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이 이소희 의원을 만나 의료인의 형사처벌 이력을 공개하는 법안이 필수의료 기피를 심화시키고 소아의료 붕괴를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임 회장은 형사이력이 공개되는 순간 해당 의료인에게 사실상 의사로서의 사형선고가 내려질 수 있다며 법안이 필수의료 의사들의 ‘살생부’로 기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신 의료사고에 따른 민형사 책임을 국가가 맡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7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에 따르면 임 회장은 지난 6일 국회에서 이 의원과 면담하고 이 의원이 추진 중인 의료인 형사이력 공개 법안에 대한 의료계의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법안의 근거로 제시된 의료인 형사처벌 관련 ‘연간 13건’이라는 수치부터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간 13건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집계한 2009년부터 2014년까지의 1심 판례 자료로, 언론 인터뷰에서 언급된 확정판결과는 다르다”며 “대다수 의사와 무관한 이야기라는 말은 뒤집으면 대다수 환자에게도 무관한 정보라는 의미여서 정보 비대칭 해소라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업무상과실치사상 유죄 판결이 내과와 외과, 소아청소년과, 소아심장흉부외과, 산부인과, 신경외과, 응급의학과 등 환자의 생명을 직접 다루는 진료과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임 회장은 “명단에 오르는 순간 의사 생명에 대한 사형선고이자 사실상의 살생부로 기능할 것”이라며 “필수의료를 지망하는 젊은 의사들에게 이 길로 가지 말라는 강렬한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위험 공개되면 의사들 고위험 환자 회피”
이날 임 회장은 의료인의 처벌 이력이나 진료 결과를 공개할 경우 의사들이 고위험 환자를 회피할 가능성이 있다는 해외 연구도 이 의원에게 전달했다.
그가 제시한 연구는 미국 뉴욕주와 매사추세츠주의 심장중재시술 공공보고 제도를 분석해 국제학술지 JAMA에 게재된 논문이다.
임 회장은 해당 연구에서 심장전문의의 65%가 평판에 대한 우려로 고위험 환자 시술을 회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59%는 동료로부터 시술을 만류하는 압박을 받았다고 응답했다며 의료계의 우려가 단순한 ‘공포 마케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신생아 사망사건도 언급했다. 당시 재판에 넘겨진 의료진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됐지만, 의료진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과 고위험 진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임 회장은 “대법원까지 전원 무죄가 확정됐지만 초기의 마녀사냥만으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붕괴됐다”며 “현재 서울대병원조차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모집에서 미달이 발생하고 충청권 소아응급실은 충남대병원 본원 한 곳만 제대로 가동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용할 병원을 찾지 못한 청주의 미숙아가 부산으로 헬기 이송되던 중 사망한 사례와 대구에서 쌍둥이 임신부가 분만할 병원을 찾지 못해 한 아이가 숨지고 다른 아이가 뇌손상을 입은 사례를 제시하며 소아의료 인프라 붕괴가 실제 환자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환자 알권리 위한 법이 아이 살릴 의사 내몰아선 안 돼”
임 회장은 이 의원에게 “의원님의 개인적인 아픔에 깊이 공감한다”면서도 “환자의 알권리를 위해 만든 법이 아이들을 살리는 의사들을 현장에서 몰아내는 법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인의 형사이력을 공개하는 대신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민형사상 책임을 국가가 맡는 ‘법적 위험의 국가 책임화’를 대안으로 제안했다. 의료인이 법적 위험을 개인적으로 감당하지 않고 진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영국형 모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임 회장은 “향후 2~3년 안에 소아청소년 의료 인프라를 완전히 복구하는 것이 목표”라며 “소아청소년과와 소아외과, 소아심장흉부외과, 소아마취통증의학과 등 소아 필수의료 의사가 법적 위험에 대한 걱정 없이 아이를 살리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회가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