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남부지방법원이 봉침 시술에 전문의약품의 하나인 국소마취제 ‘리도카인’을 혼합해 사용한 한의사에게 의료법 위반을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해당 선고 직후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당연한 결과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이 최근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판결과 마찬가지로 한의사의 면허 범위 안에 있는지를 가린 것인 만큼, 한의사는 한약 및 한약 제제 이외의 서양 의학적 입장에서 품목 허가된 일반의약품 및 전문의약품을 처방‧조제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의약품 분류 기준에 관한 규정 제2조 제1항에 따르면 전문의약품은 약리작용 또는 적응증, 투여경로의 특성, 용법·용량을 준수하는데 전문성이 필요하고, 부작용 우려 등을 이유로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시·감독에 따라 사용돼야 하는 의약품으로 규정하고 있기 떄문이다.
의협은 "의료인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의료법 제27조에 의거해, 의사는 의료행위를, 한의사는 한방 의료행위만을 할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판결"이라며 "한의사들이 전문의약품 사용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등 면허된 것 이외의 행위로 국민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의계 "환자 통증‧부작용 줄이기 위해 리도카인 진료에 보조적으로 활용하도록 해야"
하지만 해당 판결 이후 한의계 측은 사법부의 판결에 유감을 표하며 즉각 항소의 뜻을 밝혔다.
한의협은 "현재 한의사가 사용하는 한약(생약)제제 중에도 전문의약품이 있다"며 "의약분업 제도를 바탕으로 한 의료법과 약사법의 전문의약품 규정에서 의약분업 대상이 아닌 한의사가 처방주체에 빠져있어 이 같은 논란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봉침치료와 같은 한의 치료 시 환자의 통증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리도카인과 같은 전문의약품을 한의사가 진료에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당연히 합법적인 행위"라며 "최상의 한의의료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항소심에서 최상의 결과를 얻어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적극적인 리도카인 사용 운동을 해 나갈 뜻을 밝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현재 한의계에서는 봉침치료 시 통증을 줄이기 위해 리도카인을 희석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의사의 리도카인 사용 관련 소송은 이번 사건 외에도 수차례 제기돼 온 문제로, 한의계는 한의계 의권 신장의 측면에서 관련 소송을 적극 지원해 왔으며 이번 사건 역시 적극 개입해 한의협 내부 회원들로부터 탄원서를 받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한의사 리도카인 사용 뿌리 뽑으려면 전문의약품의 한방의료기관 납품 금지해야
사법부의 이 같은 판단에도 한의계가 끝까지 리도카인을 사용할 뜻을 밝히면서 의료계는 분노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한의계가 일련의 현대 의료기기 사건으로 자신감이 차 있는 상태다. 흐름이 한의계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간 숙원사업으로 생각했던 리도카인 문제도 풀어볼 요량인 것 같다"며 "한의사의 무면허 불법 의료행위로 피해를 입는 것은 국민인 만큼 근본적으로 한의사가 리도카인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마취통증의학회와 대한마취통증의학과의사회 등 전문가들은 전문의약품의 한방의료기관 납품 금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2017년 한의사가 리도카인을 투여한 후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의약품 공급업체가 한의원에 전문의약품을 공급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고 한의계는 한의사가 전문의약품을 사용해되 된다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리도카인은 국소마취제이자 부정맥 치료제로 과량 사용하거나 혈관 및 뇌척수 부위로 잘못 투여되는 경우 어지러움, 경련, 서맥, 저혈압 및 호흡억제가 초래되고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따라서 부작용 발생 시 적절한 처치가 가능한 의사만이 처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장운 마취통증의학과의사회 회장은 "의사협회와 약사회는 의약품 공급업체가 전문의약품을 한방의료기관에 납품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 입법을 촉구했으나 6년째 제자리 걸음"이라며 "여전히 도매상들이 한의사에게 전문의약품을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적발될 때마다 의료계가 고발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의사들이 관행처럼 리도카인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며 "해외 국가에서는 한의사와 같은 전통의사가 마취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하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이수증을 받은 한의사에게 일부 자격을 줘서 허용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는 교육을 이수한 사람에게 사용권한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윤 회장은 "리도카인은 얼굴이나 목 주변의 작은 혈관에 아주 소량만 들어가도 경기를 일으키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약제인데 한의사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리도카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의사가 리도카인을 사용하다가 환자가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며 "우리나라는 리도카인의 위험성에 비해 한의사들이 너무나 쉽게 리도카인을 접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국민에게도 점점 외면받고 있는 한의계가 영역 확대 차원에서 리도카인 등 전문의약품 사용을 확대하려는 것 같은데 그 피해는 국민에게 간다"며 "국가 차원에서 국민 건강과 안전 측면에서 의약품 공급업체의 한의원 리도카인 납품을 금지하는 약사법을 개정하든지 전문 자격증 제도 등을 통해 한의사의 리도카인 사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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