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제비 절감, 다른 증상 동시 처방 기피하고 오리지널 약 아닌 제네릭약만 처방할 것" 우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는 22일 성명서를 통해 "정부는 분석심사 선도사업을 통해 의료비를 적극적으로 통제하고 관치의료 시스템을 더욱 강화할 계획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지난 해 뇌-뇌혈관 MRI 급여화가 논란이 되는 과정에서 경향심사를 핵심으로 하는 심사체계 개편안이 공개됐다. 당시 병의협을 비롯한 많은 의료계 단체들은 경향심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는 의료비 통제의 수단이며 오히려 의료 질이 하락하고 의료의 자율성이 저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궁극적으로 정부가 경향심사를 추진하는 주 목적은 포퓰리즘 정책인 문재인 케어를 완성하고 가치기반평가제(VBP)로 지불제도를 전환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도 언급했다"라고 했다.
병의협은 "지난해 9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성명을 발표한 뒤 의료계 내부에서 경향심사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경향심사 추진을 중단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분석심사로의 심사체계 개편안을 들고 나왔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하지만 분석심사는 경향심사를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할 뿐 경향심사의 내용과는 다를 것이 전혀 없었다. 지표 모니터링 중심의 심사 방향, 전문가평가제로 이름만 바꾼 동료평가제 등 기존에 경향심사에서 추진하고자 했던 내용들이 분석심사에도 그대로 포함돼 있었다. 정부의 이러한 기만행위에 대해 여러 단체에서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으나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지난 1일부터 분석심사 선도사업을 강행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분석심사, 비용 영역 지표에서 낮은 진료비 유도로 의료 질 저하 초래
병의협은 "분석심사 선도사업 지침를 보면, 정부가 분석심사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지불제도 개편을 포함한 의료비 통제이면서 의료의 자율성을 더욱 제한하는 방향으로 관치의료 시스템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선도사업 지침에서 발표된 세부 분석지표들을 보면, 분석심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라고 밝혔다.
병의협에 따르면 분석심사 선도사업 지침의 후반부 별첨에 있는 '주제별 분석심사 대상 및 분석지표' 항목을 예시로 들었다. 분석심사 선도사업에 포함된 질환이나 수술은 총 5개로 고혈압, 당뇨병, 만성폐쇄성폐질환, 천식, 슬관절치환술이다. 이 중에서 슬관절치환술은 종별에 관계없이 모두 분석심사의 대상이 됐으며 나머지 4개의 질환들은 의원급 의료기관들에 한해서만 분석심사의 대상이 됐다.
병의협은 "각 항목에 나와 있는 분석지표들은 의료의 현실을 반영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의료의 왜곡과 질 저하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아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분석심사 대상에 포함된 5개 항목들의 비용영역 지표들에는 공통적으로 환자보정 총진료비 및 환자보정 총진료비 열외군 비율이 지표로 포함돼 있다. 또한 슬관절치환술을 제외한 4개의 질환들의 비용영역 지표에는 원내진료비와 원외약제비도 열외군 비율을 포함해 지표로 선정돼 있다. 분석심사에서는 다른 기관들과 비교해 지표값이 평균에서 많이 벗어나거나, 동일 기관에서도 이전에 비해 지표값의 변동이 심한 경우 심층심사의 대상이 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용영역에서는 평균보다 낮은 것을 문제 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평균보다 비용영역 지표값이 높을수록 심층심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의료기관들은 심층심사를 피하기 위해서 진료비를 가능한 낮게 유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총진료비를 구성하는 것이 바로 원내진료비와 원외약제비 임을 감안했을 때 총진료비도 낮게 유지해야 하지만 의료기관들은 지표값 관리를 위해서 원내진료비와 원외약제비도 각각 낮추는 방향으로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원내진료비를 낮춘다는 의미는 과소진료를 의미한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환자가 정부에서 정해진 항목 이외에 추가적인 검사를 더 하고 싶다고 요구해도 의사는 원내진료비 증가의 부담 때문에 이를 쉽게 응하기 힘들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의협은 "이러한 문제들은 의료현장에서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 형성을 어렵게 하고 환자들의 의료에 대한 만족도를 저하시키며 결국 의료의 질이 저하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 같은 고혈압이나 당뇨병 환자라고 하더라도 비교적 검사를 자주 해봐야 하는 초고령 환자나 합병증 우려가 높은 복합 질환자들은 의원급 의료기관들의 기피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환자들이 종병이나 상급종병으로 몰리게 되면 의료전달체계도 무너지게 된다"고 밝혔다.
약제비를 낮추기 위해 다른 증상 처방 기피, 오리지널 아닌 제네릭 위주 처방 우려
병의협은 "원외약제비를 낮게 유지하기 위해 비교적 약가가 낮은 제네릭 약제를 처방해야 하고 약제의 종류도 최소화해야 한다. 의원급 의료기관들의 경우 원내진료비는 의료기관 매출과 매우 밀접하기 때문에 이를 낮추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만 원외약제비의 경우는 다르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처방하는 약의 종류나 개수가 수익과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분석심사 해당 질환을 진료할 때는 약제 종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환자의 다른 증상에 대한 처방을 기피하게 될 것"으로 우려했다.
병의협은 "예를 들면 고혈압 환자가 혈압약 처방을 받으러 의료기관을 방문 했을 때 감기 증상도 있어 감기약도 같이 처방 받으려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아픈 환자의 요구이기 때문에 의사 입장에서 이를 쉽게 거부하기는 힘들겠지만 가능하다면 처방을 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료를 하고 환자를 설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환자에게 피해가 가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이러한 진료 패턴을 유도하는 상황에서 의사를 탓할 수만은 없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또한 원외약제비를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 비교적 가격이 비싼 오리지널 약제를 기피하고 제네릭 약제 중에서도 가장 싼 약을 선호하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제네릭 약제가 오리지널 약제와 비교해 효과의 차이가 전혀 없다면 이러한 방향으로 약제비를 절감하는 것은 옳은 방향으로 생각 할 수 있다. 의사들이 보다 가격이 낮은 약을 선호하는 현상이 생기게 되면 제약회사들 입장에서도 약가를 더욱 낮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병의협은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출시되는 제네릭 약제들의 효과와 안전성은 신뢰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전부터 국내 생동성 시험의 신뢰성은 꾸준히 지적돼 왔으며 최근 중국산 원료를 사용해 안전성에 문제가 됐던 발사르탄 사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들도 국내 제네릭 약제를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한 싼 약을 처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원외약제비 지표는 환자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원외약제비를 낮추는 진료 패턴의 변화는 제네릭 위주 처방의 문제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네릭이 없는 신약 처방을 외면하는 문제도 만들 수 있다. 현재 고혈압과 당뇨병은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약제 개발에 대한 연구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고 실제로 효과와 안전성 면에서 우수한 신약들이 매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새로운 약제들은 일정 기간 동안 특허권이 유지되기 때문에 제네릭 약제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약제들은 약제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원외약제비를 절감해야 하는 의료기관들의 입장에서는 처방하기가 어려워진다"라고 밝혔다.
병의협은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약을 처방한다고 해서 더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닌데 효과는 더 좋지만 비싼 약을 처방하면 의료기관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 이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국내 환자들이 보다 나은 약을 처방 받을 기회를 국가가 박탈하는 것이고 대한민국 의료의 수준을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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