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7.07 07:15최종 업데이트 26.07.0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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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서 태어난 게 죄는 아니잖아요”…사직서 품고 신생아 살리는 의사들

세종·대구·원주 신생아중환자실 교수들, '주 100시간 근무·365일 온콜' 몸 갈아가며 버텨

“내가 그만두면 아기들 갈 곳 없어”…사명감으로 돌아가는 시스템도 '한계' 봉착

무너지는 신생아중환자실, 지역에서 전해온 SOS

전북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NICU) 운영 중단 위기는 지역 신생아 진료체계 붕괴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대한신생아학회가 대통령과 국민을 향해 호소문을 내고 신생아 진료체계 붕괴를 막아달라고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전북대병원만의 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역 NICU는 이미 병상 포화와 인력 고갈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고위험 신생아는 전국에서 몰려오지만, 정작 아이들을 살릴 의사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지금 지역 NICU를 지탱하는 것은 제도나 인력이 아니라, 소수 신생아과 교수들의 주 100시간 노동과 “내가 그만두면 아기들이 갈 곳이 없다”는 책임감이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세종충남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신생아과 교수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역 NICU의 현실과 대안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
 
① “지방서 태어난 게 죄는 아니잖아요”…사직서 품고 신생아 살리는 의사들
 
세종충남대병원 NICU 의료진들이 신생아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세종충남대병원 이병국 교수 제공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세종충남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NICU)에는 세종에서 태어난 아이들만 오는 게 아니다. 충북, 대전, 충남은 물론 전주와 경남 창원에서까지 가느다란 희망을 붙잡은 아이들이 이곳으로 실려온다. 이병국 교수(세종충남대병원 신생아과)는 그 아이들을 두고 “지방에서 태어난 게 죄는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세종시는 전국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도시 중 하나다. 2024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1.02명으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이런 세종시에 지난 2020년 7월 세종충남대병원이 개원했다. 이 교수는 개원 당시 유일한 신생아과 세부전문의였다. 당직을 서주는 전문의 2명이 있었지만, 이 교수는 365일 내내 온콜 상태였다. 병상이 늘면서 2년 전 비로소 신생아과 의사를 추가로 채용했지만, 여전히 주당 근무시간은 100시간에 달한다.
 
최근 있었던 어머니의 생신도 챙기지 못했다. 다른 어머니들의 아들, 딸을 지키는 자신의 아들에게 이 교수의 어머니는 “오지 않아도 된다. 거기서 아기들 보는 게 효도하는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세종충남대 이병국 교수 “100년 후라도 나아질 거란 생각으로 버텨…어른으로서 역할할 뿐”
 
이 교수는 공중보건의사 시절 신생아과 의사에 대한 꿈을 꾸게 됐다. 당시 보건소에 있던 28주 산모가 해당 지역에 신생아를 볼 수 있는 의사가 없어 서울로 이송되는 현장을 지켜본 게 계기였다. 당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였던 이 교수는 “나 같은 사람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실제 지방 곳곳에서 이 교수 앞으로 아이들이 이송돼 온다. 세종충남대병원 NICU 환자 비율은 세종이 50%, 충북이 30%, 대전·충남이 20% 수준이다. 최근에는 전주, 경남 창원 등에서 이송돼 온 아이들도 있었다. 서울 출신인 이 교수는 지방에서 태어난 ‘아무 잘못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신생아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한 명의 ‘어른’으로서 역할을 할 뿐이라고 했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까지 버티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기들 입장에선 너무 큰 일입니다. 실제로 다른 지역까지 장시간 이송되다 잘못되는 아기들도 있고요. 아이들이 지방에서 태어난 게 죄는 아니지 않나요. 그만두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기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은 해주면서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1년 후든, 10년 후든, 아니면 제가 이 세상에 없는 100년 후에라도 좋아질 거란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년간의 격무와 불규칙한 수면은 이 교수의 건강을 갉아먹고 있다. 이 교수는 1년 후, 10년 후를 얘기했지만 정작 그의 몸이 언제까지 버텨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불면증이 심해져서 낮에 멍할 때가 있어요. 당직을 선 후에 외래를 볼 때도 수면 부족으로 판단이 늦는다고 느낄 때가 있고요. 지금까지는 괜찮았지만, 앞으로도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계명대동산 신소영 교수 “외래·분만·NICU 응급 동시에 감당…밥 한끼도 못 먹어”
 
권역모자의료센터인 계명대동산병원은 대구·경북 지역 분만의 약 80%를 받아내고 있다. 타 지역에서도 NICU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계명대동산병원으로 이송되는 산모와 아이들이 많다. 덕분에 NICU 병상은 비어 있을 새가 없다. NICU 39병상에 PICU(소아청소년중환자실) 7병상까지 신생아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병상은 늘 부족하다. 결국 병원은 오는 9월 NICU 병상을 4개 더 늘릴 예정이다.
 
꺼져가는 조그마한 생명을 살려내느라 신소영 교수(계명대동산병원 신생아과)는 평범한 일상을 포기한 지 오래다. 일주일 중 당직이 4일, 주당 근무시간은 100시간에 달한다. 잠은 고사하고 하루에 한 끼조차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집은 이틀에 한 번꼴로 가서 몸을 누이고 오는 정도다. 샤워를 할 때도 병원에서 연락이 올 수 있어 핸드폰은 곁에 둔다. 자녀 2명은 엄마가 일하는 동안 할머니가 돌본다.
 
“외래, 분만, NICU 응급이 동시에 터지는데 저 혼자입니다. 병원을 뛰어다니면서 일해요. 저도 그나마 아직 40대 초반이라 갈아 넣으면서 버티고 있지만, 더 나이가 들면 이렇게는 못 할 것 같아요.”
 
신 교수가 계명대동산병원에서 아이들을 진료하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15년가량이 지났다. 당시 소아청소년과 의국은 지금과 달리 전공의들로 북적였고, 신 교수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국했다. 그러나 이대목동병원 사건 등의 영향으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거짓말처럼 급감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꾸던 교수와 전임의들도 하나둘씩 떠났다. 신 교수는 마지막까지 남아 사투를 벌이고 있다. 주변에서 신 교수를 잔다르크에 빗대 ‘신다르크’라고 부르는 이유다.
 
현재 신 교수와 함께 NICU에서 일하는 의사는 2명이다. 한 명은 내년 퇴임을 앞둔 시니어 교수, 나머지 한 명은 이제 막 신생아과 세부전문의 자격 취득을 앞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다. 추가 인력을 구해보려 전국 각지의 신생아과,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에게 전화를 돌려봐도 번번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나마 내년에 지역 내 타 병원에서 신생아과 교수 1명이 합류하기로 해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됐다.
 
“물론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몇 번이나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그만두면 여기 있는 아기들이 갈 곳이 없습니다. 눈앞에 내 이름이 달린 아기들이 계속 생기니, 그 아이들만 보다가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제가 나가면 봐줄 사람이 없으니…”
 
계명대동산병원 NICU 전경. 사진=계명대동산병원

원주세브란스 유영명 교수 “필사적으로 아기 살렸지만 돌아온 소송에 허탈”
 
유영명 교수(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신생아과)는 환자 보호자들에게 소송을 당했던 때 사직을 생각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경우엔 소송을 당하는 일이 드물다고 한다. 오히려 필사적으로 살려냈지만 장애가 남는 경우,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환자 측에서 소송을 취하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데도 돌아오는 건 소송이구나 싶어 허탈했던 게 사실입니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NICU는 신생아 세부전문의 3명과 당직을 보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1명이 19개 병상을 책임지고 있다. 역시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몰려들어 오는 9월까지 병상을 22개로 늘릴 예정이다.
 
유 교수는 병원 근처에서 숙식한다. 집은 분당이지만 한 달에 1~2번 정도 가는 게 전부다. 아이 둘의 육아는 아내가 전담하고 있다. 인력을 더 충원하고 싶지만 지원자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원래 연차당 2명씩 총 8명이 있어야 할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도 현재는 1명뿐이다. 그마저도 8월 졸국 예정이라 조만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0명이 된다.
 
그는 3~4년 전까지만 해도 의대생과 인턴들에게 소아청소년과를 추천했다. 하지만 이제는 소용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후배들을 설득하는 일을 그만뒀다. 더 이상 거기에 힘을 쏟고 싶지 않다고 했다.
 
유 교수는 이대로 신생아과의 명맥은 끊길 것이라고 덤덤하게 털어놨다. 하루하루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기존 신생아 의사들도 조만간 가슴에 품은 사직서를 꺼내는 게 시간문제일 것이라고도 했다.
 
“가족들은 그만두고 오라고 합니다. 그래도 사명감이랄까요. 제가 그만두면 여기가 무너진다는 걸 알고 있으니 선뜻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전국적으로 신생아 의사들도 지쳐가고 무너지고 있습니다. 다른 병원 신생아과 교수들과 서로 언제 그만둘지를 물어보는 게 문화가 아닌 문화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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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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