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과학자 인터뷰] 이민구 연세 의사과학자 양성사업단장 "의사과학자는 세상 바꿀 인재…연세대는 일찍이 양성 노력"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최근 우수 인재들의 의대쏠림 현상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거나 재수·삼수를 하는 학생들이 늘고,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의대입시반을 운영하는 학원까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등 최첨단 산업 분야에 뛰어들어야 할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면서 국가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실제 일부 과학고에서는 졸업생들의 의대 진학을 막기 위한 조치들도 시행하고 있다.
의사는 환자 진료 뿐 아니라 바이오헬스 산업 이끌 인재
메디게이트뉴스와 만난 연세 의사과학자 양성사업단 이민구 단장(연세의대 약리학교실 교수)은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의사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미래 의사는 바이오헬스 분야의 리더로 성장해 새 먹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인데, 사회는 아직도 이들을 병원에서 환자 진료만 하는 임상 의사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인식이 연구하는 의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 단장은 “다른 나라에서도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의대로 가지만 그것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하지는 않는다”며 “우리나라는 아직도 똑똑한 사람들은 컴퓨터 공학 등 다른 분야로 가야하고, 의사는 그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싼 값에 건강을 지켜주는 존재 정도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 바이오헬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먹거리가 될 중요한 산업”이라며 “이 분야를 이끌어 갈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의사과학자들이 지금처럼 자원봉사 수준으로 연구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과학자 양성 선도 연세의대…지난해 의사과학자 양성사업단 발족
우리 정부가 의사과학자 양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원 사업을 시작한 것은 불과 5~6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연세의대는 2010년부터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나서며 국내 의대 중 선도적인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 단장은 “이전부터 기초의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본격적으로 전주기적 의사과학자 양성 과정을 만들어 시행하기 시작한 건 2010년부터”라고 말했다.
연세의대의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은 학부생 대상 석산 의과학자 육성사업,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사업(학부과정)부터 전공의 대상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사업, 전일제 대학원생 대상 Physician-Scientist 양성 사업, 조교수∙강사 대상의 중개연구교수, 세브란스 선도연구자(SRI) 사업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은 지원 대상의 소속이 학부, 대학원 등으로 달라 프로그램 담당 부서도 제각각이었는데, 지난해 연세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단이 출범하면서 통합 관리가 가능해졌다.
이 중 지난해까지 연세의대 의사과학자 전일제 대학원 과정을 졸업한 이들은 총 40명이다. 졸업생 가운데 약 15%가 바이오∙제약기업과 벤처캐피털 등 산업계 일하고 있고, 25% 정도는 기초 연구에만 매진하고 있다. 나머지 60%는 대학병원에서 환자 진료와 연구를 병행 중이다. 아직까지 일반 병원에 봉직의로 들어가거나 개원을 한 경우는 없다.
의료현장 미충족 수요 해결∙노벨상 수상 등 성과 기대
이 단장은 연세의대의 전주기적 의사과학자 양성사업이 불러올 여러 기대 효과 중에서도 의료현장 ‘미충족 수요’ 해결의 파급력이 가장 클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임상 현장에서 전문의까지 하고 온 사람들은 나처럼 기초의학을 공부하는 사람과는 시각이 다르다”며 “나는 새로운 현상을 보면 그 기전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지는 반면, 임상을 하다 온 사람들은 그게 어떤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이용될 수 있을지를 빠르게 파악해낸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사람들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겠구나라고 느낀다”며 “이것이 의료 산업화와도 연결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세의대의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노력의 결실은 객관적인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연세의대는 지난해 10월 발표된 ‘2023 THE 세계대학 평가’에서 세계 32위, 국내 의대 중에는 1위를 차지했다.
이 단장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지난 10년 간 연세의대에서 나온 논문, 그 중에서도 기초의학과 중개의학 관련 논문의 질이 매우 높아진 게 큰 영향을 미쳤다”며 앞으로 ‘좋은 소식’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간 세계 최고 수준의 임상 의료에 비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기초의학 분야의 성과가 부족했는데, 멀지 않은 미래에는 이를 만회할 의사과학자의 탄생도 기대해볼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카이스트∙포스텍 자체 의대 설립? 기존 의대와 협력이 바람직
다만 이 단장은 의사과학자 양성이 더욱 탄력을 받기 위해선 제도적으로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우선 카이스트, 포스텍 등 과학기술특성화 대학들이 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며, 의대 기반의 의사과학자 양성이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국내 의대 중 의사과학자를 제대로 양성하고 있는 곳은 우리 대학과 서울의대 정도 뿐”이라며 “앞으로는 하버드에서 하고 있는 MSTP와 같은 전일제 박사과정을 전국 3분의 1의 의대에서 시행해 의대정원의 5~10% 정도는 의사과학자로 길러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과학기술대학들은 하버드와 MIT가 함께 운영하는 HST 프로그램처럼 의대와 협력 과정을 만드는 게 맞는다. 의사과학자의 최대 장점은 의료현장 미충족 수요 해결이기 때문”이라며 “의대 정원 문제가 민감한 사안인 만큼, 장기복무 군의관 위탁 교육생 사례처럼 50 명 이내로 소요를 제기하면 먼저 의대에서 의학 교육을 받은 후 카이스트나 포항공대로 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의사과학자 '병역∙일자리' 문제 개선 필수
병역과 커리어 문제도 기존 의사과학자들의 중도 포기를 막고, 새로운 인력의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지적됐다.
이 단장은 “전체 학생의 70~80%는 의사과학자를 하면서 군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게 굉장히 까다롭고 복잡하다”며 “일단 기초의학 분야의 정원이 30명에 불과하고 이 마저도 수도권 쪽은 경쟁이 더 치열하다”고 했다.
이어 “지금은 연세대와 서울대 뿐이니 그나마 상황이 낫다”면서도 “향후 전국 의대의 3분의 1이 의사과학자를 매년 150명씩 배출한다고 하면 현행 제도로는 안 된다. 반드시 손 봐야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의사과학자들의 어려운 점 중 하나는 밀려드는 환자를 진료하느라 연구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라며 “미국의 경우 유명한 의학자들은 본인 시간의 20% 정도만 환자를 보고 나머지 시간에는 연구를 한다. 이게 가능한 건 국가로부터 받은 연구비로 월급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제도가 구축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미국 국립보건원(NIH)처럼 전문 연구원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방법도 있다”며 “다만 미국 국립보건원의 경우 질병통제센터(CDC)보다 몇 배나 큰 조직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국립보건연구원이 질병관리청 아래에 들어가 있다. 지금 체제로는 미국의 NIH같은 역할을 기대하긴 힘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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