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의료진 학대로 왜곡된 고마운 마음
2020년 7월 9일 한겨레 신문은 단독으로 정부가 10년간 의사 4000명을 충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7월 10일, 보건복지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의대 정원 증원은 의료계, 교육계 등 다양한 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국회 등과 논의해 결정될 사안으로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불과 2주 뒤인 7월 23일, 그 어떤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여당과 정부는 국회에서 당정협의를 열어 의과대학 정원 확충과 공공의대 설립추진방안을 확정했다.
2019년 10월, 국정감사에서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두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공공 기관 수장들과 여러 국회의원간의 질의가 있었다. 여기서 각 수장들은 한 목소리로 “첩약 급여화에 대한 안전성, 유효성, 경제성 근거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2020년 6월 9일, 아무 근거 마련 없이 첩약 급여화 사업은 시작됐다.
지난 3년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문재인 케어)을 시작으로 의대정원 증원 문제까지 의료계와 정부의 대립이 끝없이 이어져 왔다. 지난 3년간 의료계의 반대 집회, 파업이라는 단어를 몇 번을 들었는지 셀 수조차 없다. 그리고 정부가 다양한 의견을 듣고 결정하겠다던 의대 정원 확대 정책까지 일방적으로 추진하기로 하면서 분노한 의료계가 파업을 예고했고, 정부와 의료계와의 대립은 극으로 치닫고 있다.
그만큼 의료계가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와 정부 정책의 문제는 심각했다. 의료계의 문제와 정책에 대한 의견은 누구나 낼 수 있지만, 의료계에서 직접 일하는 사람들만큼 정확할 수 없다. 의료계에 속한 사람들은 내부 사람들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정책에 따라 어떻게 움직일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어떤 분야든 내부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는 정책은 반드시 큰 부작용을 낳거나 실패한다. 이것은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부터 최근의 보장성 강화 대책까지 의료 제도의 역사가 증명한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부가 원하는 그림대로 증원한 인원들이 소외 지역 의료나 기초 의학 분야에 매진해 의료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오히려 한국 의료계의 고질적인 불균형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의료계는 코로나19사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희생하며 군말 없이 최선을 다했다. 정부도 이에 고맙다는 마음을 담아 ‘덕분에’ 챌린지까지 했다. 하지만 의사가 부족해서 대처가 어려웠다는 근거 없는 핑계를 대며 대한민국 의료계 시스템을 망가뜨릴 수 있는 의대정원 확대 정책까지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의료진이 고마운 건지, 고마움의 감정을 왜곡되고 비뚤린 방식으로 표현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또 의료계가 완패하고, 정부는 모든 의견을 무시하고 정책을 일방적으로 진행할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큰 문제가 생겨도 아무도 책임지거나 반성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의료계 탓으로 떠넘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 예상 또한 맞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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