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총선 이슈 대목 앞두고 350명 증원설 덮을 여론전 필요…매번 정부는 빠지고 언론 앞세우는 게 공정인가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지난 14일 뜬금없이 의대정원 관련 기사 하나가 보도됐다. '정부가 2025학년도 입시에 적용될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최소 1000명에서 최대 2000명 이상 늘릴 것이 확실하다'는 내용이었다.
"의대정원 규모와 발표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는 보건복지부 김한숙 과장의 일주일 전 인터뷰 내용이 무색할 정도로 보도 내용은 구체적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지금, 의대정원 증원 규모에 대한 이렇게도 구체적인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번 언론보도는 설 연휴를 앞두고 의대정원 확대가 350명에 그칠 수도 있다는 여론을 반박하고 싶은 '정부발' 언론플레이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지난해 5월 '정부가 의대정원을 2025년부터 3570명 늘리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아닌 언론이 먼저 공개했다는 선례를 보면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
보도 시점도 주목해봐야 한다. 해당 보도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지난 9일 오후 '의대 정원 적정 규모는 350명'이라는 성명을 낸 직후인 1월 둘째주 주말에 이뤄졌다. 즉 최근 의대정원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특별한 이슈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는 KAMC가 내놓은 350명이라는 적정 규모를 반박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발 350명 증원설 반박 작전'이 시작된 시발점은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KAMC, 대한병원협회 등 단체가 모두 350명 정원 확대안을 정부 측에 건의했고 일부 공감대가 있었다'는 9일 오전 본지 보도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관련기사=의대정원 증원 규모 '350명' 우선 합의 이뤄지나]
KAMC는 이날 오후 '의대정원 확대 규모 350명' 관련 성명서를 발표할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350명 증원 기사가 나간 이후 이를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것으로 파악된다. 350명 증원설에 반박하는 정부발 기사가 나오기 위해선 당사자인 KAMC 공식 입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KAMC는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어쩔 수 없이 성명을 발표했던 것이다.
성명이 발표되기 직전 의학계 주요 관계자는 기자에게 "오늘 보도된 메디게이트뉴스 기사로 인해 KAMC가 난감해졌다"고 했다. 아마 KAMC는 본지 350명 정원 확대 기사가 보도된 이후 정부 측으로부터 항의 아닌 항의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시국에 의대정원 증원 규모가 '겨우' 350명에 그칠 수 있다는 뉘앙스는 정부 입장에서 그리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총선이 1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의대정원 확대 문제는 정부여당에게 있어 표심을 공략할 수 있는 핵심 민심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3000명 이상을 기대했던 증원 규모가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면 총선 민심에선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
더욱이 1월 2주차 국민여론은 정부여당 측에 웃어주고 있다. 1월 2주차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도가 3.0%p나 올랐다. 3월 2주차 이후 가장 높은 지지도다. 어렵게 잡은 상승 기세를 몰아 현재의 불리한 형국을 뒤집어야 하는 정부여당 입장에선 의대정원 350명 증원설을 하루빨리 덮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공식적으로 KAMC는 '350명 적정' 성명을 냈고 이를 반박하는 형식으로 '2000명 이상 정부가 의대정원을 확대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게 됐다. 2000명 이상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에 국내 주요 일간지들은 모두 해당 기사를 받아 썼고 뉴스 메인 페이지는 '350명'은 온데 간데 없고, 의대정원 확대 규모 '네자릿수 예상' 이라는 프레임으로 잠식당하고 말았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가장 아쉬운 점은 한국의 의료 백년지계를 책임지게 될 '의대정원' 문제가 단순히 총선용 정치 전략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이다. 아무리 정치가 '진실게임'이 아닌 '인식게임'이라곤 하지만 공신력 있는 현장의 의학계 단체들이 모두 350명 증원이 적절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2000명 이상 증원을 주장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특히 이번 의대정원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매번 보건복지부는 교묘하게 빠지고 언론을 앞장세워 이슈를 대신 끌어가는 모습이 과연 정부가 얘기하는 '공정과 상식'인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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