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교수∙전공의 기소 사건 규탄…분만사고 불가항력성 인정 및 국가 차원 충분한 보상 제도 필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분만을 책임지는 젊은 산과 교수들이 최근 산부인과 교수, 전공의가 불구속 기소된 사건과 관련해 "분만 시 발생하는 사고가 불가항력적임을 인정하고 형사 기소 대상으로 삼지 말라"고 촉구했다.
젊은 산과 교수들은 13일 성명서를 내고 "이번 형사 기소 사건으로 젊은 산과 교수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번 성명서에는 전국 30~40대 산과 교수들 36명 중 24명이 동참했다.
이들은 "고위험 산모와 태아를 돌보는 일상적 업무 속에서 러시안룰렛과 같이 발생하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가 형사 기소의 대상이 되는 현실 앞에서 깊은 충격과 절망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주말과 밤낮없이 호출에 응하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조차 포기한 채 고위험 병실과 분만실을 지켜왔다"며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환자를 도우려는 최선의 진료가 범죄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공포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지금이라도 분만의 현장을 떠나야 하나"라고 토로했다.
이에 이들은 정부와 사법당국을 향해 의료사고의 불가항력성과 인과관계의 불명확성을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임신과 출산 중에는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발생하며, 출생아의 뇌성마비는 분만과정 외에도 자궁 내 환경, 태반기능, 조산 여부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필수의료 행위에 대한 과실 여부 판단은 반드시 이런 불확실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불가항력적 사고까지 책임을 묻는 건 명백히 부당하다"고 했다.
의학적으로 내린 최선의 판단에 대한 사후적 재단과 산과가 처한 구조적 문제도 지적했다.
이들은 “의료인은 전문가적 경험과 최신 지식에 근거해, 순간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사법적 판단은 종종 결과론적 관점에서 옳고 그름을 재단한다. 이는 치열한 의료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결국 의료인을 방어 진료로 몰아가 산모와 태아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된다”며 “형사 기소의 두려움 속에서 소극적 선택만 하게 된다면 산과 진료의 기반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24시간 응급 대응이 필요한 분만의 특수성, 만성적인 인력 부족, 지역 분만 인프라 붕괴, 의료전달체계 미비 등 구조적 조건이 개선되지 않는 한 유사한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개인의 책임만을 묻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끝으로 정부, 사법당국에 ▲분만 시 발생하는 사고의 불가항력성 인정 및 형사 기소 중단 ▲산모 피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안전망과 충분한 보상 제도 마련 ▲의료진의 산과 탈출을 막기 위한 근본적 대책 수립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들은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에서 산과는 사라질 것”이라며 “이 길의 끝에 서 있는 우리의 절규를 더 늦기 전에 들어 달라.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우리는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고 밝혔다.
벼랑 끝에 선 젊은 산과 교수들의 성명서[전문]
최근 검찰은 2018 년 자연분만으로 출생한 신생아가 뇌성마비를 진단받은 사건과 관련하여, 분만을 담당한 산부인과 교수를 불구속 기소하였다. 이미 수년째 수십억 원대의 손해배상 민사 소송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형사재판을 통해 분만 과정에서 업무상 과실이 있었는지를 다투겠다는 것이다.
분만을 업으로 삼고 고위험 산모 및 태아를 돌보는 우리의 일상적 업무 속에서 러시안 룰렛과 같이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가 형사 기소의 대상이 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깊은 충격과 절망을 느낀다.
우리는 전국 대학병원에서 산모와 태아를 돌보는 30~40 대 산과 교수들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전체 40 개 의과대학에는 산과 조교수는 36 명이다.) 주말과 밤낮 없이 호출에 응하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조차 포기한 채 고위험 병실과 분만실을 지켜왔다. 지난 의료대란 때도 우리는 분만실을 떠나지 않았다. 소수의 인력이 전국 병원에서 의뢰되는 임신중독증, 산후 출혈 등 여러 고위험 산모와 태아를 최일선에서 돌보며, 대한민국 산과 진료를 간신히 지탱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환자를 도우려는 최선의 진료가 ‘범죄’로 낙인 찍힐 수 있다는 공포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지금이라도 이 분만의 현장을 떠나야 할 것인가?
분만 관련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 기소를 계기로 우리는 다음을 국가와 사법당국에 비통한 심정으로 요구한다.
1. 의료사고의 불가항력성과 인과관계의 불명확성을 인정하라
임신과 출산에는 확률적인 일들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모성사망은 1 만 명 출생아 당 1 명의 빈도이다. 자궁내태아사망은 200 명 중에 1 명의 빈도이다. 뇌성마비의 빈도는 1000 명의 출생아 당 2 명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뇌성마비는 긴 임신 기간 동안의 자궁 내 환경, 태반 기능, 조산 여부 등 장기간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며, 분만 과정 자체가 원인이 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필수 의료 행위에 대한 과실 여부 판단은 반드시 이러한 불확실성을 고려해야 한다. 불가항력적 사고까지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명백히 부당하다.
2. 의학적 최선의 판단을 사후적 관점에서 일률적으로 재단하지 말라
의료인은 전문가적 경험과 최신 지식에 근거해, 그 순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사법적 판단은 종종 결과론적 관점에서 옳고 그름을 재단한다. 생명 현장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무시한 채 현미경의 잣대를 들이대어 의료행위를 평가하는 것은 치열한 의료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지양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후적 평가는 의료인을 분쟁 회피 중심의 방어 진료로 몰아간다. 특히 산과는 산모와 태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분야인데, 형사 기소의 두려움 속에서 소극적 선택만 하게 된다면 피해는 환자와 가족,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은 양심 있고 소신껏 진료하는 의료진을 현장에서 떠나게 하고, 남아 있는 이들마저 위축시켜 산과 진료의 기반을 무너뜨릴 것이다.
3.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책임 전가를 중단하라
의료사고는 분명히 줄여야 하지만, 이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 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다. 24시간 응급 대응이 필요한 분만의 특수성, 만성적인 인력 부족, 지역 분만 인프라의 붕괴, 의료전달체계의 미비 등 구조적 조건이 개선되지 않는 한, 유사한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미 전국 곳곳의 산모들이 분만취약지에서 위험 에 노출돼 있다.
우리는 다음을 강력히 촉구한다.
▲분만 시 발생하는 사고는 불가항력적인 것임을 인정하고, 형사 기소 대상으로 삼지 말 것 ▲산모가 피해를 입은 경우, 국가 차원의 안전망과 충분한 보상 제도를 마련할 것 ▲의료진이 산과를 떠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제도적 대책을 세울 것
지금 이 순간도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병원으로 달려가는 우리 젊은 산과 교수들은, 이번 형사기소 사건으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에서 산과는 사라질 것이다. 이 길의 끝에 서 있는 우리의 절규를 더 늦기 전에 들어 달라.
국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검찰은 멈추어야 한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우리는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