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토론회서 민주당 "국가 책임 강화 의지에 의구심"...복지부 "모호한 지원율, 한시적 지원 등 명확화 필요"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현행법 상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 지원이 올해를 끝으로 종료를 앞둔 가운데 의료계에선 지원 연장에는 동의하지만 건보 제도의 재정비가 선결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야당은 현 정부가 건강보험에 대한 재정 투자의 의지가 크지 않다고 우려했고, 보건복지부는 국고 지원이 보다 명확하고 안정적으로 이뤄저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사업자, 근로자 보험료 부담 커...비합리적 수가 협상∙과다 의료이용도 문제
서울시의사회 이세라 부회장은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건강보험 국고 지원 일몰 기한을 연장하는 데는 동의한다면서도 건보 제도 자체의 문제가 우선 개선돼야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부회장은 먼저 사업자가 근로자의 건강보험료를 50% 부담해야 하는 현 상황을 문제 삼았다. 매년 의료계에서 볼멘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수가협상도 합리적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들이 84% 가량 되는데 건보료의 절반은 사업자가 내주고 있다”며 “그렇다면 사업자에 대한 건강보험의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가협상도 문제다. 수가협상이 합리적으로 되면 병원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긍극적으론 이익”이라며 “하지만 지난 13년 동안 수가는 41% 오른 반면 최저임금은 131%나 올라 의료기관들은 경영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비급여의 급여화로 의료비 부담이 줄고 의료전달체계가 망가지면서 의료이용이 과다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국고 지원 등이 실질적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 같은 문제들이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상복부 초음파는 급여화 이후 1425%, MRI는 209% 증가했는데 이건 정상이 아니다”라며 “비급의 급여화를 중단하거나 줄이고, 의료전달체계를 통한 환자의 이용제한, 의사 1인당 건강보험진료 환자 수 제한 등을 통한 의사 측의 서비스 제공 제한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영국의 예를 들며 건강보험에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적 계약형태를 허용해줄 것도 요구했다.
그는 “영국처럼 건보 적용을 받지 않는 특별한 계약형태를 최소 3~10% 정도 허용하면 서민들의 건강은 건강보험으로 유지하면서 그 외에 고급서비스를 원하는 환자들도 만족할 수 있다”며 “이는 양측의 부담을 줄이면서 지속 가능한 건보 제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고, 사업자의 준조세 부담을 덜어줘 의료인과 병원 직원들에게 모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건보재정 국가 책임 강화 의지 안 보여...보험 혜택 줄이거나 요양급여 쥐어짤 것
더불어민주당 조원준 보건의료 수석전문위원은 윤석열 정부가 건강보험에 대한 재정적 투자나 국가적 책임을 강화할 것이란 기대가 높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오히려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을 금융상품으로 활용하려 했던 시도가 다시 있을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조 위원은 “국고 지원을 명확히 하기 위한 입법 시도는 계속 있어왔다. 이번 정부의 국정과제 초안에도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최종본에선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복지부와 기재부의 힘 싸움 끝에 기재부의 입장이 관철되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가 보험 재정의 장기적 안정화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를 엿볼 수 있는 선례”라고 했다.
이어 “다수당임에도 관련 법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도 비판은 피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전임 정부도 무능으로 비판받아야 할 대목이라고 본다”며 “다만 최근 2년간 국고지원 액수 자체는 1조원 이상 증가했지만 분모가 계속 확장되면서 비율을 맞추기 어려운 현실적 부분은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위원은 또한 “현 정부에서는 박근혜 정부 때 누적적립금을 금융 상품으로 활용하려던 제도적 시도가 다시 논의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이는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는 건강보험 기금화 논의와도 맞물려 있다”고 부연했다.
건보재정의 지출 구조 조정에 대해서는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지만 기존의 대책을 기술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조 위원은 “특히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불법 사무장병원 적결에 대한 정책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실제 현재 법사위에 계류돼 있는 특사경법에 대해 복지부 태도가 매우 미온적”이라며 “정치적으로 보자면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가 연루됐던 사무장 병원 사건을 의식하다보니 이런 논의 자체가 안 되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했다.
정부가 최근 부과체계 2차 개편 진행 과정에서 사실상 보험료 부과를 늦추는 선택을 하며 추가 부담 소요액이 2조원을 넘는다는 점도 언급했다.
조 위원은 “현재로선 보험료율 인상도 어렵고, 국고지원 확대도 재정당국이 절대 동의하지 않는듯 보인다”며 “결국 복지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보험 혜택을 줄이거나 요양급여를 쥐어짜는 두 가지 형태로 좁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타 선진국 대비 낮은 국고지원율...모호한 인상율과 한시적 지원도 문제
복지부는 국고 지원 확대의 당위성을 여러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복지부 보험정책과 현수엽 과장은 먼저 “현재 고령화와 생산가능 인구 감소 추세 속에 국가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실제 외국은 국고 지원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에 비해 우리는 지원 비율이 크게 낮다”고 설명했다.
건보료가 누진적 체계가 아니라는 점도 짚었다. 형평성 차원에서 누진세가 적용되는 조세에서 지원되는 게 적절하다는 것이다.
건보료든 국고지원이든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은 같은데 왜 국고지원을 확대해야 하느냐는 지적에 대해선 건보료 인상은 고용을 축소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 과장은 “우리나라에선 사용자가 직원의 4대보험료 절반을 내주고 있는데 부담이 증가하면 고용을 꺼릴 수 밖에 없다”며 “실제 고용 구축 효과를 막기 위해 주요 선진국들도 국고 지원을 크게 확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국고 지원이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모호한 지원율과 한시적인 지원 기한 등의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고지원 비율 지켜진 적 없어...합리적 편성 기준 마련해야
이날 발제자로 나선 전문가들도 정부의 국고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병원운동본부 정형준 공동집행위원장은 “현재 보장성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수준으로 올리려면 최소 2020년 기준으로 15조원 이상의 건보 재정확대와 지출이 필요한데. 가장 큰 걸림돌은 낮은 수준의 국고지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험료율은 매년 인상하며 법정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데 반해 국고지원 비율은 예상수입의 14%가 계속 유지되고 있고 그마저도 예상수입의 14%를 지원한 적도 없다”며 “우리보다 전국민건강보험을 늦게 시작한 대만은 국고지원을 보험료 수입의 36% 이상으로 명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은 건강보험이 적립금을 과도하게 쌓아놓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건강보험은 단기보험으로 매년 수입과 지출을 결정하는 구조”라며 “과도한 누적적립금은 건강보험 예상치가 틀렸음을 의미하는 만큼 다음 회계연도의 보험료 수입을 줄이거나 현물 급여를 늘리는 방향으로 결정되는 게 맞다”며 “하지만 여태껏 정부는 이런 과정을 무시하고 흑자운영을 자랑처럼 선전했다”고 했다.
이어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은 운용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 정도로 한정해야 한다”며 “불필요한 누적적립금은 정부가 국고지원을 미납할 핑곗거리가 된다”고 덧붙였다.
나라살림연구소 정창수 소장은 건보 재정 수입 증가를 위해선 국고지원에 대한 합리적 편성 기준 마련을 주문했다. 현재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4% 를 지원하는 정부지원금은 지원 규모 조정에 따른 감액 조정으로, 매년 14%에 미달하고 지원 비율도 일정치 않아 예측가능성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지원규모 조정 규모는 일정 기준이 없어 매년 차이가 있다”며 “보험료 예상수입액과 비교해도 정부지원금 지원비율은 최근 5년동안 10~12% 수준”이라고 했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기여하는 바를 사회적 편익 등의 형태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 소장은 “기재부가 공공기관 평가단을 하면서 심평원도 심사했는데, 실제 심평원이 잘 하고 있다면 그걸 숫자로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교육과 주택은 사회적 편익이 얼만지 효과가 얼마인지 다 나온다. 그런데 여전히 의료는 비용으로만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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