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의사들은 어떤 기준으로 시체검안서 또는 사망진단서를 발부할까. 사망진단서는 환자가 진료 후 48시간 이내에 사망한 경우에 작성하는 문서이고, 시체검안서는 의사가 스스로 진찰하지 않은 사람 시체의 사인(死因), 사망일시 등에 관해 의학적 판단을 증명하는 문서다. 하지만 현실에선 시체검안서와 사망진단서를 발급하고 작성하는 기준이 표준화 되지 않아 혼동돼 쓰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응급실 의사 시체검안서(사망진단서) 관련 실태 설문조사' 결과가 18일 2018 대한응급의학과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설문조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위탁하고 이화여자대학교가 주관했다. 설문조사는 의사의 시체검안서 및 사망진단서 작성의 문제점과 어려움을 고찰하고 개선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시행됐다. 조사 결과, 같은 환자의 사례를 두고 전공 분야나 의사에 따라 사망 원인에 대한 판단이 달랐다.
설문조사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299명과 내과 의사 69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응답자의 평균 연령은 38.9세로 남성이 70.2%를 차지했다. 이들의 임상 경력은 3~5년이 36.1%, 5~10년이 32.8%, 10년 이상이 31%였다.
설문조사는 병원 전 심정지 환자의 사망 사례를 두고 응급의 및 내과계열 의사가 어떤 서류를 발부하고, 사망 장소를 어디로 보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는 질문을 담았다.
병원 전 심정지 사례에서 CPR(심폐소생술·Cardiopulmonary Resuscitation)을 했지만 ROSC(심박재개·Return Of Spontaneous Circulation)가 없었던 경우에 응답자는 시체검안서를 발부하겠다고 답한 비율이 57%, 사망진단서를 발부하겠다는 비율이 42%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이들이 사망장소로 가장 많이 선택한 곳은 응급실이 48.6%로 높았고, 발견장소 24.8%, 진술 근거한 장소가 14%로 뒤를 이었다. 사망시각은 CPR 마친 시점으로 본 경우가 47.3%로 가장 높았고 내원 이전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28.4%, 진술 근거로한 경우가 11.3%였다.
같은 사례에서 CPR을 했지만 ROSC가 있었던 경우에는 결과가 달랐다. 응답자는 사망진단서를 발부하겠다는 비율이 84.2%였고, 시체검안서를 발부하겠다는 비율이 15.8%였다. 이들이 사망장소로 꼽은 곳은 응급실이 89.2%, 발견장소가 6.8%, 진술 근거한 곳이 2.3%였다. 사망시각은 CPR을 마친 시점이 85.1%, 내원 이전 추정이 7.2%, 내원 시점이 2.7%였다.
반면, 같은 사례에서 DOA(도착시사망·Dead On Arrival) 경우에 응답자는 시체검안서를 발부하겠다는 경우가 92%로 압도적 다수였다. 오직 9%만이 사망진단서를 발부하겠다고 답했다. 이 경우 사망장소로 본 곳은 발견장소가 46.8%, 진술 근거한 곳이 27.7%, 응급실이 12.3%였다. 사망시각은 내원 이전 추정이라고 판단한 경우가 47.1%, 진술 근거한 곳이 31.3%, 내원 시점이 15.4%였다.
응답한 의사가 사망한 환자의 사인을 '미상'으로 기재한 이유와 시체검안서 및 사망진단서 작성시 고충에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도 설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응답자들은 시체검안서 또는 사망진단서에 사망 원인을 '미상'으로 기재하는 이유에 대해 '내인사, 외인사 여부를 판단 할 수 없어서'라고 답한 경우가 82.7%였다. '부검이 필요해서'라고 답한 경우는 71.8%로 뒤를 이었다. 그 외에 '행정적 문제를 막기 위해'라고 답한 경우도 있었다.
사망진단서 작성시 고충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들은 '보호자가 특정사인으로 발부요청을 할 때'라고 답한 경우가 66.9%나 됐다. '작성시 사인 결정의 어렵다'고 밝힌 경우는 48%로 뒤를 이었다. '법적 문제에 대한 부담감'도 46.3%에 달했다.
의사의 시체검안서 및 사망진단서 작성 시간 및 교육 경로을 조사하기 위한 질문도 있었다. 시체검안서를 작성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지에 대한 질문에는 응답자는 30분 이내라고 답한 경우가 35.9%로 제일 많았고, 5~10분 이내라고 답한 경우가 29.7%로 뒤를 이었다.
시체검안서 발부 교육을 어디서 받았냐는 질문에는 윗년차로부터 배웠다고 응답한 이들이 59.8%였다. 의과대학과정을 통해 배웠다고 답한 이들은 47.6%, 원내외 컨퍼런스에서 배웠다고 답한 이들은 27.9%였다.
구체적인 사례 8개를 제시해 응급의학과와 내과계열 의사가 병사와 외인사 중 사인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질문했다. 조사 결과, 같은 사례를 두고 내과계열 의사는 사인을 외인사보다 병사로 판단하는 경향이 컸고, 응급의학과 의사는 사인을 병사와 외인사로 판단하는 비율이 반반이었다.
또한 응답자들에게 전문검시관 제도가 필요한지 묻자,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 '조금 그렇다'를 포함해 전문검시관 제도가 필요하다고 답한 이들은 전체 응답자의 85%를 차지했다.
이대목동병원 응급진료부 정구영 재난의료지원센터장은 "지난해 서울대에서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사인을 두고 사고사인지 질병에 의한 사망인지 논란이 있었다. 사망진단서 표준이 없어 논란이 많은 것 같다. 우리가 현재 어떻게 시체검안서를 쓰고 있는지 알아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체검안서 또는 사망진단서는 표준화돼 있지 않은 대표적인 분야다. 학회 내에서도 이와 관련된 부분을 전공의 교육내용에 포함해 정형화해야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이재희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응급의학과 의사 및 임상 의사에 대한 시체검안서(사망진단서) 발급 실태와 사망의 종류 및 원인 판단에 대한 조사"라고 했다.
이 교수는 "화재사고로 입원한 젊은 환자가 9일째 악화되고 14일째 사망한 경우 사망 원인에 대해 질문했더니, 응급의학과 의사는 67.2%는 외인사로 봤고 내과계열 의사는 59.3%가 병사로 봤다"며 "똑같이 의학적 입장에서 발부하지만 전공 계열별로 판단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검안에 대한 교육 미비하고 표준화된 교육이 부족한 상황이다. 임상에서 의사들이 사망 원인을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교육이 강화돼야 하고 검시관 제도를 어떻게 정착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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