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3.08 07:51최종 업데이트 22.03.08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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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교수 10명 중 9명은 ‘성취감’ 못 느껴…절반은 ‘퇴직’ 충동 심각

과도한 규제·많은 근무시간·근로 대비 보상 부족...여성‧40대 미만 젊은 교수진 번아웃 특히 심해

의과대학 교수진의 스트레스 또는 번아웃에 기여하는 요인. 사진=Burnout of Faculty Members of Medical Schools in Korea, JKMS.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국내 의과대학 교수진의 92%가 개인성취 감소를 경험하고 47%가 교수직을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이거나 30~40세의 젊은 교수 층에서 업무 관련 번아웃 정도가 심했다.
 
전문가들은 의대 교수들의 업무 로딩을 줄일 수 있도록 진료, 연구, 교육 등 파트에서 개인에 맞게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업무 배분과 인력 충원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정서적 번아웃 34%, 이인화 66.3%…여성‧40대 미만에서 두드러져
 
고려대 의과대학 이영미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경상대 의과대학 서지현 소아청소년과학교실 교수 등 연구팀은 7일 '한국 의과대학 교수진 번아웃(Burnout)' 연구를 대한의학회지(JKMS)를 통해 공개했다.
 
이번 연구는 전국에 위치한 의과대학 교원의 번아웃에 대한 첫 조사로 2020년 10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40개 의대 교수진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최종적으로 996명의 교수진이 설문에 참여했다. 855명이 번아웃 관련 질문에 답했고 829명은 설문의 모든 질문에 작성을 완료했다.
 
연구결과, 상당 수의 의대교수들 높은 수준의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선 정서적 번아웃을 느끼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34%였고 이인화 장애(자아의식장애)를 겪고 있다고 답한 이들도 66.3%에 달했다. 또한 개인의 성취 감소를 경험한 응답자도 92.4%나 됐다.
 
응답자의 약 3분의 1인 31.5%는 감정적 번아웃과 개인적 성취감 감소를 모두 겪고 있었고 31.7%는 감정적 번아웃과 이인화를, 30.1%는 세가지 차원에서 모두 높은 수준의 번아웃 증상을 보였다.
 
번아웃 수준은 인구통계학적 특성에 따라서도 유의하게 달랐다.
 
여성 교수진은 남성 교수진보다 감정적 번아웃과 이인화에서 큰 차이를 보였는데 여성 교수진의 43.2%가 감정적 번아웃을 경험한 반면 남성 교수진은 29.6%에 그쳤다. 이인화의 경우 여성 교수진이 71.6%, 남성 교수진이 63.7%였다.
 
또한 40세 미만 교수진의 정서적 번아웃과 이인화 수준도 유의하게 높은 반면, 개인의 성취도 감소는 그렇지 않았다.
 
연령대에 따른 세 가지 영역에서 번아웃의 빈도. 사진=Burnout of Faculty Members of Medical Schools in Korea, JKMS.

과도한 규제가 주된 스트레스 요인…‘연구’가 가장 힘들어
 
교수진의 가장 큰 스트레스 혹은 번아웃 원인은 '정부나 대학의 과도한 규제(69.2%)'로 나타났다. 이 외 근무시간이 너무 많다고 답한 응답자도 66.3%에 달했고 근로 대비 보상이 부족하다는 답변은 64.4%, 연구 요구사항이 너무 많다는 응답도 64.1%였다.
 
또한 '관료적인 업무가 너무 많다'고 느끼는 교수진은 63%나 됐고 '자신이 바퀴에 달린 톱니바퀴 같은 느낌'을 받는 이들도 49.5%에 달했다. 이 외에도 '학생 교육의 어려움을 느낀다'는 답변은 42.1%, '동료나 교직원의 존경심 부족'을 경험하는 이들도 38.9%였다.
 
업무분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연구'를 소위 '가장 짜증나는(exasperating)' 업무로 뽑은 비율이 37.2%로 가장 많았다. 특히 이들은 연구비를 받는 행위 자체와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 간의 갈등이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답했다.
 
이외 학교와 병원에서 요구하는 과도한 행정 업무, 지업과 무관한 허드렛일, 의료 소송의 잠재적 위험 등이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혔다.
 
반면 '교육'은 교수진에게 있어 가장 스트레스가 적은 영역이었다. 응답자의 2.8%만이 교육을 스트레스 요인으로 지목했다.
 
번아웃에 대한 부작용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47.7%가 현재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답했다. 또한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는 응답자는 38.3%, 이직을 시도해 본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16.8%에 달했다. 심지어 자살 생각을 한다는 교수진은 8%나 됐고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해 본적이 있는 응답자도 0.6%에 달했다.
 
수가 개선‧업무 배분 등 업무 감소 위한 제도 개선 필요
 
이번 연구를 총괄한 이영미 교수는 전반적인 의대 교수들의 번아웃 수준이 높다는 점을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전반적인 업무 과부하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영미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세 가지 범주에서 번아웃 수준을 측정했는데 예상보다 높게 나와서 놀랐다. 특히 우리나라 교수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환자 진료 관련 업무 로딩이 너무 많다"며 "구체적으로 보면 여성 교수는 아무래도 가사나 양육의 문제로 인해 번아웃을 경험하는 이들도 많아 보인다. 이는 해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해외 사례와 다른 부분은 젊은 교수층에 업무가 몰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선 50대가 넘어가면서 잡다한 업무는 줄지만 관리자로서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많아진다"며 "요새 젊은 교수들은 주 5일 진료하고 회진 돌고 밤 늦게서야 자기 연구를 할 수 있다. 번아웃이 오지 않는 것이 이상한 구조"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론 대학병원 쏠림 현상을 줄일 수 있는 제도적 개선책이 요구됐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대학병원 쏠림이 심하니 대학 교수들의 업무가 많아지고 번아웃이 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저수가를 정상화해서 병원에서 고용할 수 있는 교수나 레지던트 인력을 보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를 시작으로 정기적으로 교수들의 번아웃 연구를 시행해 업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정책적 시도를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 제1저자인 서지현 교수는 교수들의 개인 성취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 가장 안타깝다고 전했다.
 
서지현 교수는 "연구에서 가장 의외였던 부분은 전문직인 의대 교수들의 성취감이 바닥이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30%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성취 감소를 92%가 겪고 있었다. 심지어 50~60대 교수들도 성취감 감소를 80%가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가 내 업무에 만족하고 일을 내가 잘하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 점점 줄고 있는 것 같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서 교수는 "이런 결과는 연구, 진료, 교육 세 가지를 모두 잘 해야만 하는 한국 의과대학 시스템의 문제"라며 "모든 파트를 잘하지 않더라도 한 가지 정도의 비중을 줄이고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나머지 파트에 집중해도 승진이나 보상이 따를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고 젊은 교수진의 적응을 돕기위한 멘토-멘티 프로그램 등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제언했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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