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의대 증원 무엇이 달랐나…6년간 의사수급분과회 회의 50회 vs 의사 수급 추계 회의 0회
일본, 정교한 의사 수급 추계로 의대 정원책 수용성 높여…일방적 의대 정책으로 의료계 반발 일으킨 한국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우리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확한 의사 인력 수요와 공급 추계 관련 회의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일본의 의사 수급 정책 과정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 정부는 후생노동성 주도로 의사 인력 수급에 대한 심도 있고 다양한 논의를 진행했고 해당 의사수급분과회의 회의를 녹취 수준의 회의록으로 남겨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었다.
22일 대한의학회 이상규 기획조정이사가 입학정원 증원 사태와 관련해 일본의 의사 수급 논의와 정책 결정을 주도한 후생노동성 산하 '의사수급분과회'의 경과를 분석한 '일본의 의사 수급 정책 진행 과정과 시사점'을 발간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일본, 2006년부터 의사 점진적 증원했다가 2019년 이후 감축
이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보험 형태의 의료보험(건강보험)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에 일본인은 일본 모든 의료기관에서 후생노동성이 정한 동일한 수가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또 병원과 의원 간 역할 분담도 명확하지 않고 문지기 역할을 하는 일차진료의도 존재하지 않아 환자들은 본인이 원하는 의료기관과 의사를 제한 없이 선택할 수 있다. 이에 의료 공급의 많은 부분을 민간에 의존하고 있고 국민의 의료이용이 매우 많다는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2000년대에 들어 현재 우리나라처럼 산과나 소아과 등 특정 진료과와 특정 지역의 의사 부족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고, 후생노동성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대책을 추진하게 된다.
일본의 의사 인력 현황을 살펴보면, 일본은 1970년대부터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를 1.5명으로 증가시킨다는 목표를 정하고 의과대학 정원을 증가시켜 1983년 의사 수 8280명으로,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1.5명에 도달했다.
그러나 1986년 '미래 의사 수급에 관한 검토위원회' 논의에서 향후 의사 과잉이 예상됨에 따라 의대 정원 감축을 결정하고 점진적으로 감축해 2003년 7625명으로 감축돼 2007년까지 유지됐다.
2005년 후생노동성은 산하에 '의사 수급에 관한 검토회'를 설치해 2022년까지 거시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뤄 국가 전체적으로 필요한 의사 수는 공급되지만 특정 지역이나 특정 진료과의 수요가 자연적으로 충족되지 않을 것이며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일본은 2006년 '신 의사 확보 종합대책', 2007년 '긴급 의사 확보 대책'이 발표됐고, 지역정원제 등을 통해 의대 정원을 점진적으로 증원했다.
이를 통해 의과대학 정원은 2019년에 9420명이 됐는데 2028년 내지 2033년에 공급초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의사수급분과회의 예측에 따라서 점진적인 감축을 진행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의사' 참여하는 의사수급분과회 운영…수요 및 공급 추계 방법론 적용
이 교수는 일본이 이처럼 의대 정원을 늘리고 줄이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후생노동성에 '의료인력 수급에 관한 검토회'를 구성하고, 그 산하에 ‘의사수급분과회’를 운영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의사수급분과회는 2015년 12월 10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2022년 1월 12일까지 6년 1개월여 동안 40회의 회의를 진행했다.
2015년 초기 위원회 위원장은 의사인 가타미네 시게루 나가사키대학 총장이 맡았으며 15명의 위원 중 의사는 11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분과회에서는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의 미래 의사 수에 대한 정밀한 추계를 진행했고 특정 지역이나 특정 진료과의 의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논의했다. 분과회에서 논의된 결과는 5차에 걸친 보고서로 정리됐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 의사수급분과회가 미래 시점의 의사 수급 균형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 분과회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지속적인 논의를 시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사수급분과회는 다양한 전문가들을 참고인으로 분과회에 참석시켜 의견을 청취했으며 다양한 의견들을 반영해 추계 방법을 정교화했다"며 "이러한 수요 및 공급 추계 방법론을 적용해 분과회 운영 기간 동안 수 차례 수급 추계를 실시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단순 의대 증원 정책과 함께 의사 지역·진료 편재 대책 마련
무엇보다 일본 의사수급분과회는 전국적으로 의사 수를 아무리 늘려도 실효성 있는 의사 편재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지역 내 의사 부족 해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인식 하에 의사가 적은 지역에서 진료하는 의사가 지치지 않고 진료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대책으로 제안한 것이 도도부현의 행정지원 역량 강화였다. 지역의료지원센터의 기능을 강화해 소재지의 의과대학과 연계해 의대 입학부터 평생에 걸쳐 의사의 경력 형성, 이동을 파악해 의사의 경력 형성 지원, 배치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은 또 '의료근무 환경개선 지원센터'를 통해서 의사가 적은 지역에서의 근무를 불안하게 느끼는 원인을 파악해 이를 제거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하고 의사가 적은 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에게 인센티브를 높이는 대책을 마련했다.
일본은 여성 의사들에 대해서는 출산, 육아 등의 라이프 이벤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환경을 정비했다. 또한 의사의 근무 상황 등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보다 구체적인 정책 수립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이 교수는 일본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지역의료나 필수의료 문제는 단순히 의대 정원을 증원하는 것으로 해결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2015년 시작된 의사수급분과회의 가장 큰 문제의식은 그 이전까지 약 10년간 의과대학 정원을 점진적으로 증가시켜 왔지만, 의사의 지역 편재, 진료과 편재의 해소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며 "단순히 의사의 숫자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의 편재 대책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고 그 원인과 대응책들을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6년 동안 정교화한 의대 정원 정책…1년 만에 날림으로 결정한 우리나라 정책 비교
이처럼 일본의 의사 수급 정책이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6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점진적으로 진행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의사단체와 정부의 의료현안협의체가 약 1년 간 28차례 이상 회의를 갖고 진행됐으나 의사 수급 추계와 관련한 논의는 단 한차례도 진행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해당 회의의 회의록은 보도자료로 대체돼 자세하고 구체적인 논의 내용은 남아 있지 않다.
또 정부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산하 의사인력위원회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논의했다고 하나, 해당 회의는 의사뿐 아니라 한의사, 간호사 등 타 직역과 시민단체 등 당사자인 의사보다 타 전문가들의 비율이 더욱 높았다.
보정심 회의 역시 1년만에 몇 차례밖에 이뤄지지 않았으며, 법원이 관련 회의록을 제출하라고 할때까지 관련 회의록은 비공개 상태였다.
이 교수는 "의사수급분과회는 의료의 전문가인 의사들을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했고 후생노동성 공무원들은 이러한 위원회의 진행을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며 "위원들 이외에도 수 많은 전문가들을 참고인으로 회의에 참석시켜 다양한 의견을 듣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더욱 주목할 점은 6년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지속적으로 자료를 검토하고 논의를 정교화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토대로 수 차례 수급 추계를 실시하였으며 이러한 결과들을 점진적으로 정책에 적용해 정책의 수용성을 높였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의사수급분과회의 모든 회의자료 및 논의 결과가 후생노동성의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공개됐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후생노동성의 홈페이지의 의사수급분과회 메뉴에 들어가면 6년 동안 40회에 걸쳐서 진행된 모든 회의의 의제와 회의록, 위원들의 인적사항, 관련 자료들을 누구나 볼 수 있다.
이 교수는 "회의록은 녹취 수준으로 수록돼 있어 실제 회의에서 어떤 위원들이 어떤 발언을 하였는지도 알 수 있다. 이러한 투명성으로 인해서 자료들은 더욱 철저하게 준비되고 분과회에 참여하는 위원들은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발언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화를 바꾸는데는 시간이 필요한데 현재와 같은 급격한 변화가 우리나라가 의료보험제도 도입 이후 40여 년 동안 형성해 온 의료체계와 의료문화를 송두리째 무너뜨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며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정책을 점진적으로 시행하는 일본의 사례에 관심이 가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