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사협회 투표서 '쟁의 행위' 찬성 75.8%…실질임금 하락·장시간 근무·번아웃 개선 요구
영국 NHS 전문의들이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하고 나섰다. 사진=영국의사협회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최상위 병원 의사 직급인 컨설턴트(전문의)들이 파업권을 확보했다. 최근 전공의 파업이 일단락된 데 이어 이번에는 전문의들이 근무조건과 임금 문제를 내세우며 다시 집단행동 가능성에 나설 수 있단 전망이 나온다.
영국의사협회(BMA)는 6일까지 진행된 잉글랜드 컨설턴트 대상 쟁의 행위 찬반투표에서 투표 참여자의 75.81%가 찬성했다고 밝혔다. 투표권을 가진 회원 3만5067명 중 1만8069명이 투표해 투표율은 51.53%였다.
컨설턴트는 영국 NHS에서 전문과 수련을 마친 뒤 독립적으로 환자 진료의 최종 책임을 지는 상급 전문의 직급이다. 병원 진료팀을 이끌고 전공의 등을 지도∙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BMA는 곧바로 파업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쟁의행위 권한은 12개월간 유효한 만큼 정부와 협상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BMA는 “쟁의행위는 최후의 수단”이라면서도 “정부가 합리적인 제안을 하지 않는다면 파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컨설턴트들의 요구는 크게 임금 인상, 근무시간 단축, 시간외 근무 보상 강화, 전문직 활동시간 보장 등이다.
가장 큰 쟁점은 실질임금 하락이다. BMA는 컨설턴트 평균 임금이 17년 전보다 실질 기준으로 26% 낮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제시한 3.5%의 임금 인상률도 불만을 키웠다.
BMA는 잉글랜드 컨설턴트의 처우가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뒤처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잉글랜드 컨설턴트의 최종 임금이 웨일스의 컨설턴트보다 1만6000파운드(한화 약 3260만원) 낮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근무조건도 주요 쟁점이다. BMA는 잉글랜드 전일제 컨설턴트의 표준 근무시간이 주 40시간으로 웨일스 컨설턴트의 37.5시간보다 길다며 이를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간∙주말∙온콜 등 시간외 근무에 대한 보상도 현재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컨설턴트들이 진료 외에도 교육, 서비스 개선, 외부 전문기구 활동 등을 맡고 있지만 이를 수행할 시간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보고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투표의 배경에는 번아웃과 인력 이탈 우려도 깔려 있다. BMA는 지난 12개월 동안 의사 4명 중 거의 1명이 스트레스로 휴가를 냈고, 30%는 자신의 업무량을 감당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컨설턴트들이 추가 역할이나 리더십, 교육 업무를 맡지 않고 계약상 의무인 진료에만 집중하는 이른바 ‘조용한 퇴사’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는 컨설턴트들의 파업 움직임에 부정적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제임스 머레이 보건부 장관은 “컨설턴트의 평균 소득이 약 15만2000파운드(3억1000만원) 수준”이라며 파업 명분이 약하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반면 BMA는 단순한 고소득 여부가 아니라 장기간 누적된 실질임금 하락과 업무 지속 가능성의 문제라고 맞서고 있다.
한편, 컨설턴트 파업은 전공의 파업보다 드물지만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잉글랜드 컨설턴트들은 지난 2023년에도 임금과 연금, 보수결정 구조 문제로 파업에 나선 바 있다. 당시에도 수술과 외래 일정이 미뤄지며 NHS 진료 차질 우려가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