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비 30~60% 초저수가로 왜곡된 의료시스템·법적 책임 적은 외국 사례는 철저하게 감춰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정부는 필수의료 저수가 등 문제 원인을 왜곡하고 있다. 오래 쌓인 정책적 실패엔 침묵하고 오롯이 책임을 의료계에만 넘기고 있다."
의대정원 증원과 필수의료정책 패키지를 강행하는 정부에 대한 의료계 내 성토가 나왔다. 지역필수의료 붕괴 등 문제를 정부 정책실패에서 찾지 않고 오롯이 의료계 책임으로만 전가한다는 취지다.
구체적으로 한국이 해외와 비교해서 30~60% 수준인 초저수가로 인해 필수의료 신제품 도입이 어려워 구모델 재고처리장으로 전락한 문제는 절대 언급하지 않고 의사 부족, 피부·미용 등 탓만 하고 있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이에 의료계는 요양기관강제지정제 폐지와 의료 사법리스크 완화, 보험체계 다양화 등을 해결책으로 꼽았다.
필수의료 위기가 시장실패인가·정부실패인가…다시 곱씹어봐야 할 때
우선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는 10일 '2024년 의정갈등 현재와 미래' 연세의대 심포지엄에서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가진 구조적 모순을 면밀히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필수의료 위기가 시장실패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현실을 무시한 규제 등 정부 정책 실패인지 객관적인 평가가 다시 선행돼야 한다고 봤다.
박형욱 교수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는 비싼 의료서비스를 강제로 싸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의료보장을 위해 충분한 재정을 투여해 가난한 국민들을 도와준다"며 "개인의 선택권, 국가재정의 한계를 인정하기 때문에 공공 의료체계와 민간 의료체계가 공존하며 각자의 역할을 한다"고 운을 뗐다.
박 교수는 "국내 의료쳬게는 서구의 체계와 매우 다르다. 국내 민간의료기관은 강제로 공공의료에 편입시켜 철저히 관료화돼 있으며 의료전문직의 자율성은 무시된다"며 "공공의료기관은 민간의료기관처럼 돈을 벌어 생존해야 하는 반면 민간의료기관은 공공의료기관과 동일한 규제를 받으며 망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의료체계는 비싼 의료서비스를 강제로 싸게 만들어 의료 보장을 한다. 이로 인해 의료접근성은 매우 좋다. 그러나 의료기관은 박리다매, 비급여 창출 등으로 수입을 보전하는 교차보조 형태로 의료체계가 운영된다"며 "대학병원 응급실은 힘들고 전공의는 기본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더욱이 의료 민형사 책임이 가중되면서 필수의료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필수의료 초저수가는 정부가 만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는 현상"이라며 "필수의료 위기는 대한민국 의료의 거버넌스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됐다. 허수아비 위원회를 내걸고 가짜 대화를 진짜 대화로 속이면서 이 사태까지 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즉 정부가 비급여 탓만 하면서 실제로 의료 현장에서 팽배한 초저수가 등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가별 내시경 수가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영국,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인도, 호주, 대만에 비해서도 턱 없이 적다. 의료체계가 비슷하다고 평가받는 일본도 12만6832원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4만2259원에 그친다.
이젠 건강보험체계 자체 바꿔야 할 때…정책실패 개선하자
기존 건강보험체계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재 운영 중인 보험 시스템으론 더 이상 의료체계를 이끌어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의료체계는 사회구성원의 능력과 수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구성돼야 한다. 스스로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국가에서 책임지지만 어느 정도 재정적 능력이 있는 사람은 사회보험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제공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 받을 재정적 능력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해결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며 "이처럼 기본적으로 공적의료와 사적의료의 양 날개를 가진 의료체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각각의 의료체계 안에서 일관된 운영원리가 적용돼야 한다. 그 이유는 운영원리의 부정합성이 우리 의료체계를 왜곡시킨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며 "공적 의료는 수가를 통제하되, 의료기관의 적정한 운영을 보장해야 하며 의료사고, 특히 의료사고 발생시 국가가 보험자가 일차적으로 책임지고 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정책 제언에 대해서도 그는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민간·공공 의료수가와 우리나라 건보수가를 비교해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해 필수의료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며 "또한 정부는 주요 국가에서 의료과실에 대한 형사처벌이 거의 없다는 점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영국은 개원의가 NHS 참여시 민사책임도 국가가 배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형욱 교수는 "필수의료 위기가 시장실패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현실을 무시한 규제 때문에 발생한 정부 실패인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비전문적 행정관료들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한국 의료의 거버넌스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박 교수는 "2024년 2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는 향후 건강보험료율을 얼마나 인상할 정책적 의지가 있는지 전혀 언급이 없다. 건보료율 인상에 대한 정책적 의지 없이는 필수의료 지원은 100% 아랫돌을 빼서 윗돌 귀기로 끝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혼합진료 금지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는 "일본에서 보험진료와 보험 외 진료를 병용하는 것을 혼합진료라고 한다. 일본은 혼합진료를 금지한다고 하나 정확히는 진료비 혼합만을 금지하는 제도로 오히려 민간의료를 완전히 허용한다"고 설명했다.
박형욱 교수는 "우리나라는 요양기관 강제지정제 때문에 국민건강보험과 분리된 자기부담 진료가 봉쇄돼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잘못 이해된 혼합진료 금지를 도입한다면 일본보다 더 극단적으로 환자 권리의 박탈을 초래하게 된다"고 말했다.
잘못된 제도로 인한 의료체계 붕괴 인정하고 의정 갈등 풀어내자
이날 함께 심포지엄에 참석한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전 회장은 이젠 정부와 의료계가 "원점에서 다시 대화와 협상을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만 우리나라 의료가 급속하게 붕괴하고 있다는 같은 문제의식을 토대로 만나야 한다고 했다.
주 전 회장은 "의정 갈등이 시작된 지 3개월 정도 지났다. 지금 시점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정부는 통일된 안을 얘기한다. 의료계에선 간헐적으로 필수의료 수가 보장과 의료 민형사소송 국가 배상문제을 주장하고 있다"며 "국가 단일 건강보험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책임보험과 더 많은 요구를 충당할 수 있는 종합보험으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필수의료 책임보험은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고 종합보험은 취사적으로 선택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열어놔야 한다"며 "빨리 의료계에서 요양기관 강제지정제 폐지와 더불어 이 같은 논의를 통해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민간의료보험이 들어와서 다양한 보험상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정 대화와 관련해서도 주 전 회장은 "의사와 정부가 일치된 지점에서 만나서 대화해야 한다. 대한민국 의료가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다는 의식을 공유해야 한다"며 "이 지점부터 다시 진단하자는 것이다. 의사들이 의료 체계 붕괴의 원인이 아니라 잘못된 제도가 누적돼서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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