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방적 정책, 양질 의료 서비스 위한 의사 공감·헌신 못 이끌어내...법·제도적 한국의료 정당한지 의문
안나 드 비어(Anna de Beer,영국 세인트앤드루스 의과대학 졸)가 영국 의·과학 전문 미디어인 오닉스(Onyx)에 기고한 '계엄령이 레지던트 의사들을 겨냥하다(Martial Law Targets Resident Physicians: Implications for the Healthcare Crisis in South Korea)' 내용.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영국 의사가 최근까지 이어진 한국의 의정갈등 사태에 대해 "견고해 보이던 국가 의료 시스템조차 정부와 의료계 간의 신뢰가 무너지면 급속도로 붕괴될 수 있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세계의과대학생연합회(IFMSA) 임원으로 활동했던 안나 드 비어(Anna de Beer,영국 세인트앤드루스 의과대학 졸)는 지난 7일(한국시간) 영국 의·과학 전문 미디어인 오닉스(Onyx)를 통해 '계엄령이 레지던트 의사들을 겨냥하다(Martial Law Targets Resident Physicians: Implications for the Healthcare Crisis in South Korea)' 기고를 공개했다.
그는 의정갈등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세계의대생연합회 임원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안나는 기고에서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의 위협을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했고 이 과정에서 사직한 전공의를 직접 겨냥해 48시간 내로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한다고 언급했다. 이 전례 없는 조치는 한국의 고품질·보편적인 의료 시스템을 지탱해 온 의사들을 심각한 위협 아래 놓이게 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계엄령은 몇 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이 사건은 의사들과 국가 간의 관계를 극적으로 바꿔놓았다. 이는 의료인의 자율성과 공공보건을 보호하려는 국가의 의무 사이의 균형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야기했다"며 "직업적 분쟁 해결을 위한 계엄령 선포는 한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의사에 대한 강제적 복종 요구는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된다. 또한 향후 의사의 사직권을 보장하는 구체적이고 명문화된 입법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현재 정부와 의료계 간 신뢰 회복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지속 가능한 의료 인력 정책을 위해서는 모든 당사자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다시 구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계의과대학생연합회(IFMSA) 임원으로 활동했던 안나 드 비어(Anna de Beer) 모습.
한국의 의정갈등 사태가 전 세계 국가에 교훈을 주고 있다는 메시지도 나왔다.
안나는 "이번 한국의 의료 사태는 정치적 불안정성이 의료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전 세계 보건 시스템에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면서 "직업적 분쟁이 국가적 사안으로 비화되면 의료 시스템이 불안정해지고, 헌신적인 의료인의 사기를 저하시킬 위험이 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는 견고해 보이던 국가 의료 시스템조차 정부와 의료계 간의 신뢰가 무너지면 급속도로 붕괴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정부의 일방적 정책 집행은 양질의 의료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의사의 공감과 헌신을 강제로 이끌어낼 수 없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이 위기는 단순한 의대 정원 확대 논쟁을 넘어, 의료 전문가와 국가 간의 근본적인 관계에 대한 문제로 발전했다"며 "이제 한국 의료계와 정부 간의 법·제도적 결속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제도적 관점에서 한국 의료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제기했다.
안나 드 비어는 "전공의 사직 사태 이전부터 한국 의사들의 불만은 이미 쌓여 있었다"며 "한국은 민간 의료보험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에 의사들은 정부 정책의 일방적 시행에 항상 취약한 구조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국의 의사들은 국민건강보험 시스템 안에서만 진료할 수 있으며, 이 시스템은 국가가 진료수가를 통제한다. 이 시스템 하에서 정부는 진료 수가를 병원이 실제로 지출하는 비용보다 낮게 책정한다. 이 때문에 병원들이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에 의존하지 않으면 재정적 생존이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