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72가지 이유》, 《우리는 매일 독을 마시고 있다》,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 등의 저서를 남겼던 허현회 씨가 사망했다고 한다.
그가 쓴 책 제목에도 나타나지만, 허 씨는 현대의학을 부정하고 자연의학을 주장했던 작가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듯, 자기 몸을 '카데바(해부용 시신)' 삼아 의료에 관한 본인 신념을 실천하는 데까지 뭐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다만, 잡스와 달리 허 씨는 타인까지 영향을 줘, 의료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허현회 씨는 온라인 카페 '약을 끊은 사람들'을 운영하면서 많은 회원을 모아 그의 주장을 전파한 바 있다.
회원 중 일부는 그의 말대로 현대의학을 거부하고 자연치료법을 선택했다가 사망하기까지 했다.
술과 담배를 각각 '천연 음식'과 '천연 약초'로 표현하며 흡연과 음주를 종용하기도 했던 그의 신념은 마지막까지도 대단했다.
그는 사망 몇 년 전부터 호흡기 감염(결핵)에 조절되지 않는 고혈당으로 '어쩔 수 없이' 병원의 힘을 빌려야 했다.
하지만 입원 후에도 의료인의 말을 듣지 않고 퇴원해, 자의적으로 자연치료에 몰두하다 사망하고 만다.
그의 사망 나이 55세.
평균 수명 80세를 기대하는 시대엔, 다소 아쉬운 나이다.
건강 악화 원인이 암이나 희귀질환이 아닌, 비교적 현대의학으로 잘 치료되는 결핵과 당뇨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유사의학 전성시대 : 허현회 씨를 막지 못하는 이유
우리 사회는 사이비 의료에 관대하다.
사이비 의료를 환자 몸에 직접 적용하면 처벌 받지만, 사이비 의료를 전파하는 데엔 별다른 제약이 없다.
이런 가짜 의료가 확장할 수 있었던 건, '과장된 현대의학의 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의학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 늘면서, 약물 부작용의 절대 빈도 역시 증가할 수밖엔 없었는데, 이런 현상이 음모론과 만나 그 근본을 부정하는 주장이 힘을 받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사이비 의료는 '대체의학'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이런 가짜 의료가 유독 한국에서 잘 먹히는 이유가 뭘까?
다양한 사회학적 이유 대신 의료시스템으로 한정 지어 얘기하면, 이런 상황은 특수한 국내 의료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의료는 아픈 순간부터 '선택'이 필요한 영역이다.
"의사를 만날까? 아니면, 한의사를 만날까?"
국내 환자는 진료 시작부터 선택권을 본인이 갖는다.
의학 지식의 편차가 큰 환자들이 항상 제일 나은 선택을 할 리 만무하지만, 국가는 이상하리만큼 환자의 선택을 존중해준다.
그리고 기회를 엿보던 각종 사이비 의학은 선택지의 한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환자와 보호자를 유혹한다.
의료라는 영역에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선택권을 주는 게 옳은 것인가?
국가는 최선의 의료를 국민에게 제공한다.
간혹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차선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러나 의학과 한의학으로 이원화된 국내 의료에선 이런 기본 원칙이 파괴된다.
국민에게 전혀 다른 의료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면, 선택지 간 치료 결과에 차이가 없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국가가 서로 다른 치료에 보험 급여를 모두 인정하는 순간, 국민은 그 효과에 큰 차이가 없다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른 의료의 치료 결과가 같을 리 없다.
의사나 한의사조차 어떤 의료가 더 좋은 결과를 내는지 그 우열에 관한 이견은 있을지언정, 결과 자체가 다르다는 데는 모두 동의한다.
현재까지 정부는 이런 사실, 즉 환자 개인의 선택에 따라 치료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에 관해 단 한 번도 명시한 적이 없다.
두 의학의 치료 결과가 같으니, 안심하고 아무거나 선택하라고 보장한 적도 없다.
정부의 태도는, 요약하자면 항상 이랬다.
"우리나라는 두 개의 의학이 있고, 뭐가 더 좋은지 정부는 모르지만, 선택은 환자 네가 알아서 하세요!! 대신 무엇을 선택해도 보험 인정은 해 줄게~~~"
만약 허현회 씨 같은 주장을 하는 집단의 세력이 커지면서, 정부에게 자연치료를 요구하는 국민이 늘면 어떻게 될까?
정부는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연치료'를 급여까지 인정하는 의료보험의 세 번째 치료 옵션으로 채택할까??
사실 사람의 기본 면역력에 의존하는 '자연치료'만큼 인류 역사에서 '오래된 의학'도 없으니, 전혀 불가능한 가정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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