 법이 시행되면 오히려 환자의 조기 치료를 막아 환자와 가족, 나아가 사회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해당 법의 재개정을 요구해왔다.

당시 정신보건법 대책 TFT 위원장이었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준수 교수는 법 재개정을 촉구하는 학회 기자간담회에서 "만약 해당 법안이 기존대로 5월 30일 시행된다면, 우리는 원칙대로, 법대로 움직일 것이다. 범법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해당 법이 불러일으킬 후폭풍들을 예고했으며, 그 때문에 일어날 문제에 관한 책임은 이를 무시한 정부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전문가 배제한 채 졸속 처리…지나치게 강화된 '비자의 입원' 요건, 개선해야 

이 같은 의료계의 우려와 경고에도 정부는 이미 국회를 통과한 법을 재개정할 수는 없다며 예정대로 2017년 5월 30일 재개정 없이 법을 시행했고, 최근 각종 사회 문제가 발생하며 의료계가 여고했던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이에 국회 보건의료발전연구회 정재훈 회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법 개정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은 "정신건강복지법은 처음 개정이 진행될 당시부터 잡음이 많았다. 법 개정 과정에서 학회를 비롯해 의료계 전문가 의견이 배제됐고, 충분한 논의 없이 본회의에 오른 뒤 정신건강복지법은 19대 국회 말 다른 법과 함께 졸속으로 처리됐다. 본회의 통과 이후 학회는 해당 법의 위해성을 경고하며 재개정을 요구했으나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법 개정 이후 2018년 故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 2019년 진주 방화 살인 사건, 2021년 남양주 조현병 존속살인 사건, 그리고 최근 서현역 묻지마 사건 이후 잇따라 발생하는 ‘묻지마 범죄’ 등 크고 작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사법입원제도를 고려하는 있지만 정 회장은 결국 현행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자의 입원의 요건인 자타해 위험과 치료 필요성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도록 하는 법을 개정해야 환자들이 중증정신질환으로 악화되지 않고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서현역 사건 역시 피의자가 조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았으나 3년 동안 방치 돼 은둔 생활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등 보호의무자가 사건 발생 전 강제로 환자를 입원시키려 해도 현행법 하에서는 자타해 위험이 없었기 때문에 치료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지역사회가 개입하려 해도 개인의 동의 없이는 입원이 불가하다. 만약 사법입원제도가 도입된다 해도 판사들은 법에 따라 해당 환자 퇴원 명령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긴급하게 입원이 필요한 환자도 현재의 보호의무자 2인 동의 규정이라는 까다로운 요건으로 입원이 지연되거나 거부되는 상황이 발생해 이것도 개선이 필요하다. 또 긴급한 상황에서 치료지연을 막기 위한 경찰 등에 의한 응급입원 역시 자‧타해 위험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로 인해 미래에 발생할 위험을 대비가 불가하다. 경찰로서는 인권 문제 등에 대한 우려로  자·타해 위험을 좁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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