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무과실 불가항력 의료사고까지 의사에 전가...머나먼 프랑스 무과실 배상기구 'ONIAM'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의료배상에 관한 문제는 의료제도가 원활히 작동되도록 하고, 의사의 전문직업성 발휘가 수월하도록 돕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기제'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수도 없이 의료 개혁을 밀어붙였지만, 아직 의료배상제도에 관한 이렇다 할 마땅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특히 의료의 결과가 부정적인 경우, 그 원인이 의사의 의도와는 무관하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사고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데 이런 경우 누가 배상을 할지가 문제될 수 있다. 여기에 갑작스러운 팬데믹 상황 등으로 정부 방침에 따른 대규모 백신 접종 과정에서도 불가항력적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병원 내 감염의 경우도 의사가 주의를 게을리해서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프랑스는 국가 차원의 의료배상기구를 설립 운영하고 있고, 그 기관의 역할에 대해 최근에 공개한 ‘2024년도 연례보고서’를 바탕으로 소개하고 있다.
현대 의료 속성 '불확실성' 처리할 수 있는 공적 배상기구 선진 의료 필수조건
불가항력 의료사고는 현대 의료가 안고 있는 '불확실성'에 있다. 본의 아니게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했다면 그것은 의사나 의료기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프랑스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2년에 국가의료배상기구인 l'Office national d’indemnisation des accidents médicaux, des affections iatrogènes et des infections nosocomiales(ONIAM)를 설립했다. 법률 제정에 따라 ONIAM과 중재 및 보상위원회(Commissions de Conciliation et d’Indemnisation(CCI)) 시스템이 창설됐으며, 이는 의료 민주주의와 환자 권리의 신장을 위한 중요한 진전이었다.
ONIAM은 지난 2002년 3월에 설립됐다. 기관의 성격은 보건부 장관의 감독을 받는 국가 공공 행정 기관이며, 프랑스 건강 보험과 정부 즉, 공공 분야에서 재원을 충당하도록 했다.
프랑스에는 전국에 23개의 CCI가 있다. CCI는 불가항력적 의원성(iatrogenic) 질환 및 병원 내 감염과 관련된 분쟁과 사용자와 의료 전문가, 의료기관, 의료 서비스 또는 의료 제품을 생산하는 조직 간 분쟁의 우호적인 해결을 촉진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설립 이후 약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피해자로부터 10만 건 이상의 손해배상 청구를 접수했고, 지난 2024년에 소송 자금 지출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고했다.
ONIAM은 '연례보고서'에서 원고에게 1억 8600만 유로(한화 약 3000억 원 이상)를 지급했다고 발표했다. 평균 배상액은 15만 4000유로로, 7년 만에 68% 정도가 증가했다. 소송 건당 100만 유로가 넘는 소송도 9건이나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조정 회의-전문가 조사 등 배상 처리 ASAP, 대부분 '우호적 제안' 수용
CCI는 의료사고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거주지에서 가능한 가까운 장소에서 2024년에 총 204회의 조정 회의를 개최했다고 설명을 곁들였다. CCI는 33%의 긍정적인 의견을 제시했고, 이를 위해 3500건 이상의 전문가 조사가 수행됐다고 밝혔다.
평균 청구 처리 기간은 10개월에서 약간 못 미쳤다. 평균 약 6개월에 달하는 의료 전문가 조사 기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CCI가 제시한 의견에 따라 ONIAM 의료사고 담당 부서는 약 1225명에게 보상을 제공했다.
ONIAM이 제시한 '우호적 제안'의 96%가 받아들여졌다. ONIAM은 2024년에 1759명의 코로나 백신 피해자의 요청을 받아 그중 181건에 대해 배상했다. 2024년 ONIAM은 의료 시설 보험사와 의료품 제조업체에 대한 채무 회수 노력으로 1371건의 회수 명령을 발부했다. ONIAM은 의료 보험사와 제품 제조업체로부터 대체 지급된 금액을 회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현재 ONIAM의 재정 안정성은 프랑스 건강보험기금과 정부의 공적 자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의료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개인은 변호사의 도움 없이 CCI에 직접 청구할 수 있고, 무료로 관련 서비스가 제공된다. ONIAM은 CCI가 청구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전문가 수임료를 지원하고, CCI의 소견에 따라 심각한 의료사고 피해자가 보상을 받도록 한다. CCI의 소견에서 과실로 인정되면 의료인 또는 시설의 보험에서 보상받을 수 있다. 과실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 즉, 무과실인 경우 ONIAM에서 국가적 연대(solidarity)의 기본 철학에서 보상을 받는다. 이외 생물 의학 연구 활동으로 인한 피해도 보상하고 있다.
무과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까지 의사에 전가하는 '악마의 틀' 제거해야
프랑스의 무과실 배상제도와 기구는 이제 20여 년이 지났다. 2024년 약 3000억 원 이상을 환자에게 배상했다. 이 정도 금액은 과실, 무과실 모두 합한 전체 의료배상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크지 않다.
ONIAM은 무과실 배상기구로 오로지 의사나 의료기관의 과실이 없을 때 작동하는 제도로 우리나라가 눈여겨 봐야 할 필요가 있다. CCI가 전국 단위로 분산돼 피해자의 거주지에서 가까운 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잘 발달된 지방자치 역량의 산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봉사하는 의료인의 사회적 역량도 부럽기만 하다.
우리나라는 의료배상에 대한 제도적, 그리고 사회적 미숙과 지연이 의료계에 대한 비난과 '의사 악마화'로 연결되고 있다. 무과실 의료사고까지 의사에게 책임을 돌리는 전근대적이고 비민주적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보건의료 성과와 너무나 극명히 대비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중재원과 감정원은 이미 활동 중이다. 정부와 보험공단이 지원하는 '무과실 배상 공공기구'가 있다면 환자의 권익 증진과 의료 민주화, 그리고 의료배상 선진화에 크게 일조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