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올해 4월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다. 내년 5월 이 법의 시행을 위한 하위법 마련에 국회와 행정부, 그리고 산업계의 노력이 집중되고 있다.
관련 부처인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혁신기업과 품목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하면서 법제화를 통한 산업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산업계는 각종 용역의 적극적인 참여와 함께 독자적인 제안을 위한 업계 간담회나 조사를 마련하고 있다. 최초의 의료기기 진흥 관련 법안의 혜택을 극대화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혁신 의료기기법 등장 배경, 혁신의료기기 급성장과 4차산업혁명
의료기기 특별법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았던 가장 큰 이유는 세계적인 혁신의료기기 수요 증가에 따른 시장의 급속한 성장과 4차산업 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의 발달이다.
미국 조사기관인 그랜드뷰리서치(Grand View Research)의 올해 5월 발표자료에 따르면 2018년 디지털헬스 관련 시장은 958억 달러였다. 하지만 2025년까지 지금의 기술발전과 성장속도를 반영하면 5092억달러까지 연평균 27.7%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의료기기산업의 세계적인 추세와 더불어 국내 디지털헬스에 대한 디지털 헬스 산업에 대한 기반 환경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 최초 5G 기술의 상용화를 통한 IoT 환경, 전국민 의료보험시행으로 인한 보건의료 빅데이터의 보유, 높은 수준의 진료기록 전산화, 100%에 가까운 영상 진단기록의 디지털화 등은 전 세계 어디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만의 장점이다.
여기에 불룸버그가 2019년 선정한 혁신지수(Innovation Index)에서 우리나라가 1위에 선정될 정도로 혁신기술 구현을 위한 국가 신뢰도 또한 높게 평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생겼고 정부는 6년간 1조 2000억원의 연구개발자금을 투자했다. 디지털 헬스산업에 대한 집중 투자와 육성을 통하여 국가의 산업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중장기 투자계획을 준비했다. 관련 제도 정비가 시작됐고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의료기기업계 현장방문과 2019년 바이오헬스분야 육성방안 발표를 통해 규제 및 심사인력 지원을 약속했다.
‘선진입 후평가’로 대표되는 규제 혁신이 현실화되고 정부지원에 대한 범부처적 성격의 중장기 전략이 만들어졌다. 헬스케어 관련 산업의 창업 지원을 위한 정부기구가 설립돼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국내 의료기기 산업도 2018년 11%라는 두자리수 성장률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인공지능, 3D프린터로 대표되는 관련 혁신기술 개발과 창업, 그리고 허가 건수 또한 급증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 대립, 혁신에 대한 가치 충돌, 제도가 기술을 못 따라가는 한계
하지만 세계시장의 성장과 우리나라 환경의 우수성, 그리고 정부의 육성 의지가 모아짐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
의료기기산업의 첫걸음인 허가 업무만 살펴보더라도 현실은 연간 약 5000개의 허가를 식약처 심사위원 43명이 담당하고 있다. 심지어 디지털헬스분야를 전담하는 조직은 아직 없다. 그나마 전문인력 2명이 허가를 위한 기술적 기준마련과 심사를 병행하고 있어 첨단 혁신제품의 시장 진입을 준비하는 창업 기업은 세계와 경쟁하기 위한 시작부터가 불안하다.
선진입 후평가라는 신의료기술에 대한 평가 또한 제도는 만들어졌지만 안전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기대만큼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개인정보보호와 과연 무엇이 혁신인가라는 사회적 정의에 대한 질문에 답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의 문제는 개념적으로는 정보의 소유권에 대한 범위와 개인정보유출에 대한 안전장치의 미비로 인해 안전성에 대한 신뢰보다는 인권과 사생활 침해에 대한 불안감이 큰 상태다. 결국 사회구성원의 양보를 통한 거시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서는 해결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개인정보가 자원이자인 동시에 인권 침해에 대한 소지가 있다. 이에 기본권으로서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측면이 합의를 더욱 어렵게 한다. 잔여검체, 폐기검체 등에 대한 연구목적의 활용을 계획한다고 가정하면 포괄적 동의를 통한 이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반면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불안과 소유에 대한 권한의 범위에 대한 논쟁으로 사용이 불가하다는 입장이 대립된다.
‘무엇이 혁신인가’라는 질문에 기술적 혁신과 혁신을 통한 가치 구현이라는 의견이 담론적 성격의 논쟁으로 충돌한다. 법제화 과정 중에서 의료기기 허가와 보험급여, 그리고 정부와 산업계 간의 간극 또한 좁혀지지 않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혁신기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와 기술적 가치는 구분돼야 한다는 점이다.
보험급여 차원에서 보자. 새로운 기술이라고 급여를 요구한다. 산업계에서는 산업의 발달을 위해 혁신기술에 대해 급여의 범위를 늘려 지원하자고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급여는 환자의 치료효과에 근거하여 결정해야 하는 만큼 경제성과 유효성을 근거로 판단하자고 한다. 원칙 없는 급여는 건강보험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제기한다.
다른 논란을 보자. 의료기기 특별법은 진흥법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핵심은 국내제조산업에 육성에 집중돼야 한다고 한다. 국산제품에 대한 사용을 강제하자는 주장이 있다. 반면 국산제품의 사용 강제는 의사의 진료권과 환자에 대한 치료효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디지털헬스산업의 특성상 다양한 융복합 제품이 필요하다. 이 경우 외국의 기술 우위에 있는 제품이 국내에 들어와야 하고 다국적 회사 등의 연구개발, 기술혁신, 교육 센터 등의 직접 투자가 현실화 돼야 인적자원과 국내 기술과 결합된 제품이 나올 수 있다. 자칫 국산제품 의무사용 같은 제도로 인해 무역 갈등과 더불어 세계 진출의 기회조차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충돌한다.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끊임없이 개발되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제도가 따라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내기가 쉽지 않다.
지금의 기술 발전의 속도는 정부가 모든 기술과 변화를 규제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변화의 속도뿐만 아니라 양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결국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미 미국의 FDA는 공식적으로 기술의 발전과 변화에 따른 정부의 한계를 인정했다. 단일 국가 최대의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기술 발전 아닌 사람 중심의 혁신 기술, 법과 제도 정비하는 국민적 합의 필요
위에 열거한 사례는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가치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충돌이다.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끊임없이 풀어야 하는 우리의 과제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가치에 대한 논란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사회학적 가치를 정하는 상부구조의 논의가 구체화돼야 제도가 실체화될 것이다.
하지만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우선 혁신 기술에 대한 사회적 가치의 지향점을 정할 수 있다. 기술 자체의 발전이 아니라 사람 생명을 살리는데 도움되고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독성(financial toxicity)등으로 대표되는 재난적 의료비로 인한 사회적 손실, 지역 간 의료의 불균형, 빈부격차로 인한 수명의 차이, 낮은 의료비 보장성 등은 인간이 가지는 생명 존엄에 관한 문제로 어느 가치보다 우선할 것이다. 기술혁신이 사회적 기여에 도움되고 질병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면 나머지는 사회 구성원의 선택과 위험에 대한 사회적 분담에 대한 논의로 중심점을 단순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인류역사상 우리는 3번의 기술혁명을 가져왔고 지금 4번째 혁명을 맞이하고 있다. 매 혁명마다 기술의 발전은 삶의 질과 생산성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지만, 여기에 따른 사회적 논란 또한 매우 치열했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적 혁명이 우리의 선택이 아닌 세상을 이끄는 거대한 조류라는 것이다. 그 안에서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움직임만이 미래의 생존을 보장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는 산업혁명의 시작이었던 영국이 후발주자였던 독일에 추월당한 역사적 사실을 교훈을 삼아야 한다. 다만 기술의 보편화를 통한 의료의 민주화가 주는 사회적 가치의 지향점이 사람이 돼야 한다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정부는 법제화를 통한 기반을 마련하고 조직과 관련 제도를 정비할 수 있는 환경은 결국 국민적 합의로 이뤄야 한다. 이는 앞으로 어렵지만 우리가 토론하고 선택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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