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5.12 06:20최종 업데이트 19.05.12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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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의료체계의 한계 겪고 있는 북한 보건의료... 대북 제재로 충분한 대응 못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일회성 구호 사업 아닌 장기적 관점의 남북 보건의료 협력 필요성 강조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북한 사회가 시장 경제 도입 등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면서 북한 보건의료 체계도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대북 제재 등으로 인해 과감한 개혁은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건강보험 체제로 전환한 것처럼 앞으로 북한도 체제를 전환한 사회주의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는 최근 발행한 '이슈앤 포커스'를 통해 '북한 보건의료 분야의 변화와 전망'에 대해 이 같이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남북 보건의료 협력은 단순히 북한에 의료기관을 지어주거나 소수의 의료진을 교육하는 것보다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건의료 체계 회복을 돕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긴밀한 파트너십과 전체 거버넌스와 소프트웨어의 변화로 북한 보건의료 체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에 대한 필요성이 언급됐다.

사회주의 의료체계의 한계 북한에서도 발생... 건강보험 체제 전환 가능성 높아

보사연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사회주의 방식을 구현한 국민 보건서비스인 세마스코(Semashko) 모델에서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건강보험 체제로의 전환이 일반적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보사연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중앙집권화된 의료 체계는 다양한 만성질환이 늘어날 때 낮은 의료의 질과 자원 배분의 부족 등으로 대응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이 떄문에 구매자와 공급자가 분리된 건강보험제도를 추진하는 경향을 띤다고 덧붙였다.

보사연은 중국, 베트남,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건강보험제도 방식을 새로 채택한 사례를 언급하며 그나마 북한과 유사한 쿠바의 보건의료 체계는 최근 고령화로 인해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고 짚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급격한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면서 의료보장제도 붕괴 현상을 겪었으나 2000년대 들어 공중보건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의료개혁을 도모했다. 그 결과, 중국은 현재 여러 형태의 의료보험을 만들어 국민의 95%가 의료보장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은 개혁·개방 과정에서 무상의료제를 폐지하고 건강보험을 도입했으며 민간의료공급자를 법적으로 허용했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도 체제 전환을 하면서 건강보험 체계로 전환을 했다.

보사연은 쿠바가 북한과 유사하게 사회주의 의료 체계의 근간을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라면서 쿠바는 최근 고령화로 인해 보건의료 체계에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선 체제전환국들이 경험한 대로 북한에 비감염성 질환이 증가하고 있어 현재 의료 시스템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보사연은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앞으로 북한에 국제사회의 지원과 교류·협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사연은 세계보건기구(WHO)가 2004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북한 보건의료에 5개년 국가 협력 전략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사연은 WHO의 보건의료 부문 대북 지원 전략에서 비감염성 질환이 최우선 과제로 선정된 것을 볼 때 북한에서 감염성 질환 못지 않게 비감염성 질환이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내 시장 경제 도입됐지만 대북 제재로 의료용품·의약품 수입 어려워

북한의 현재 보건의료 체계는 사실상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사연은 북한이 보건의료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과 시설, 장비의 현대화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대북 제재 이후 물자 부족으로 보건의료 분야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북한 체제의 자원 동원 능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시장에서 의약품 유통이 널리 퍼지면서, 계층 간의 서비스 이용 격차나 의약품 오남용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사연은 현재 북한에서 보편적 의료서비스의 가장 일선 전달체계인 진료소와 호담당 의사들이 의료기기를 갖추지 못한 채 의료 상담 수준의 서비스만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2차 의료기관에 해당하는 시·군·구역 인민병원의 시설도 매우 낙후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언급했다.

보사연은 북한 당국이 기초의료 부문의 취약성이 북한의 체제 안정성을 해친다고 보고있다고 밝혔다. 노동신문에 언급된 '의약품 생산에 필요한 원료와 자재를 제대로 보장하는가 못 하는가 하는 것은 사회주의를 지키는가 못 지키는가 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기사 내용은 북한 스스로 북한 내 의료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의미라고 짚었다.

보사연은 북한 사회 전반에 시장 경제가 도입되면서 국가의 배급 체계를 통한 의료 물자와 의약품 공급이 유명무실해지고 시장을 통한 조달이 일상이 됐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의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계층 간 의료이용의 격차가 발생하고 적절한 치료보다는 대증적 대응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정통편'은 대표적인 사례다. 보사연은 '정통편'이 만병통치약으로 잘못 알려져서 북한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과다 복용한다고 밝히면서 '정통편'에 포함된 성분에는 마약 성분이 있어 남한에서는 금지 약품으로 취급하는 의약품이라고 말했다.

의약품 공급 문제의 주요한 요인으로는 대북 제재가 꼽혔다. 보사연은 포괄적인 북한 제재 이후로 북한의 제약 능력이 뒤처져 있고 이와 더불어 의약품 및 제약 원료 수입이 막히면서 제약공장에서 생산의 한계가 나타났다고 봤다.

보사연은 유엔의 세관 통계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자료에서 북한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37개국 이상의 국가로부터 약 1억413만 달러(약 1588억원)의 의료용품을 수입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전체 수입액의 약 68.2%는 중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이 중 91.5%가 의약품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보사연은 대북 제재 이후 북한의 의약품 수입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사연은 북한의 의료인력과 의료기관의 수는 상대적으로 충분한 상황이라면서 의료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자원과 현대적 기술의 활용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보건의료계 종사자는 인구 1만 명당 약 32.9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남한보다도 약간 높고 전 세계 평균인 14.2명보다는 상당히 높은 수치다. 보사연은 대북 제재가 난관으로 제재의 해제 없이 북한이 보건의료 체계를 향상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보사연은 북한 주민의 건강권 보장 측면에서 북한 보건의료 시스템의 회복을 위한 남북 협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남북 보건의료 협력이 일회적인 지원이 아니라 장기적 전망에서 남북 보건의료협정 등에 기초하여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긴밀한 파트너십과 함께 거버넌스·소프트웨어 변화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정다연 기자 (dyjeong@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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