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사막 지역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젊은 남성은 20대 후반에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을 진단받아, 전통적인 세포독성항암제 치료를 통해 관해가 됐다.
이 환자는 재발의 위험이 있어, 여동생으로부터 이식(allo-HSCT)까지 받아 6년 간 관해가 유지됐지만, 어느 날 재발했다.
운 좋게도 그 즈음 재발‧불응성 ALL 치료제 '블린사이토'의 임상연구(임상명 TOWER)가 시작돼, '블린사이토'로 치료받았더니 1주기(cycle), 즉 4주 안에 종양이 모두 사라졌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종양 사이즈가 점점 줄어들더니 치료 1주기 CT 촬영에서는 이미 종양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후에도 TOWER 임상연구의 일환으로 유지요법을 시행, 완전관해에 도달했고 현재 백혈병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방한한 호주 피터맥캘럼 암센터 데이비드 리치 교수(전 호주·뉴질랜드 혈액학회장)는 국내 의사 대상 심포지엄 및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블린사이토' 임상 경험을 소개했다.
'블린사이토(성분명 블리나투모맙/제조사 암젠)'는 재발 및 불응성 필라델피아 염색체 음성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Acute Lymphoblastic Leukemia, ALL)을 유일하게 개선한 치료제로, 복지부가 10월 1일부터 2차 또는 3차요법에 대한 보험급여를 인정했다.
ALL(국내 성인환자 210~230명)이 재발하면 사망률이 94%에 이르지만, 기존 치료제에 불응하거나 재발한 환자에 대한 치료옵션이 거의 없었다.
데이비드 리치 교수는 "ALL 환자의 대다수는 이 병만 없다면 건강하게 직장생활을 영위할 젊은 성인"이라며 "블린사이토는 기존의 다른 치료 옵션과 비교해 관해도달률을 개선했고, 질환의 진행을 늦춰 조혈모세포이식 등 또다른 치료 대안을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새로운 희망을 주는 치료제"라고 강조했다.
완치로 가기 위한 유일한 가교요법
그에 따르면, 성인 ALL 환자 치료에서 가장 어려운 케이스가 '기존 세포독성항암제로 치료해도 관해에 도달하지 않는 불응성(refractory)', 그리고 '관해에는 도달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재발하는 경우'다.
이들은 기존 세포독성약물에 대한 반응률이 낮아, 다른 치료제로 교체해도 반응률이 낮다.
이 밖에 위험도가 비교적 낮은 환자군으로, 관해된 후 1~1년 반 지나 재발하는 환자도 있다.
TOWER 임상연구는 이 같은 3가지 케이스의 환자를 모두(405명)를 포함했다.
연구 결과, 1차 목표지수인 전체 생존기간 중앙값은 7.7개월로, 표준치료법(4개월) 보다 2개월 가량 개선시켰다.
또 임상연구(189명 대상) 결과, 43%(81명)의 환자들이 1차 목표지수인 완전관해(63명) 또는 부분혈액학적 관해(18명)를 달성했고, 79%(64명)는 1주기 안에 목표지수에 도달했다.
2주기 안에 완전관해 및 부분혈액학적관해에 도달한 환자 중 82%(60명)는 미세잔존질환(MRD) 반응을 달성했다.
리치 교수는 "임상연구 결과는 실제 리얼라이프 치료 결과와 동일하다"면서 "치료 초기의 부작용, 용량을 증량해 사용할 때 나타나는 양상들, 환자들이 반응하는 속도, 반응하는 환자의 비율, 약효 지속기간 등이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리치 교수는 "블린사이토는 사실상 유일한 완치요법인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위한 가교요법"이라며 "환자들이 이식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한 전제요건은 완전 관해인데, 기존에 세포독성항암제로 관해에 도달하지 못했던 환자에게 블린사이토 치료는 커다란 기회다. 일단 완전관해를 달성하면 이식 성공률이 크게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에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았는지 여부는 블린사이토 치료결과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으며, 블린사이토 치료 역시 이후 이식의 저해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혈액종양 전문의들도 블린사이토와 조혈모세포이식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 결론을 못 내리긴 했지만, 임상 결과, 세포이식 수술 여부는 블린사이토 치료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이들은 이미 한 차례 이식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추후 세포이식을 받는 경우 이식 관련 위험은 있지만, 블린사이토 치료 이력이 이후 이식하는 데 저해요소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백혈병 세포와 T세포의 중매쟁이
블린사이토의 효과는 이 약의 특이한 작용 기전에서 나온다.
리치 교수는 세계 최초의 이중특이성 CD3 T세포 관여항체 '블린사이토'의 기전을 '백혈병 세포와 T세포의 중매쟁이(Speed Dating)'라고 명명했다.
리치 교수는 "블린사이토는 양쪽 끝트머리가 서로 다른 세포 표면에 있던 단백질을 특정할 수 있는 항체로 구성돼 있다"면서 "한쪽은 백혈병 세포의 표면에서 발현하는 단백질인 CD19를 인식하고, 나머지 한쪽은 면역세포인 T세포 표면의 CD3라는 단백질을 특정한다. 즉, 체내에서 한 쪽으로는 백혈병 세포를, 다른 한쪽으로는 면역세포를 끌어당기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블린사이토를 통해 우리 몸의 T세포와 백혈병 세포가 서로 가까워지고, 백혈병 세포와 인접한 T세포가 독성을 나타내 백혈병 세포를 사멸하는 것이다.
45kg 사용 제한, 유효한 내용 아니다
다만, 국내는 45kg 미만 환자에 대한 사용을 제한해, 성인 ALL 환자 중 45kg이 안되는 환자는 블린사이토를 투여할 수 없다.
체구가 작은 일부 환자는 블린사이토를 투여할 수 없다는 한계가 생긴다.
리치 교수는 "딱히 유효한 제한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독성의 우려 때문에 사용 범위에 제한을 둔 것 같다"면서 "다만, 일부 국가는 소아에게도 블린사이토 사용을 확대했다. 소아는 대부분 45kg 미만이라 체중 제한에 대해서는 임상연구 등을 면밀히 분석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독성, 이렇게 관리해라
부작용 관련, 리치 교수는 "전처치와 지속적 모니터링을 통해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블린사이토의 가장 일반적인 부작용은 두 가지다.
그는 "첫 째로 싸이토카인유리증후군(Cytokine Release Syndrome, CRS)의 발생 가능성을 염두해야 한다"면서 "블린사이토가 면역시스템을 자극하다 보니, 다른 관점에서 보면 CRS의 발생은 블린사이토가 잘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덱사메타손 치료를 통한 전처치가 있으면 CRS의 위험은 관리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하나는 신경독성(neurotoxicity)"이라며 "발생 빈도는 매우 적지만 주의가 필요하다. 뇌 관련 신경부작용은 조짐이나 징후가 미세해 사전에 포착하기 쉽지 않다. 환자에게서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는 환자가 약간 혼란스러워 보인다는 정도"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환자에게 매일 같은 글자를 쓰도록 시킬 것을 추천했다.
이름과 주소를 매일 쓰도록 하고, 의료진을 포함해 환자를 돌보는 주변 사람이 이를 계속 확인, 조금이라도 글씨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의료진에게 보고하는 방식이다.
리치 교수는 "전반적으로 블린사이토는 안전성이 우수한 약"이라며 "적절한 사전대응을 통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현재까지의 사용경험에 비추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거나, 부작용 때문에 투약을 중단해야 했던 케이스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최근 캐나다 보건부의 안전성 문구 삽입으로 주목받은 췌장 관련 부작용에 대해서는 "사실 이 내용이 발표됐을 때 믿기 어렵기도 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다"면서 "호주의 사용경험 상으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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