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김재연 칼럼니스트] 8월에 발표 예정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체계 개편안은 기존의 건별 심사가 아니라 '의료기관별 경향심사' 방향으로 개편된다고 한다. 기관별 경향심사는 의료기관의 의무기록을 토대로 의료의 효율성, 과잉 진료 여부 등의 진료 경향을 분석해 의료 질을 평가하는 것이다. 심평원은 급여기준을 벗어나지만 의학적으로 필요한 환자에 대해 의료기관에 ‘자율성‘을 부여한다고 했다. 대신 적정수준을 벗어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집중 심사한다고 밝혔다.
앞서 의료계는 심사체계 개편과 관련해 ▲급여 및 심사기준 상설협의체 운영 ▲심사설명제 도입 ▲심사기준 전면 공개 ▲심사위원 구성 및 운영방식 개선 ▲1차 심사 적정성 평가 실시 ▲심사의 공정성과 형평성 확보 ▲부적절한 급여 및 심사기준 완전 폐기 ▲행정 소명 절차 간소화 및 투명화 등 8개의 구체적인 요구사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아직 심평원은 이렇다 할 답변이 없는 상태로 기관별 경향심사 계획 발표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심평원이 기관별 경향심사 체계로 전환한다면 우선 진료의 하향 평준화를 유도할 우려가 있다. 정부가 경향성 평가를 통해 평균 추세에 벗어나는 기관을 중점으로 심사한다면, 의료진은 평균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소신진료를 하지 못하고 과소진료를 유도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가령 자신이 운영하는 의원급 의료기관과 진료 질환이 유사한 의원의 진료경향이 서로 비교될 것이다. 검사빈도, 약제비, 약의 종류, 내원 빈도, 약 처방일수 등 다른 의원과 비교해 상위 10%의 경향심사에 걸리면 즉시 시정요청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치료 자체를 많이 한 상위 의료기관일수록 현지조사 대상으로 선정될 수 있다. 노인 환자가 많은 의원이나 전문화된 질병군 환자를 많이 보는 의원의 특수성은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환자를 위해 제대로 치료해도 적게 청구하는 형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심평원의 현지조사 시 기관별 경향심사만으로 위법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허위·부당청구 심사 기준을 그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향심사로 간다고 해놓고 건별심사 체계가 공존하는 형국이 될 수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우선 현재의 엉터리 같은 '심평의학'을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 일선 의원이 겪는 삭감 사례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처방약제 수가 5개를 넘으면 과다 처방이라고 해서 조사를 받고, 주사제 많이 쓰면 삭감을 당한다. 환자 입원기간 길다고 삭감을 당하고, 입원 전 검사가 많다고 삭감을 받는다. 퇴원 시 외래 처방한다고 삭감하는가 하면, 검진 날 치료하면 진료비 50%가 감액된다. 대학병원들은 100일 이상 약제를 처방해도 문제 없지만 의원은 한 달 이상 약제를 처방하면 과잉진료의 오명을 쓴다. 이러면서도 아무 말 못하는 의사들이 바보처럼 보일 따름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심평원은 현재의 불합리한 심사기준을 없애면서 의료의 질을 고려한 심사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지금까지 교과서대로 치료하지 못하게 만든 기형적인 심사기준부터 전부 폐기해야 한다.
또한 심평원은 의료의 질적 측면을 고려한 심사 지표를 반영해야 한다. 심평원의 ‘기관별 경향심사‘라는 심사체계 개편안은 단순히 비용절감 차원에서 양적 문제만을 고려한 개편안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심사체계 개편을 하려면 교과서대로 치료할 수 있어야 하고, 의료 질 지표의 왜곡이 없어야 한다.
심평원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는 개편안을 추진하면서도 의료계와 몇 차례 협의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만일 대한의사협회가 여기에 쉽게 동의한다면 일선 의료현장에 큰 혼란만 일어날 것이다. 심사체계 개편안은 의료인 스스로 자율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올바른 심사체계 개편안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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