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도파민(Dopamine)은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이다. 아미노산의 하나인 타이로신으로부터 시작해 L-dopa를 거쳐 도파민으로 합성된다. 도파민은 혈압조절, 중뇌에서의 정교한 운동조절 등에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이자 호르몬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기능으로는 쾌감·즐거움 등에 관련한 신호를 전달해 인간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도파민의 분비가 비정상적으로 낮으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며 감정표현도 잘 하지 못하는 파킨슨병에 걸리게 되며, 분비가 과다하면 환각 등을 보는 정신분열증에 걸릴 수 있다. 파킨슨병의 경우에는 도파민의 전구체인 L-dopa를 처방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다.
도파민은 뇌에서 동기, 보상, 쾌락 등을 위한 시스템에 관여한다. 예를 들면 SNS에서 맛있는 음식이나 예쁜 여자(남자)의 사진을 봐도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된다. 물론 섹스를 통해서도 도파민이 분비돼 우리에게 만족감을 줌으로써 그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게도 한다. 코카인 같은 약물들도 도파민을 평소에 비해 10배 이상 많이 분비시킨다고 한다.
이처럼 강렬한 도파민에 휩싸인 뇌는 점차 거기에 적응해 같은 자극이 주어졌을 때 점점 더 적은 도파민을 분비할 수밖에 없다. 코카인 중독자가 같은 수준의 쾌락을 느끼기 위해 더 많은 약물을 요구하는 까닭이다. 그 폐해는 SNS나 온라인 게임 같은 행위 중독자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끊임없이 도파민의 포화상태에 빠지게 되면, 우리의 뇌는 거기에 점점 적응할 수밖에 없다.
2018년 닐슨 조사에 따르면, 18살 이상 미국인의 하루 미디어 이용시간은 2017년 3분기 10시간 30분, 4분기 10시간 47분, 2018년 1분기 11시간 06분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도파민 자극에 노출되고 있는 환경이며 현실이다.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 남부를 이르는 말이다. 원래 이 지역에 실리콘 칩 제조 회사들이 많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이름 붙여졌다. 현재는 온갖 종류의 기술혁신의 대명사가 돼 실리콘밸리에서는 새로운 트렌드를 끊임없이 창출해 유행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실리콘밸리의 유행이 바로 ‘도파민 단식(dopamine fasting)’이라는 것이다.
‘도파민 단식’의 중심에 샌프란시스코의 정신과 의사인 카메론 세파(Dr Cameron Sepah)가 있다. 세파는 2019년 8월 글로벌 비즈니스 인맥 사이트인 링크드인(Linkedin)에 ‘도파민 단식’ 요령에 대한 가이드를 발표했다.
“식사를 삼간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물론 어떠한 종류의 화면도 보지 않는다. 음악을 듣지 않는다. 집중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 업무를 하지 않는다. 성관계는 물론, 다른 사람의 몸을 만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경우를 빼곤 말을 하지 않는다.”
세파는 ‘도파민 단식’이 자신의 고객인 실리콘밸리의 임원들도 많이 행하고 있는 뜨거운 트렌드가 됐다고 밝혔다.
도파민을 강력하게 분비하는 요인들을 피해 ‘도파민 단식’을 취하게 되면, 우리의 뇌가 다시 ‘리셋(reset)’돼 도파민 의존성이 사라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도파민 단식’을 행하는 이들은 수도승처럼 자신의 삶에서 즐거움을 제공하는 요소들을 피한다. 마치 단식을 하는 것처럼 일정 기간을 정해 SNS나 게임은 물론 영화, 맛있는 음식, 쇼핑 등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유혹을 받지 않기 위해 실리콘밸리의 번화가를 피해 멀리 돌아가는 이들도 있고 심지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눈도 맞추지 않으려고 한다. 이처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마치 부팅하듯이 재정비하는 게 바로 도파민 단식의 목적이라고 한다.
그럼 과연 ‘도파민 단식’은 과학적인 근거를 지닌 합리적인 방법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UC 샌프란시스코의 신경과학자인 조슈아 버케 박사는 ‘도파민 단식’의 이면에 있는 과학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2월 27일 자 ‘Neuroscience News’에 소개한 ‘The Conversation’이라는 잡지에 나온 기사도 그렇게 반박한다.
어떤 것을 절제하는 문화는 ‘도파민 단식’이 처음이 아니다. 모든 일손을 놓고 쉬는 유대인들의 안식일 같은 것이 5천년 이상 존재하고 있다. 또한 삶 자체를 옛적 18세기 상태로 단순하게 살아가는 ‘아미쉬(Amish)’도 존재한다. ‘아미쉬’는 현대 문명의 이기 없이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이런 삶의 절제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라마단 같이 종교적인 단식이 존재한다.
‘도파민 단식’을 하는 사람은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실내에서 어슬렁거리는 산책, 집중하지 않는 가벼운 독서 등으로 소일하며 가능한 한 모든 감각적 자극을 최소화하는 시간을 보낸다. 도파민이 포상 자극적인 행동을 자극하는 중독성 있는 요소의 방출량을 증가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도파민 단식’은 한 가지 요소만을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도파민은 전혀 상반된 성격을 지닌 두 가지 회로에 의해 작동된다. 스릴과 쾌락에 전율하게 만드는 ‘욕망 회로’와 미래의 목표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참을 수 있게 하는 ‘통제 회로’가 바로 그것이다.
욕망 회로가 켜지면 위험한 일도 하고 중독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통제 회로가 켜지면 목표를 위해 혹독한 운동이나 다이어트도 이겨낼 수 있다. 욕망 회로를 잡기 위해 시작한 ‘도파민 단식’으로 통제 회로까지 꺼지게 한다면 단식의 의미는 처참하게 무너진다. 때문에 ‘도파민 단식’의 전도사인 세파 박사도 단식의 핵심은 도파민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행동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세파 박사는 ‘도파민 단식’이 중독 치료에 종종 사용되는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 CBT는 말 그대로 인지(생각)와 행동을 대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치료다. 원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고안된 CBT는 현재 정신 건강 상태의 호전을 위해 널리 사용되는 방법이다. 생각의 변화를 통해서 감정과 행동에 큰 변화를 가지고 올 수 있다.
백제가 멸망한 이듬해인 661년에 신라의 승려 원효대사는 의상대사와 바닷길을 통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려던 중 천둥·번개와 함께 비바람이 몰아치자 한 동굴에 머물게 된다. 잠을 자다가 새벽에 너무 목이 말라 물을 찾던 그는 그릇에 담긴 물을 발견한 뒤 달게 마시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원효대사는 자신이 마신 물은 바가지가 아닌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너무 놀라 토악질하며 그는 동굴을 뛰쳐나왔다. 어제 마신 물과 아침에 본 물은 같은 물인데 깨끗하다고 생각되었을 때는 맛이 있어 잠을 다시 푹 잘 수 있었고 해골 속의 더러운 물이라 생각되었을 때는 헛구역질이 나왔다. 원효대사는 인간사 마음먹기 마련이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깨달음을 얻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실리콘밸리의 고급 주택이 모여 있는 한 사립학교에서는 어떠한 디지털 기기도 가지고 오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학교의 학부모 중 3/4가 실리콘밸리의 임원들이지만 디지털 기기를 겨냥한 교칙을 그들이 원하는 것이다. 애플의 성공 신화를 이끈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애플 아이패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오늘날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도파민 단식’처럼 멋지게 포장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의 사용은 당연히 줄일 필요가 있다. 원효대사는 물 한 모금으로도 인간사 마음먹기 마련이라는 원리를 깨달았다. 단순한 것에서 더 많은 즐거움을 얻게 되면 우리는 더 많이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스마트폰도 잘 때까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다. 거기서 도파민이 더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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