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인터뷰가 실리면 찾아보는데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오해가 많아서 안타깝다. 특히 교수들과 학생, 전공의 사이를 갈라놓는 아래 3가지는 의학대학 교수로서 꼭 변명을 하고 싶다.
1. 잃은 것이 너무 많아서 일부라도 얻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다. 전공의 수련실태 개선은 스스로 희생해서 쟁취해야 한다.
2. 대학병원과 교수들은 중간착취자이다. 그들이 먼저 집단사직을 했으면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휴학과 사직을 할 일도 없고, 함께 나갔으면 벌써 복귀했다.
3. 의과대학 총장과 학장이 복귀하라는 호소는 회유와 협박이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성인이고, 각자의 휴학이던 사직이던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집단으로서 이익과 안녕을 위해 통일된 의견을 결정하고 따르는데 누구보다도 강력한 단일대오를 만드는 집단이기주의를 보인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있다고 하나 병원의 봉직의, 교수가 집단적인 힘을 발휘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집단행동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받을 장치도 없고, 자신의 환자와 병원을 버리고 나가기에 사회적 책임이 너무 중하다.
서울아산병원이라는 국내 최대 병원의 800명 교수들을 모아 교수비상대책위원회을 만들고 초대 위원장을 맡았지만, 교수들의 통일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목소리가 무게감을 가지는 이유는 사회로부터 교육자이자 인술을 베푸는 의사로서 존경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가 학교와 병원을 나서는 순간 교수들의 영향력은 사라진다.
지금의 교수들은 의대생, 전공의 시절 억울하고 서러운 경험은 더 많이 겪었고, 그럴 때 좋은 의사이자 스승이 되겠다는 다짐했던 것을 실천하고자 의과대학 교수가 됐다. 우리가 교육받고 수련받을 때에 비해 눈부시게 발전한 현재 의대 교육환경, 전공의 수련환경, 의료환경을 보면 지금의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이 부럽다. 선배들과 우리 세대들이 자신이 경험했던 부당하고 비효율적인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서 수십년에 걸쳐 이룩한 성과다. 한국의료의 미래를 결정짓는 계주에서 의대생이나 전공의는 우리의 바통을 이어받을 주자들이기에 교수들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다. 이들을 당장의 의료문제를 해결하는 불쏘시개로 쓰는 것은 한국의료의 맥을 끊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저명한 의료계 인사들 중 그들 스스로 결정해서 희생하는 것이니 복귀하라고 하는 것은 스승의 자세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는 분들이 있다. 스승은 제자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떠난 뒤 제자들이 더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침을 베풀어야 하는 존재다. 그 가르침이 당장 제자들 입에 쓰더라도. 그래서 1, 2번은 틀렸다고 단호히 말할 수 있다.
울산의대 교수비대위원장일 때 전공의에게 내린 행정명령,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이 부당하니 철회하라고 주장했고, 이 과정에서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연대를 통해 집단사직서 제출을 이끌었다. 전국적인 의대교수들의 집단사직이라는 초유의 상황이 여론의 주목을 받았고, 전공의를 향한 행정명령 집행을 미루고 결국 철회시키는 데 한 몫을 했다.
여러 의과대학 총장과 학장이 작년 휴학생이나 유급생들이 올해 등록하지 않고 휴학하면 제적이라고 하는 것은 학칙 때문이다.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에서 전의교협, KAMC, 각 대학의 교수비대위들이 각자 다른 해법을 내놓아도 제자들의 무더기 제적을 스승으로서 막으려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다만 학생이던 교수이던 지켜야 할 고유한 학칙을 작년의 행정명령과 같은 수준에서 철회시켜야 할 부당한 협박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3번도 틀렸다.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이 주장하는 7가지 요구사항 모두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정부, 국회 보건복지위, 환자단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나름의 논리로 타당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이번 의정갈등에서 잘못된 점은 다른 주장을 하는 집단간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공정한 룰과 균형 잡힌 중재가 필수인 데도 시작부터 힘있는 이익집단들이 여론을 호도하고, 의사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데 있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힘겨루기로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특히 약자로서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해적인 방법으로,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가 붕괴될 위험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의대생과 전공의가 지금 학업과 수련을 중단하면 자신들이 꿈꾸는 미래는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의사, 전문의, 교수가 돼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무리 먼 길이라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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