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전공의를 비롯한 젊은 의사들과 전국의 의과대학 학생들이 윤석열 정권의 독재 정책에 맞서 개인과 단체의 엄청난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다. 출발 당시부터 누구도 지금의 ‘추계위 모델’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추계위는 결국 젊은 학생들과 의사들의 요구에 정부와 집권당이 내놓을 수 있는 ‘한계적 조치’에 불과했다.
따라서 젊은 학생이나 전공의, 그리고 의사 집단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았으나, 의료계는 학생과 전공의 복귀 문제 등 다양한 사안이 뒤엉긴 상황에서 인내심을 갖고 대승적 차원에서 일단 추계위에 참여키로 하고 논의를 시작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젊은 의사들과 학생들의 기여로 ‘회의록 공개’라는 새로운 규범도 만들어 냈다. 그나마 진일보한 정부 조치로 받아들였다.
의료계와 의과대학생, 그리고 젊은 의사들은 우리나라의 추계위도 선진 외국의 추계위원회 운영 방식과 같이 성숙하고 합리적인 기구로 기능하기를 모두가 내심 원했다.
추계위가 가져야 할 위상은 이웃 나라인 일본과 네덜란드의 사례가 인용되며 회자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기구의 독립성과 자주성이 강조됐다. 이들의 치밀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다듬어진 추계 방법론이 우리로서는 간절하고 부러운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 추계위원회도 우리나라의 고유 실정에 맞는 다양한 방법론과 함께 실질적인 자료에 기초하기를 원하고 적용되길 기대했다.
그러나 추계위원회는 시간적인 압박 속에서 기존의 추계자료에 대한 검토와 과거 지향적 변수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부 핵심 변수개발을 위한 자료는 해당 기관으로부터 ‘취득 불가’라는 믿지 못할 성의 없는 단순한 답변으로 무시됐다. 관련 자료제공 거부를 당연히 받아야 하는 모습에서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관련기관은 자료 공개가 안 된다면 이에 대한 합당한 이유와 합리적인 설명을 충분히 밝혀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자료제공이 불가한 상황인지, 거부인지 이에 대한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어떤 해명도 없었다. 자료가 없으면 없는 대로 하라는 것이 복지부의 답변같기도 하다. 비록 추계위가 운영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추계위 상위기구는 난공불락의 권위에 찌든 모습으로 비춰진다.
대승적 차원 추계위 참여했으나 재래식 ‘시한부 조건’에 막혀 현실 반영 안 돼
의료계는 새로 출범한 추계위가 윤석열 정권보다는 진일보한 합리적 절차에 의한 추계로 운영되길 진심으로 희망했다. 그러나 추계위는 2025년 12월 말까지라는 ‘시한부 조건’에 결국 과거와 별로 진척된 것이 없는 모습의 ‘비합리적인 결과’를 서둘러 도출해 제시하게 됐다. 추계위 위원 구성도 비록 관련 단체로부터 추천받았다고 하나 최종 위원 선정 결정권은 복지부가 쥐고 있었다.
우리나라 정책추진 과정에서 보는 일상화된 노련한 복지부의 ‘민주적 놀이’에 의한 추천 방식이다. 이처럼 추계위 구성은 의료계가 원하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기구는 결코 아니다.
의사의 속성은 우선 ‘수월성 추구’가 기본이다. 추계라면 훨씬 더 정교하고 우리나라의 실정에 부합하는 참신성이 보여줘야 한다. 물론 주어진 시간 제약 때문이라는 변명을 내세울 수도 있다. 과연 시간은 무엇 때문에, 누구의 권한으로 정하고 주어지는가? 법적으로 2027년 의과대학의 입학정원은 26년 1월 말까지 결정해야 한다고 하는데, 과거 2003년에는 정부의 요구대로 정원 감축을 시행할 때 그 당시 교육부는 충분한 기간의 사전 공지 기간의 법적 기준 충족을 내세우며 정원 감축 시행을 3년 후인 2006년부터 적용해 집행한 바 있다.
이런 모든 ‘원칙의 역사’는 윤석열이라는 독재자와 과잉 충성 집단에 의해 보정심에서 한순간에 합법적으로 파괴됐다. 정부가 주장하던 ‘입시 사전 공지 준수’는 정권의 입장에서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절차를 생략하고 단숨에 폐지하는 것을 이미 똑똑히 목격해 왔다. 형식적인 논리와 정권에 맹목적인 충성이 합리적인 정책을 우선하는 궤변적 민주화 국가의 모습을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지 개탄스러울 뿐이다.
추계위가 독립성이 있다면, 시간 제약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하고 완성도 높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때까지 활동 기간의 연장을 독자적으로 재량껏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추계 과정은 역시 보건의료의 거버넌스 문제가 심각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다.
‘추계’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오는 2040년 우리나라 의료의 목표는 무엇이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내다보고 가늠해 보는 것이다. 지금의 의료 형태와 수준을 2040년까지 그대로 끌고 가자는 것인지, 전체 의료비를 우리나라 GDP의 몇 % 수준까지 감당할 것인지, 정부의 직접 지원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등 지속이 가능하지 않다는 현재의 의료체계를 어떻게 변모시킬 것인지 등 의료의 본질적이고 근본이 되는 문제는 논의조차 없었다.
현 상황에서 5년 뒤의 일을 예측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2040년을 예측한다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 발휘와 세세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냥 단순히 2040년대 의료의 모습에서 의사들도 충분한 휴식 시간이 보장돼야 한다는 식의 추계위 위원의 배려에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미 의사협회와 추계위에 참여한 위원들이 간증하듯이 현재의 추계는 변수 설정으로 끝난 완성도 떨어지는 ‘불완전한 자료 생성’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어느 학자는 ‘국격’에 맞지 않는 추계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무모한 정책, 정권 붕괴에도 구태의연한 운영 전문성 파괴는 확장 진행형
추계위는 정책자료의 합리적 근거를 생산하기 위한 연구개발의 기능을 갖춰야 한다. 추계의 최종 단계는 보건 정책에서 보건 정치화의 과정인데, 추계위원회의 형태와 구성이 연구개발보다는 이미 몇 단계 조숙해 ‘보건 정치’로 기구화돼 보인다. 실제 추계에 필요한 연구개발이 추계위 기능인지, 아니면 정부 산하 보사연의 기능인지도 불분명하다.
추계 방법론에 대한 이견을 좁히고 조정하기 위한 단계에서 숙의와 조정 등의 깊은 사고를 요하는 절차와 단계는 추계위 구조와 시간 제약상이라는 이유로 생략되고, 추계결과가 의사 부족분 범위의 ‘선택적 투표’로 마무리한 것 같다. 언뜻 보면 민주적 절차로 착각할 수도 있으나, 수월성을 기본으로 하는 의사 전문직의 기대와는 너무나도 괴리감이 크다.
젊은 의사나 학생들이 단순히 미래의 부족한 의사 수가 많이 나와서 분개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눈높이와 기대치에 부합하지 못하는 추계위의 운영을 보며 '혹시나'하는 기대가 '역시나'의 실망과 좌절로 급변하며 불과 얼마 전 결행했던 수업 거부와 사직의 분노를 다시 촉발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스러운 분위기다. 앞으로 1단계 추계 결과는 보정심이라는 상위 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할 예정인데, 의사 출신 복지부 장관은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보정심의 구성을 보면 과연 주요 결정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전문성과 독립성,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부 측 차관급 인사나 비전문가가 왜 그렇게 많아야 하는지, 그리고 수요자 대표를 보면 우리나라 보건의료에 대한 ‘미시적 결정’에 참여하는 익숙한 단골 인사들로 포진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보정심은 지난 윤석열 정권의 의대 증원 정책에서 거수기 역할로 충실히 부역한 바 있다.
“윤석열 정권의 무리한 의대 증원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라는 복지부 장관의 발언은 이제 “과거를 묻지 마세요!”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