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0.09.14 23:47최종 업데이트 20.09.1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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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캐나다 코로나19 우려로 의사 실기시험 연기·축소...우리나라는 의사면허법에 묶여 빠른 대응 불가능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의사면허 실기시험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지난 2010년경이었다. 당시 의사 국가시험에 실기시험을 도입한 국가는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실기시험 시행 당시 여러 가지 우려가 많았으나 결국 의학교육계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면서 큰 무리 없이 ‘한국식 실기시험’으로 정착됐다. 그 당시에 의사면허 실기시험은 인턴 교육 수료 후에 실시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과 요구가 많았음에도 보건복지부는 ‘의사면허법’을 고쳐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결국 필기와 실기시험을 본과 4학년 졸업 전에 실시하도록 결정했다. 

우리나라는 실기시험의 합격선과 합격선을 정하는 방법까지 법으로 세세히 정하고 있다.

반면에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시험시행기구에서 실시한다’ 정도로 큰 틀에서만 명문화하고, 나머지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법이 직접 개입하지 않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연유로 의사면허 시험과 같은 고부담 시험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시도와 연구가 자유롭게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시험에 관한 영역에서도 꾸준한 진화의 과정을 거친다. 다지선다형 문제가 미국에 처음 도입됐을 당시만 해도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종전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형태의 시험 방식에 대해 거부반응이 커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미국은 주 단위에서 발급하고 관리하는 면허이고, 면허기구에서 의사면허를 발부하는 관계로 모든 주가 획일적으로 동일한 형태의 시험을 채택, 운영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다지선다형 시험의 장점이 알려지고 부각되면서 결국 모든 주에서 다지선다형의 의사 필기시험을 받아들여 정착됐다. 

의사 실기시험 캐나다 첫 성공 후 각국 고유모델 개발 열기...우리나라 2010년 도입 

실기시험은 캐나다에서 여러 해를 거치며 실험과 고안을 거듭한 끝에 국가 단위의 면허시험으로는 처음으로 성공을 거뒀다. 이후 많은 나라에서 캐나다 실기시험을 표본으로 의사 면허시험에 접목시키기 위해 꾸준한 연구와 검토를 진행했다.

캐나다의 실기시험 전문가를 초빙해 미국도 국가면허시험으로 실기시험이 도입됐는데, 캐나다와 차별성을 두고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영국과 호주는 외국 의대 출신에게 국한해 실기시험을 실시해왔고, 영국은 자국의 의대졸업생에 대한 실기시험을 준비 중에 있다.

캐나다는 졸업 후 교육을 1년 이상을 받아야 실기시험 자격이 부여된다. 의대 졸업 후 개업면허가 없어도 전공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일종의 ‘교육면허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실제로 전공의 과정이 끝나기 전까지 실기시험에 대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 따라서 캐나다는 실기시험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는 시험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실기시험의 전제조건은 환자의 상태를 재현하도록 훈련 받은 배우에 의한 모의환자 역할과 채점요원, 그리고 실기시험에 응시한 의과대학생으로 보안이 확보된 공간에 최소 3인의 역할이 필요하다. 나라마다 이런 형태의 시험 방식 운영에 있어서 약간의 정도 차이는 있다. 

캐나다는 1년에 최소 2회의 실기시험을 시행하고 있고, 미국은 전국에 최소 6개 실기시험센터에서 연중 시험을 치르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건물 내에서 실시하는 관계로 하루에 제한된 인원만 실기시험의 대상이 된다. 전국 40개 의과대학 졸업생을 모두 다 수용하는 데만 최소 1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미국이나 캐나다의 모든 공공기관은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으로 인한 파급효과를 자체적으로 분석하고 위험에 대한 대비를 스스로 하도록 했다. 의사시험기구도 예외는 아니다. 이같은 이유로 미국과 캐나다는 의사 실기시험을 연기했다.  

코로나19 위기 의사 실기시험 일정 통째 연기...미국·캐나다 전문직 자율 운영에 맡겨 

캐나다는 2020년 5월에 실시하기로 예정된 상반기 실기시험을 연기해 2020년 10월에 2일, 그리고 2021년 2월에 이틀간 시험을 실시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또한 실기시험은 종래의 2일간 진행됐던 시험 운영 방식에서 1일로 축소해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불가능할 일이다. 우리나라는 의사국시 실기시험의 모든 세부적인 내용까지도 법으로 묶여있어 마치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형태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캐나다와 같은 조치를 취하려면 보건복지부, 국회, 청와대 등 다양한 기구와 접촉해 승인을 받아야만 비로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전문직에 대한 관리운영체계가 법으로 규정돼 있다. 의사시험의 고정 합격선 60점 제도도 지난 20년간 논의돼 왔으나 결국 바꾸지 못한 채 지금까지 흘러오고 있다. 이미 실기시험에 현대적 합격선 설정에 대한 경험도 충분히 쌓아 왔으나, 경직된 법 체계와 정부 부처 위주의 전문직 관리가 이를 못하게 막고 있는 셈이다. 

캐나다 국시원은 캐나다 공중보건국의 규정에 따라 실기시험이 코로나19 감염병에 취약하지 않도록 시기와 형태,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안전성을 우선 담보하는 조치를 취한다고 설명했다. 캐나다는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대한 사전조치에 대한 범위가 더 유연하고 넓게 해석하고, 상당 부분 사회적 자율에 의한 작동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차이가 있어 보인다. 

미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기 위해 2021년 6월까지 의사 실기시험을 연기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여러 사람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결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에 대해 정부나 국회, 정치권 등에서는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전문가 집단이 스스로 알아서 자율적으로 실행한다는 것이 선진국의 기본적인 사회적 구조와 제도이며, 역시 우리나라와는 상당한 거리를 보인다.

실기시험이라는 ‘복잡한 시험’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상호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그만큼 감염병 위험이 크다는 결론으로 미래 의사들에게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고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선진국 위기를 기회삼아 발전적 도약 모색 vs 우리나라 전근대적 관제 방식 고집

미국에서는 의사면허 실기시험을 캐나다와 달리 임상실습에 진입하기 전 준비과정을 점검하는 시험 과정으로 두고 있다. 의사면허를 취득하려면 도합 4단계의 시험을 치러야 하고, 단순히 의과대학 졸업만으로는 의사면허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시험시행기구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미국의 실기시험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작업을 시행할 방침을 밝혔다. 향후 실기시험을 개선해 더 편리하고 더 정확한 측정이 가능하도록 목표를 정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모든 단계에 대한 법률 규정이 이런 미국과 캐나다와 같은 혁신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고, 아직도 관료주의와 전체주의적 사회 운영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경직된 실기시험 제도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미국과 같이 연중 상설 다수의 시험센터를 운영하면 수험생의 편의를 도모할 수 있고, 시험 운영 제도에 유연성을 부여하면 하반기에 집중되는 국시원의 업무 과부화도 효율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실기시험이 진행될 경우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이 현 감염병 사태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 동시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점에 더욱 더 세심하고 각별한 경계가 절실해 보인다. 

우리나라 의사시험의 과제는 현대적 기법에 의한 합격선 설정, 연간 1회가 아닌 복수 기회부여, 그리고 실기시험 시행은 인턴과정 이후로 현재보다 혁신적인 설정과 변경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를 위해 막강한 규제기관들인 국회, 정당, 보건복지부, 법제처 등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 고찰 단계부터 무척이나 암울해 보인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의사 실기시험마저 민주화된 선진국과 같은 재빠른 대처는 너무나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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