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5.30 06:47최종 업데이트 23.05.3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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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환 총장 “포스텍 의대, 공학 기반 의사과학자 양성하는 특공대 될 것”

[불편한 초대] “바이오헬스 중심 5차 산업혁명시대 의학교육 패러다임 변화 절실...500병상 난치병 환자 진료 병원도 설립”

포스텍 김무환 총장. 사진=포스텍 제공
불편한 초대 

메디게이트뉴스는 의료계와 타 직역·기관·단체가 대립하는 이슈들에 대해 의료계 반대 측에 서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의료계로선 ‘불편’하고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일 수 있고, 인터뷰에 나서는 이들도 '불편'한 자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양측이 간극을 좁힐 여지는 없는지 모색해볼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치열한 국가 간 경쟁에서는 가끔 포스텍 의대같은 특공대도 투입해야 하지 않겠나.”

포스텍(POSTECH) 김무환 총장은 19일 메디게이트뉴스와 만나 포스텍이 추진하는 연구중심의대(의학전문대학원)는 기존 의대와 전혀 다른 성격의 인재들을 양성할 계획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총장은 바이오헬스 산업이 새 먹거리가 될 5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공학’에 기반한 의사과학자가 필수적인 인재가 될 것”이라며 포스텍이 배출할 의사과학자들이 이미 임상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 국내 의료의 수준을 한 차원 더 발전시키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포스텍은 올해 의과학대학원을 개원하며 본격적인 의사과학자 양성에 앞서 예열에 들어간 상태다. 의대정원 문제가 해결되면 2026년 의학전문대학원 형태의 연구중심의대를 설립하고, 2028년에는 500병상 규모의 스마트병원을 개원한다는 계획이다. 

의료계도 의사과학자 양성 필요성에는 동의하고 있다. 다만 포스텍, 카이스트 등 과학기술특성화대에 의대를 신설하는 방식보다는 기존 의대가 의사과학자를 잘 양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경제적 이유로 임상으로 빠지는 사례가 많을 것이란 점도 의료계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김 총장은 “37년 전 포항에 포스텍이 세워질 때만 해도 아무도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다. 실패가 두렵다고 해서 안전한 길만 택할 순 없다”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료계의 이해와 지지를 구했다.

1경4000조 바이오헬스 시장 잡아야…칼 일리노이의대 모델 참고

- 포스텍이 연구중심의대 설립을 추진하려는 이유는 뭔가. 

5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의사과학자를 키워야 한다. 그간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기술을 인간중심으로 이해해보면 1, 2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효과는 노예가 없어진 것이다. 사람이 힘을 써서 하던 일을 기계가 대체했다. 3차 산업혁명을 통해선 인간의 감각 능력이 지구 반대편까지 확대됐다. 4차 산업혁명에선 인간이 지식 측면에서 기술의 도움을 받았다. 그 다음 5차 산업혁명은 무엇일까. 지금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에 대한 수요가 가장 크다. 5차 산업혁명은 그 방향으로 가게될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국가가 된다.

코로나 백신 개발 사례에서 봤듯이 우리는 미리 준비하는데 굉장히 늦은 감이 있다. 임상 분야 뿐 아니라 연구 분야의 의학교육이 강화돼야 하고, 이건 우리나라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대학이 할 일은 그걸 준비하는 거다.  

2020년 기준 전 세계 바이오헬스 산업 규모가 1경4000조원쯤 된다고 한다. 우리가 자랑하는 반도체·조선·자동차 산업을 합한 것 보다도 3배 이상이나 되는 수치다. 문제는 반도체·조선·자동차 분야에선 시장의 10~30% 정도를 점유하고 있는 반면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0.8%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현재 수준을 유지하려면 적어도 10~20년 뒤에는 점유율을 10%까진 끌어올려야 한다. 임상 의료만으로는 그렇게 되기가 만만치 않다.

- 포스텍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해외 사례가 있나.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MD-PhD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일리노이주립대 어바나 샴페인(UIUC)이 세운 칼 일리노이 의대 모델이다. UIUC는 지난 2015년에 이전 의대를 종료하고 3년에 걸쳐 커리큘럼을 준비한 뒤 2018년 칼 일리노이 의대를 출범시켰다. 한 과목 당 의사 2명과 이·공학자 1명씩 3명이 팀을 꾸려서 3년간 커리큘럼을 준비했다고 하더라. 입학한 학생 중 80%가 공대생이고 20%가 의학 전공이다.  

칼 일리노이 의대를 방문 했을 때 “공학자의 언어는 수학 아니냐. 앞으로 의사들의 언어는 공학이 돼야 한다”는 얘길 들었다. 심장을 예로 들면 예전에는 심장에 문제가 있으면 어떤 약을 주고 어떻게 수술할 지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앞으론 인공심장도 만들어야 하고 심장에서 흐르는 피의 흐름도 알아야 해서 유체역학도 중요해진다. 그래서 심장 전문의 2명과 유체역학 교수 1명이 함께 커리큘럼을 준비했다고 하더라. 

포스텍이 만들려는 의사과학자는 공학이나 과학을 이해하는 의사가 아니라 의학을 이해하는 과학자, 공학자다. 일반적인 진료를 할 수 있는 의사가 아니라 공학과 과학을 굉장히 깊게 탐구하고, 특정 질환을 연구하는 사람을 키워낼 것이다.

- 구체적인 커리큘럼은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

2+4+2 형태의 MD-PhD 복합학위 과정이다. 첫 2년은 의대 1·2학년이 배우는 내용을 가르치고 이후에 4년은 이·공학 PhD 과정을 밟는다. 그리고 다시 의대로 돌아와 3·4학년 과정(임상실습 교육)을 배우는 형태다.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지난해 11월 의사과학자 양성과 관련해 포스텍을 방문했다. 사진=보건복지부

임상 이탈 막는 법적 장치도 동의…포스텍 병원은 난치병 환자 중심 진료할 것

- 의료계는 포스텍이 배출한 인재들이 결국 개원가 등 임상 분야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우려한다.

의학전문대학원만 해도 8년이고, 학부까지 합치면 총 12년이 걸린다. 졸업생이 그 뒤에 개원을 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 포스텍 연구중심의대는 주변 동료나 선배들도 기존 의대와 다를 것이다. 기존 의대의 경우 연구를 하고 싶은 학생도 주변에서 개원한 선배가 돈을 많이 번다는 얘기를 자주 들으며 학부 시절을 보낸다. 반면 포스텍 연구중심의대에 들어온 학생들은 누가 어떤 연구를 하고, 그걸로 어떻게 성공했는지에 대해 얘기하게 될 것이다. 

- 연구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을 선발하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가능할까.

학생이 원하는 게 뭔지, 커리어 개발은 어떻게 해왔는지, 대학에선 어떤 과목을 들었는지 등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정말로 연구에 관심이 있는지를 충분히 판단해 학생을 선발할 것이다. 

- 카이스트에선 별도의 법적 장치를 통해 임상 진출을 막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의료계가 카이스트의대에 대한 우려를 거두기 힘들다면 법적 장치를 만드는 데 동의하고 힘을 보탤 생각은 있다. 다만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생각해봤을 때 얼마나 실효성있는 제도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또 우리가 양성하는 의사과학자들이 개원의가 되는 건 원치 않지만 의대 교수가 되는 것까지 막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의 빌딩10(Building10)에서 불치병·난치병 환자를 진료하고 연구하는 의사들처럼 대학에서 연구를 중심으로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난치병 환자들 중심으로 진료하는 의사들은 필요하다. 

- 포스텍은 지금까지 의사나 의사과학자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을 해본 적이 없다. 어떤 점에서 의사과학자를 잘 양성할 수 있다고 자신하나.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문 워킹을 하겠다고 했을 때 그에게 ‘경험이 있냐’라고 물었다면 어떤 답변을 했겠나. 세상을 한 계단 도약시키는 새로운 발전은 언제나 ‘최초’일 수밖에 없다. 솔직히 실패 확률이 적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없는 안전한 길만 택할 순 없지 않나. 물론 연구중심의대에 매년 입학하게 되는 40~50명 학생의 인생이 걸린 문제니 최선을 다할 것이다. 

포항은 성공 DNA가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37년 전 포스텍이 설립됐을 때 포항이란 ‘시골’에서 공대가 성공할 거라고 믿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다들 과거에 실패했던 사례들만 얘기했다. 하지만 포항은 포스텍도, 포스코도 성공시켰다.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연구중심의대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건 기존 의대에 훌륭한 인재들이 많다는 점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최고 대우로 그런 인재들을 모셔오면 얼마든지 교육을 위한 인프라 구축은 가능하다. 

- 교육을 위한 병원도 필요하다. 포스텍은 500병상 규모의 스마트병원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인데 카이스트와 달리 기존 병원을 활용하는 대신 직접 별도의 병원을 짓기로 한 이유는 뭔가.

우리가 구상하는 스마트병원은 불치병을 연구하거나 최첨단 의료기기를 개발·테스트하는 곳으로 기존 병원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전 세계 불치병·난치병 환자들이 우리 병원을 찾도록 하는 게 목표다. 포항의 경우만 봐도 지역 환자들의 49%가 서울로 간다. 이 중에서 서울로 가도 치료가 어려운 환자, 포항에서 치료받는 게 나은 환자들을 치료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관련 분야에서 가장 우수하고 연구 결과가 있는 의사들을 모셔올 예정이다. 
 
포스텍은 올해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의과학대학원을 개원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의사과학자 양성 출범식 모습. 사진=포스텍

병원 의사인력 확보 자신…기존 의대와는 다른 특공대 역할 하겠다

- 다른 직역과 마찬가지로 의사들 사이에서도 지방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포스텍의 스마트병원이 개원하더라도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있나.

현재 포스텍에서 일하고 있는 300명의 훌륭한 교수들이 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교수들에 대한 대우, 주거환경, 교육환경 등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겠지만 지금도 포항의 삶의 질은 좋은 편이다. 다만 의료시설이 조금 부족했는데, 그걸 우리가 보완하겠다. 

- 의료계에서는 이미 의사 양성 인프라가 갖춰진 의대에 재정적·제도적 지원을 해 의사과학자를 배출토록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기존 의대들도 의과학자를 훌륭하게 양성해왔다. 다만 분야를 살펴보면 대부분 미생물학, 생리학 등 기초과학이다. 인공지능, 기계공학, 바이오 재료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없다. 우리가 만들겠다는 건 기초과학이 아니라 공학에 기반을 둔 의사과학자다. 그런 점에서 스마트병원도 우리가 길러낸 의사과학자들의 플레이그라운드가 될 거다. 스마트병원 체계가 개발되면 하나의 수출 품목으로 삼을 계획도 하고 있다.

- 의사과학자에 대한 처우 개선과 안정적 일자리 확대가 없다면 포스텍에서 의대를 만들어도 의사과학자 배출이 쉽지 않을 거라는 지적도 있다.

직업 안정성과 월급이 보장되길 바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안타까움이 있다. 일론 머스크같은 사람들이 보장을 받고 테슬라를 만든 건 아니지 않나. 실수하면 안 되고 보장된 길만 걸으려는 이들은 연구를 하기 어렵다. 자기만의 비전이 있고 자신감 있는 사람들이 연구를 잘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학생들을 선발할 것이고, 포스텍에서 MD-PhD를 딴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분야를 창조해내면서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머스크 같은 괴짜들이 많다. 성공 사례들이 나오면 모두들 이 분야에 달려들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도울 것이고, 경상북도 등 지자체도 어느정도 성과가 나올 때까지는 제도권 내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을 받았다. 

- 포스텍 연구중심의대와 병원 설립 계획에 대해 포항시는 물론이고 지역의 6개 병원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포스텍이 설립할 병원이 지역의 기존 병원들의 경쟁자가 될 수 있음에도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는 뭔가.

우리는 의대와 병원 설립을 통해 포항을 바이오헬스 거점 도시로 만들고 싶은 것일 뿐, 혼자서만 잘 되겠다는 건 아니다. 지역 병원들도 그런 원대한 계획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에 지지를 해주고 있다. 앞서 말했듯 포스텍의 스마트병원은 통상적인 종합병원처럼 일반 환자들까지 다 진료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래서 치료를 비롯해 교육·연구 등에서 지역의 기존 병원들과 밀접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지역의 기존 병원들 수준도 함께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

- 포스텍의 연구중심의대 설립에 부정적인 의료계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달라. 

그간 의료계는 임상 분야에서 단시간 내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이제는 임상 분야를 넘어 의료산업 바이오 산업 규모를 최소 10배는 키우며 한 단계 도약해야 할 시기다. 그러려면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결코 임상에서 경쟁하는 이들을 키우겠다는 게 아니다. 임상의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새 영역을 만들어갈 사람을 키워내고 싶다. 이를 통해 의료산업 전체가 세계를 선도할수 있는 나라로 바뀌어 갈 수 있도록 하겠다. 

의료계의 성장을 위해선 기존 의대들이 발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국가간 경쟁에서 가끔은 우리처럼 특공대가 투입되는 것도 필요하다. 국내 의사들 간의 내부 경쟁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의료기술, 한국 의사들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점도 살펴봐야 한다. 임상에선 이미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고 이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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