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10.07 07:13최종 업데이트 22.10.0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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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업계 "정부 말로만 '바이오산업' 육성…가장 중요한 약가 정책은 제외"

"의약품 적정가 판매 수익으로 혁신신약 연구개발(R&D) 선순환해야 산업 지속가능한데, 현재 낮은 약가로는 불가능" 지적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정부가 지난 7월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5일 조규홍 장관 취임식과 6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업무보고 등을 통해 제약강국 도약을 천명했으나, 정작 산업계 요구도가 가장 크고 실효성 있는 '약가정책·제도'은 부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7일 제약업계는 이 같은 문제를 근거로 의약품 산업을 국가핵심전략산업으로 육성시키겠다는 정부 방침이 반쪽짜리에 그칠 것이란 우려를 제기하고 나섰다.

앞서 지난 7월 보건복지부는 바이오헬스산업을 국가핵심전략산업으로 육성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혁신 방안에 따르면 제약바이오산업은 감염병 등 질병 극복을 위해 필수적이며, 저성장 시기 경제성장을 견인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산업인 만큼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연구개발 지원, 투자 확대, 규제 혁신, 인력 양성 등 다방면에 걸친 실행방안을 제시했다. 

지난 5일 취임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추진할 5가지 과제로 ▲취약계층 보호 ▲복지 투자 혁신과 복지 지속가능성 제고 ▲코로나19 방역 추진 ▲필수의료 확충 ▲글로벌 바이오헬스 중심 국가 도약 등을 소개하고, "바이오 분야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K-바이오·백신 펀드 조성, 규제 혁신 등으로 보건산업의 활력을 높이고 디지털 전환도 강화하겠다. 세계보건기구(WHO) 지정 인력양성 허브 운영 등 글로벌 협력에도 역량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일 국감 업무보고에서도 조 장관은 '글로벌 바이오헬스 중심국가 도약'을 주제로, 보건안보 확립을 위한 기술 확보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규제 개선과 투자 활성화 등으로 산업 활력을 제고하겠다고 했다.

정부 K-바이오 미래먹거리로 육성하겠다고 천명했지만, 핵심사안은 '외면' 왜?

그러나 제약바이오업계는 "바이오헬스 중심 국가로 도약하고 산업을 확대하려면 업계의 요구도가 가장 높은 '합리적 약가책정', '의약품에 대한 합리적 가치보상' 등이 필요함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은 빠져 있어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합리적 약가책정이 우선돼야 혁신신약과 감염병·난치성 질환에 대응할 핵심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침에도 이를 푸대접하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이라고 밝혔다.

실제 A사는 해외에서 국내의 낮은 약값을 참조해 가격을 책정하는 바람에 자체 개발한 신약 수출이 무산됐고, B사는 한국 시장을 외면하고 해외에서 먼저 자사 개발 신약을 출시했다. 

이 같은 문제가 계속되면 환자와 국민건강에 위협이 발생하는 만큼, 업계가 국산신약에 대한 합리적 가치보상을 잇따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약가제도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무역 문제제기한 미국도 '자국보호주의'…"국내 제약산업 살릴 약가정책·제도 보완 필수"

특히 국산신약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비대칭적 행보의 대척점에 미국이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정부가 지난 2016년 7월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받거나, 임상시험을 국내에서 수행하거나, 혁신형 제약기업 등에 최대 10% 약가를 우대해주는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를 발표했다. 당시 미국 측은 '한국의 약가 정책이 한국 제약업계에게 유리하며, 한미FTA 의무를 어기고 미국 제약사들의 권리를 짓밟는다'고 비판했다. 결국 해당 제도는 사문화됐고, 지속적으로 약가정책을 개선하지 않는 계기가 됐다.

또한 베스트 인 클래스(동일 계열 내 효과가 제일 좋은 약)에 대한 가격 산정도 문제로 지적됐다.  

신약은 크게 퍼스트 인 클래스(새로운 작용기전의 신물질 신약)와 베스트 인 클래스로 나뉘는데, 국내 기업이 개발한 신약은 대부분 베스트 인 클래스에 속한다. 문제는 정부가 국산신약의 가격을 산정할 때 참조하는 ‘대체약제군’에 약가가 대폭 떨어진 제네릭까지 포함시킨다는 점이다.

예컨대 국내 약가제도에 따라 오리지널의약품의 특허만료로 제네릭의약품이 시장에 진입하면 1 년뒤 오리지널과 동일한 모든 약제는 가격이 절반(53.55%)으로 대폭 인하된다. 이렇게 확 낮아진 약제들이 국산신약 약가 책정때 참조하는 대체약제군에 포함됨에 따라 신약임에도 불구하고, 당초 오리지널약의 평균 45% 수준에서 약가가 책정되는 불함리함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국산신약에 책정되는 45%의 약가는 제네릭에 부여되는 53.55%의 약가보다 낮은 수준이다. 실제 국내 제약기업이 개발한 순환기계통의 신약은 동일 계열의 제네릭 보다 4.5% 낮은 가격에 책정됐다. 국산신약의 경우 평균 500억원 이상의 개발비용이 소요되는데 반해 제네릭은 이보다 훨씬 적은 비용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이같은 가격 책정은 매우 비합리적이라고 산업계는 토로한다. 국내 신약의 보험청구액은 1조원을 갓 넘었는데, 이는 전체 약품비의 5%에 불과하다는 점도 산업계로선 아쉬운 대목이다. 

업계는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통상 마찰 등을 이유로 제약바이오산업 성장과 보호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약가규제 완화정책을 외면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미국과 일본 등은 자국의 제약산업 발전과 국민건강을 위해 자국의약품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일본은 ▲신약이 임상적으로 유용한 새로운 작용기전인 경우 ▲신약이 동일계열의 비교약에 비해 높은 유효성과 안전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경우 ▲신약이 해당 질환 또는 외상의 치료를 개선시킴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경우 등 조건을 충족하면 ‘혁신신약 약가 가산’이라는 명목으로 선진7개국 평균약가의 70~120%를 보장하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공급망 교란 문제에 직면한 미국은 동맹국에 큰 부담을 주면서까지 자국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전기차에 대한 차별적 지원금으로 한창 시끄러운 인플레감축법을 시작으로 자국내 의약품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까지 코로나 19를 기점으로 보호무역주의를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바이오 행정명령의 후속조치로 ▲바이오제조업 역량강화 ▲ R&D 확대 ▲인력양성 ▲규제개선 ▲바이오 안전·안보 향상 ▲국제협력 강화 등 자국 내 바이오 생산 인프라 지원에 약 2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 같은 정부의 기조는 최근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의 국정감사 관련 서면질의를 통해 다시 확인했다. 제약산업육성법에는 혁신형제약기업에 대한 약가우대 근거 조항이 있는데, 실제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해한 것이다. 이에 복지부는 "특정 기업에 대한 지원은 국제통상 규범상 통상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접근 중"이라고 답변했다.

산업계는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국제 통상질서에 부합하는 혁신형 제약기업의 약가지원 정책 연구’에 기대를 걸고 있다. 통상질서에 부합하면서도 국산신약에 대한 약가우대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해당 연구용역은 지난 5월 연구결과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으며, 막바지 수정작업을 거쳐 조만간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소위 힘 있는 나라가 주도하는 자국 우선주의는 당분간 다자주의를 대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그렇다면 한국 정부도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지 기자 (mjse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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