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처방에 관대했던 2010년 초반 판례 비해 시대 분위기 반영…면허 제재 등 추가 처분도 문제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최근 전화처방 등 원격진료에 대한 유죄판결이 이어지면서 전화처방에 대한 법적 판단 기준이 의료계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코로나19 상황에 한정해 전화처방을 일시적으로 열어두고 있긴 하지만 이와 별개로 전화처방이 현행법상 위법하다는 재판부의 지속적인 판단에 일선 의사들은 혼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판례를 찾아보면 전화처방을 사실상 허용하고 있는 대법원 법률 해석도 존재하고 있는 상황. 전화처방에 대한 판단 기준이 엄격해진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이에 더해 전화처방에 다른 보건복지부 등 추가 제재 문제까지 더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화로 진찰했다면 직접진찰로 봐야…관대했던 2010년 초반 판례
19일 법조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원래 사법부는 전화처방에 대한 관대한 법률 해석을 내놓던 것이 관례였다. 전화처방에 긍정적인 판례의 효시는 2013년 대법원의 '2010도1388' 사건이다. 해당 판결은 이후에 이뤄진 대부분의 전화처방 합법 판단의 중요한 판례로 작용했다.
당시 대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대법관들은 전화나 화상으로 처방전을 발급한 경우도 이를 직접 진찰로 볼 수 있다고 봤다. 전화처방 이전에 대면진료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전화처방 자체를 직접진찰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법률상 위법이 아니라는 해석이 당시 판례의 핵심 골자다.
의료법 제17조 제1항은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등을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대법원은 이 조항이 비대면 진찰을 금지하는 조항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해당 조항은 스스로 진찰을 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일 뿐 대면진찰을 하지 않았거나 충분한 진찰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 일반을 금지하는 조항이 아니다"라며 "따라서 죄형법정주의 원칙, 특히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상 전화 진찰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직접 진찰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특히 당시 대법원은 원격의료에 대해서도 관대한 입장을 보였다.
대법원은 원격의료에 대해 "의료법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에 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국민의 편의를 도모하는 방형으로 제도를 운용하는 것을 금지할 이유가 없다"며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운용을 통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비대면진료를 허용한다거나 보험수가를 조정하는 등 원굑의료 남용을 방지할 수단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은 "천단기술의 발전 등으로 현재 세계 각국이 원격의료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후 재판부는 해당 판례를 근거로 “사전 대면진료 여부와 관계없이 전화로 진찰을 했다면 직접진찰로 봐야 한다”며 전화처방을 의료법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들을 내놨다(2013노1180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격의료행위 위법…대면진료 전제돼야
그러나 원격의료에 대해 관대했던 사법부의 판단은 최근들어 지속적으로 엄격해지고 있는 추세를 띄고 있다. 그 시작은 대면진료가 선행돼야 한다는 전제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지난 2020년 5월에 나온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법원은 전화진료와 처방을 기존과 같이 대면진료의 형식으로 볼 수 있으나 진찰이 통화로만 이뤄졌다면 그 이전에 환자 상태를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즉 문진, 시진, 청진, 타진, 촉진 등이 없이 전화통화만으로 진찰이 이뤄졌다면 객관성와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반드시 사전 대면진료가 선행돼야 합법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법부의 입장변화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2020년 11월에 이뤄진 '2015도13830' 판결에서 더욱 엄격한 기준을 내놓은 것이다.
대법원은 사전에 대면진료가 이뤄졌는지와도 상관없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격의료 행위는 사실상 위법하다고 봐야 한다고 한층 엄격한 잣대를 내놨다.
특히 대법원은 의료법 제33조 1항 제2호에서 정한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진료하는 경우, 의료기관 외에서 의료업을 할 수 있다는 규정에도 전화처방이 해당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현재 의료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원격의료를 행할 경우, 일반적인 의료행위와 동일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환자에 대한 정보 부족과 장비 활용 등 제약으로 인해 부적정한 의료행위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전화 등을 통해 원격지에 있는 환자에게 행하는 의료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료법 위반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사법부 판단 사실상 전화처방 금지로 후퇴…사회적 분위기 반영
최근 전화처방에 대한 엄격한 사법부의 판단은 원격의료 도입을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전화처방 등 원격의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되면서 무한대로 허용되는 원격의료에 대한 법률적 상충관계의 문제점이 부각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준래 변호사(법학박사, 전 건보공단 선임전문연구위원)는 "최근 대법원 판결은 코로나19 이후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원격의료 논의와 연관되는 판단"이라며 "원격의료는 의료법령이 정하고 있는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인정되므로 전화진료를 무한정 허용하는 것과는 상충되된다. 이 같은 배경을 고려한 판단으로도 평가된다"고 말했다.
또한 원격의료에 대해 사법부가 기존 헌법재판소와 법제처의 입장과 유사한 형태로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법원이 전화처방을 대면진료와 같다고 본 2013년 당시, 헌재는 반대로 의료법 제1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직접 진찰한'이란 문장이 '대면진료'를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또한 법제처도 2015년 '전화로 환자를 진찰해 처방전을 발급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의에 대한 법령해석을 통해 "의료법 제34조 제1항에 따른 원격의료가 아닌 방법으로 이뤄지는 전화진찰과 처방전 발급은 위법"이라고 안내했다.
해당 의료법 제34조 제1항에서 허용한 원격의료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의료인 간 의료지식 공유와 기술을 지원하는 정도로 한정돼 있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은 예전에 전화진료가 전면적으로 허용되는 듯한 판단을 내놨지만 이후 대면진료가 전제돼야 가능하고 입장을 바꿨고 최근에는 아예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전화처방을 하지 말라는 식으로 후퇴했다"며 "이는 전화처방을 해야 할 특별한 사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는 원칙적으로 전화처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엄격한 입장으로 볼 수 있다"며 "이런 점은 기존 헌재의 결정이나 법제처의 유권해석과 유사한 입장으로 회귀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도 "현재 코로나19 상황에서는 한시적으로 전화처방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법적으로 보면 전화처방은 초진이든 재진이든 상관없이 의료법 위반"이라고 했다.
전화처방에 따른 추가 제재 처분도 문제…의료계 혼란 가중 우려도
또 다른 문제는 원격의료로서의 전화처방 합법성 여부 이외에도 전화처방으로 인해 의료법 위반이 성립된 경우, 해당 사건으로 인한 의사면허 자격 정지 등 추가 처분이 정당한가에 대한 논란이다.
복지부는 최근 내원한 환자 3명에게 전화로 처방전을 교부하도록 의료인이 직원에게 시킨 사건에 대해 형사재판 결과 의료법위반 범죄사실이 인정됐다며 의사면허 자격정지 2개월 10일 처분을 내렸다.
반면 대법원은 이전에 의사로부터 진찰을 받고 같은 내용으로 이후 처방전을 전화로 발급했다면 의료법에서 금지한 무면허의료행위 등 위법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2019두50014).
그러나 전화처방에 따른 의료법 위반으로 인해 추가 제재가 이뤄지는 경우가 아직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일선 의사들의 지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화처방을 바라보는 의료계의 시선도 곱지 않다. 상황에 따라 대면진료로 인정받기도 하는 반면 의료법 위반으로 간주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한외과의사회 이세라 보험부회장은 "법을 어디에 적용하느냐 따라 전화처방이 합법이 되기도하고 불법이 되기도 한다"며 "이로 인해 많은 의사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의사들은 코로나19 한시적 허용 이후 전화처방으로 인한 법적 제재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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