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9.30 18:17최종 업데이트 23.10.25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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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서 빛났던 대한민국 응급의료, 부메랑으로 돌아와…의사에게 책임 묻는 관행 '문제'

[필수의료 특별기획] 조영모 과장 "이송 응급환자 무조건 받으려면 전원 조정 완벽해야…응급실 그만둔 의사 대책도 필요"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조영모 과장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 세계 응급실·중환자실을 가다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대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병원들의 필수의료 중심인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어떤 모습이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요. 메디게이트뉴스는 일본과 미국 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두루 탐방한 다음 국내 필수의료 정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연속적인 기획 시리즈를 이어갑니다. 본 기사는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①응급·중환자 살리는 도쿄대병원의 ‘마지막 요새’
②도쿄대병원 간호사 1인당 환자 1명에 1인실 100% 
③팬데믹∙의사근로시간 규제로 변하는 일본 집중치료체계 

④일본은 응급실 '뺑뺑이' 어떻게 대응하나
⑤.미국 응급의료는 적정수가 보상·과밀화 방지 최우선 
⑥미국 필수의료 대책 의대정원 확대 아닌 근무 유인책 제공
⑦LA할리우드 차병원이 매출 6000억원, LA 최대 종합병원된 사연은?
⑧대한민국 응급의료, 의사에게 책임 묻는 관행 '문제'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일련의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당시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우수한 응급 대처 능력을 보였던 대한민국이 포스트 코로나 이후 모순을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산대병원 응급의료센터의 조영모 응급의학과장은 코로나19때 감염 예방을 위한 수용 가능 여부 확인 관행이 부메랑처럼 응급실 수용 거부 문제를 일으켰다고 설명하며, 이로 인한 부작용을 해결할 대책을 찾기 보다 그 책임을 의사에게 물으려는 사법부와 정부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조영모 과장을 만나 우리나라 응급실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 봤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고착화된 수용가능여부 확인 부작용 일으켜…그 책임 모두 '의사에게'

부산대병원은 2001년 12월 개원한 이래로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돼 역할을 수행해 왔으나 강화된 시설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2018년부터 지역응급의료센터의 형태로 지역의 응급환자들을 수용하고 있다.

형태는 '지역응급의료센터'지만 국립대학병원으로 지역의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한 중증 응급 환자를 위한 최후의 보루이자 응급교육 및 수련기관으로서 임무를 다하고 있다.

조 과장은 지난 3년 악몽 같았던 코로나19 시절을 되돌아보며, 응급실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사고가 발생한 시발점이 바로 '코로나 팬데믹'이라고 지목했다.

조 과장은 "유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혼돈의 상황을 겪었다.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다양한 환자들이 밀려 들어오는 응급실의 스트레스는 극심했다. 응급실은 환자를 진단해 질병인지 외상인지, 중증인지 경증인지를 판단해 급성기 치료와 최종 치료까지 환자 치료가 원내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코로나로 엄청난 업무 과부하가 발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불특정 다수의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응급의학과 의료진들은 365일 24시간 보호장구를 한 채로 환자들의 코로나 감염 여부를 감별해 진료를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감염에 대한 우려와 스트레스가 굉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 과장은 "팬데믹 이전의 응급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오픈“플레이스’였다. 119구급차를 타고 오든 걸어서 오든 택시를 타고 오든 응급실은 어떤 환자도 진료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런데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격리시설 문제 등으로 환자 수용이 불가능한 상황이 생겼고, 소방과 권역 응급의료기관 간에 일종의 규칙이 생기면서 환자 이송과 전원 전 수용 가능 여부를 소방이 일일이 전화해 묻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재난 상황에서 다”들도 응급실 이용을 삼갔고, 소방과 의료기관 간의 협력을 통해 의료기관에 감염이 전파되지 않는 안전한 시스템이 구축됐고 감염 예방의 측면에서 이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팬데믹 종료와 함께 환자들은 또다시 감염에 대한 우려 없이 응급실로 밀려들어 코로나 이전보다 과밀화가 더 심화됐고, 이런 상황에서 소방과 의료기관은 기존의 전화를 통한 수용 가능 여부를 묻는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부작용이 대구에서 발생한 17세 추락 환자의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다. 

조 과장은 "코로나19 때처럼 응급실은 물론 배후진료 가용 여부까지 모두 고려해 최고의 컨디션에서만 환자를 받아야 한다는 관습과 엄격한 책임소재 찾기가 유지되면서 각 응급실들이 환자들을 받는 것을 꺼리게 된 것"이라고 문제를 진단했다.

정부, 응급실에 환자 무조건 수용 강요하고 의사에게 책임 물는 떠넘기는 대책 내놔

병원들이 이러한 관습을 유지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환자를 감염병으로부터 지키고 인프라 부족으로 타 병원으로 전원가는 수고를 덜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부와 사법부는 그 책임을 의료기관과 의료진에게 묻고 있다.

조 과장은 "응급의료 자체가 가지는 불확실성이 있는데 그로 인한 악결과의 책임을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묻고 있다. 대구 사건의 최초 진료 의사를 경찰이 조사하고, 최근에는 대동맥박리를 오진한 레지던트에게 대법원이 징역형을 내리는 일도 있었다"고 우려했다.

응급실 의료진들은 코로나19 동안 감염병 최전선에서 싸운 의사들이지만, 돌아오는 것은 책임 소재를 묻는 사법부의 철퇴라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를 해결할 대책으로 소방의 구급상황관리센터가 병원 수용가능 여부 확인 없이 곧바로 이송병원을 선정해 이송한 응급환자를 응급의료기관이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기관들은 응급의료법에 따라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 수용 거부를 할 수 없어 24시간 병원의 인력 및 시설 인프라를 확인해 '정당한 사유'를 확인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는 "해당 대책으로 전공의와 전문의들의 불안이 극심한 상황이다. 사실상 응급의료체계의 컨트롤 타워를 의사가 아닌 소방공무원이 좌지우지하는 것과 같다. 이는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조 과장은 "응급실은 모순의 집약체다. 병원은 병실, 중환자실, 검사실, 시술실, 수술실 모든 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실시간 데이터를 갖고 있지만, 이것이 항상 0, 1, 2로 표현될 수 없다. 중환자실이 꽉 차 있어 보여도 조절 가능한 환자가 있을 수 있고, 수술실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대기 예약이 있을 수도 있다"며 "병원의 생리를 실제로 경험하고 이해한 사람만이 어떤 환자를 어느 병원으로 가는 게 최적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진=부산대병원 지역응급의료센터

환자 무조건 수용 가능하려면 "병원 간 전원체계 구축돼야"

조 교수는 정말 응급의료기관이 이송 온 중증응급환자들을 100% 수용해 급성기 치료를 제공할 수 있으려면, 병원 간 전원체계를 완벽하게 구축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응급실로 온 환자들은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초기 급성기 치료를 제공해 생명을 살리고, 최종 치료는 배후 진료과가 담당한다. 응급실에 인력과 장비가 모두 갖춰져 있더라도 이 배후 진료과의 수용여부에 따라 특정 환자에게 치료 가능 여부가 달라진다"며 "어떤 규모의 병원도 모든 분야의 필수의료 전문의가 풀타임으로 환자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조 과장은 모든 응급의료기관이 응급환자를 받아 일단 진단하고 급성기 치료를 제공할 수 있으려면 본원의 최종 치료 인프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끔 전원을 잘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원의 인프라가 부족하더라도 일단 급한 불을 끈 환자를 받아 최종 치료를 해줄 수 있는 병원을 잘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응급실은 모든 환자를 기꺼이 받아 치료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의료사고 책임 문제, 낮은 보상으로 응급실 떠나는 의사들…"인력에 대한 대책 필요"

문제는 단순히 전원시스템이 갖춰진다고 해도 당장 일련의 사건 사고로 응급실에 환멸을 느끼며 떠나가는 의사들을 잡기는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그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는 이유로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에 대한 우려와 낮은 보상을 들었다.

조 과장은 "우리 병원은 국립대학병원으로 국가가 지정한 공공기관이라 기재부에서 의사 급여체계를 제한하고 있다. 진료와 교육, 연구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영역임에도 급여 체계의 유리천장이 너무 심하다. 심할 때는 병원 밖의 개원의와의 급여 차이가 2~3배 가량 난다"며 "힘든 환경인데도 보상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전문의들의 이탈이 극심하다. 현재 응급의학과 교수 숫자가 11명에서 5명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조 과장은 "응급의료센터와 외상센터는 인력이 2배로 드는데 5명이 당직을 서야해 한 달에 15일을 병원에서 잔다”며 “응급의학과 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급여라도 올려 교육과 연구를 안 하는 촉탁의를 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은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버텨야 하지만, 언제까지 사명감에 호소할 순 없다. 젊은 미래 세대들이 응급실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력에 대한 투자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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