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부당한 건정심 구조 개선 필요성
우리나라의 저수가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저수가가 맞다, 아니다에 대한 논쟁은 정부가 일산에 직접 병원을 운영해 보면서 결론이 났다.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은 20년의 운영기간 동안 의료수익으로는 딱 1년밖에 수익을 내지 못했다. 병원 전체적으로 흑자가 나긴 했지만 그 이익은 모두 편의점과 장례식장, 주차장 등 부대수익에서 난 것이다.
그럼 모두가 알고, 모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저수가 문제는 왜 개선되지 않을까.
의료 수가는 매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합의를 통해 결정한다. 열띤 논의와 토론이라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 같이 보이지만, 언제나 ‘저수가’로 결론이 났고 현재와 같은 기형적인 의료구조를 만들었다.
왜 이런 결론이 나오는 걸까. 이유는 바로 건정심의 구조 때문이다.
건정심은 위원장 1명을 제외하고 총 24명으로 구성된다. 보험료를 납부하는 사람들 대표 8명, 의료를 공급하는 사람들 대표 8명, 그리고 기타 공익 위원 8명으로 구성된다. 그럼 찬성 8 중립 8 반대 8 이라는 공정한 구조로 구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기타 공익 위원 8명 중 2명은 공무원이고 6명은 정부가 추천하는 위원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수가 결정은 중간 지대를 차지한 정부가 캐스팅 보트를 쥔다. 그리고 수가를 싸게 매길수록 정부는 재정을 아껴서 좋고, 보험자들도 싸게 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둘이 단합하면 저수가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의료계의 입장을 무시할 수 있다. 오히려 의료계가 너무 심하게 반대하면 건정심에서 패널티를 줘서 수가를 더 깎을 수도 있다. 농담 같지만 사실이다.
이 불공정한 구조에 대해 감사원은 2004년 보고서를 통해 ‘건정심 위원 구성이 적정하지 못한 것은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명시했다. 정부가 건정심을 좌지우지하려고 일부러 구조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가볍게 무시됐고 건정심 구조는 16년째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은 ‘저수가’ 문제를 탈출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의료계 파업에서 대한의사협회와 정부가 건정심 구조 개선을 논의하는 등의 의정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
의료계가 제안하고 있는 건정심 구조는 공급자와 가입자 5대 5지만 의정협의체에서 얼마나 받아들여질지 미지수다. 무조건적인 저수가가 아니라 의료를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건정심 구조 개선을 위한 진정한 합의가 절실해 보인다.
수가가 모든 문제의 정답이 아닐지는 모른다. 하지만 부당한 건정심 구조는 필수의료 부실, 기피과 문제, 의료취약지 문제 등 의료계 파업까지 치닫게 만든 수많은 대한민국 의료 문제의 핵심 원인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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