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민 활동가가 10여년째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하는 이유…의료지원이 꼭 필요한 곳에서 '의사 한 명'의 가치
[의대생 인턴기자의 선배의사 인터뷰] 의미 있는 일 찾기 좋은 의사 직종...관심이 있다면 의사로서 전문적 능력부터
[메디게이트뉴스 황다예 인턴기자 동국의대 예2]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서 사는 삶이 확실히 그 이전보다 대체로 행복하고 즐겁다고 느껴져요. '왜 즐거운가요'하고 묻는 것은 마치 파란색을 왜 좋아하나요, 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사람의 건강과 생명에 연관이 있는 의료활동을 해왔으니 가치가 있는 일을 하며 살았지만, 아프리카 등 현지에서 그런 의료 활동이 갖는 가치의 크기나 무게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크다고 생각해요.“
국경없는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es, MSF) 이효민 활동가를 지난해 9월 MSF 한국사무소에서 만났다. 그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이자 올해 12년차 MSF 활동가로, 2012년 겨울 첫 활동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13번의 출국과 14번의 활동을 다녀왔다.
그의 MSF 활동의 시작은 ‘다른 길’에 대한 관심이었다. 이후 그는 지난 10여년 간 해외 의료 소외지역을 찾아 환자의 생명을 살려왔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대우재단이 수여하는 제2회 김우중 의료인상을 수상했다.
다음은 MSF 서울사무소에서 진행된 이효민 활동가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그와의 인터뷰 기록은 온라인으로 녹화해 방학 기간 중 관심이 있는 의대생들에게 먼저 공유했다.
다른 길 찾고 싶어서 시작…활동가가 되려면의사로서전문적능력갖추는것이최우선
-MSF 활동을시작한지만으로 10년이다돼간다. 처음 MSF 활동을시작하던때와마음가짐이나가치관이달라졌나. 만약달라졌다면무엇이달라졌나.
MSF 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은 ‘오랜 꿈과 사명감’, ‘평소 꾸준했던 의료 구호활동에 대한 관심’과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의대생 시절, 그리고 펠로우 과정을 거칠 때까지만 해도 특별히 MSF 활동에 대한 뜻이 있지는 않았다. 거대한 가치를 추구하거나 남을 돕는 이유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그저 의사로서 종합병원에서 임상교수로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등의 일과 봉직의사로서의 삶 이외에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활동을 10년 간 계속해오면서 마음가짐이나 가치관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이전에 비해 새롭게 얻은 것이 많다. 우선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만나는 사람이 병원 안의 사람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MSF 활동은 비의료인뿐 아니라 비한국인, 특히 선진국 이외의 국가의 사람들과 마주칠 수 있는 경험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문화다양성에 열린 마음을 갖게 됐고, 소수자나 약자의 인권에도 관심이 더 생겼다. 스스로 이렇게 MSF활동을 오래 하게 될 줄 몰랐다.
- MSF 홈페이지의 ‘채용 분야’에서 모집하는 의사는 일반의 그리고 일부 분과(마취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성형외과·수부외과, 소아과, 외과, 응급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등)다. 그렇다면 해당 과가 아닌 전문의는 MSF 활동가로 참여하기 현실적으로 어려운가.
그것은 현장의 필요에 따라 다르다. 평소에 굉장히 중요하고 필요한 과여도 MSF 활동 현장에서는 소위 ‘뒷감당이 어려운’ 진료과들이 존재한다. 수술 전후로 수많은 인력, 장비, 약품 등과 중환자실 관리까지 필요한 뇌수술, 심장수술 등을 담당하는 과들이 존재한다. 목숨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중요한 과이지만, 1,2차 의료 위주인 MSF에서는 고난이도 수술을 시행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흉부외과 의사가 프로젝트에 참여해도 일반 외과의로 일하고 온다.
MSF 활동은 채용전형 과정을 거친 이후 우선 인력 풀에 등록된 후 필요할 때 프로젝트와 활동가를 매칭해 주는 방식이다. 현재까지 400여 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새로운 프로젝트도 계속 생기고 있다. 매 프로젝트 시작 전에 프로젝트 평가를 통해 현장에서 어떠한 인력이 필요한지 결정하는데, 이때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분야의 인력에게 연락이 가게 된다.
만약 현장에서 특정 진료과 전문의들이 많이 필요한 긴급 프로젝트 등을 열면서 의사를 모집한다면 두루 참여가 가능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 주로 많이 필요로 하는 전문과는 산부인과, 내과의사, 가정의학과, 예방의학과 등 대체적으로 현장 활동의 성격에 맞는 의사들이다. 다시 말해 ‘스페셜리스트’ 보다는 ‘제네럴리스트’ 위주다.
실제로 이비인후과, 안과, 피부과 등의 전문의 활동가를 현장에서 본 적은 없다. 아프리카에서 기생충으로 인한 감염 질환 ,특히 피부 병변 등이 흔하기도 했고, 열대의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런던 학회에 참여했을 때에도 피부 질환이나 안과 질환에 대한 수업을 들었지만, 해당 과 전문의들을 상시 모집하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현재 MSF에서는따로인턴십이나실습프로그램을진행하고있지않다. 그렇다면 MSF 활동에관심있는의대생들이학생신분으로할수있는준비에는어떤것이있을까. 비슷한환경을미리경험해보기위한해외의료활동참여가많은도움이될수있을까.
먼저 해외 의료 활동이 도움이 되지만 필수는 아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나처럼 학생 시절에 관심과 경험이 전혀 없던 사람도 충분히 MSF 활동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게다가 해외 중·저소득 국가에서의 경력이 채용에 큰 도움이 되는 비의료 직종과는 달리, 의사의 경우 본인의 전문적인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다만 해외 의료 활동 참여를 통해 본인이 이러한 활동을 견딜 수 있는지, 현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인지 등 자신의 적합도를 스스로 파악하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경험 없이 처음 구호 활동에 참여했을 때 금방 그만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MSF 등 의료 구호 단체들이 활동하는 곳이 한국의 의료 현장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장비, 약품 등 물적 자원 뿐 아니라 인력도 한정돼 있고, 의료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을 때의 생활 전반에도 제한이 많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스스로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미리 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의사로서 중요한 것은 ‘전문적인 능력 기르기’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야 하는 것은 여타의 직종도 마찬가지지만, 의료구호단체에서 의료 활동의 중심이 되는 의료진으로 조금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현장에서 의사의 결정과 선택 하나하나가 굉장히 의미가 크고, 의학적 경험과 지식에 기반해 적절한 결정을 내리고 수행하는 전문적 능력을 갖추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다.
MSF 현장은 한정된 자원 안에서 최대한 옳은 의학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환경이다. 그 전까지 의사로서 수련을 받고 전문의로 일하면서 의사로서의 능력을 최대한 키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MSF에서의 활동은 모두 단체생활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팀 리더나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경험을 쌓아두면 유용할 수 있다.
또한 외국어(영어, 프랑스어) 공부도 빼놓을 수 없다. 마취과, 산부인과, 외과 등 세부적인 업무를 수행하며 만나는 사람이 제한적인 전문과의 경우에는 환자와 소통할 일이 적다. 대신 의학용어를 충분히 아는 것이 더 중요하고, 기초회화도 할 수 있으면 훨씬 좋다. 반면 내과, 소아청소년과 등 환자 및 보호자와의 소통이 더 필요하거나 말로 업무를 풀어나가야 한다면 기초회화가 더욱 중요해진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력감과 회의감··· 할 수 있는 일 안에서 최대한을 해내자는 마음
- 현장에서 활동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MSF에서 활동하기에 특히 적합한 성격, 성향이 따로 있을까. 평소 이러한 성향의 사람이라면 잘 맞거나 혹은 반대로 몇 배로 힘들 수 있을지 궁금하다.
평소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라면 스트레스가 적을 것이다. 풍족하지 않은 곳에서 있기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이 좀 더 잘 지내는 듯하다. 같은 숙소에 모두가 모여서 지내고, 대부분 같은 진료소나 병원에서 근무하는 단체생활인 만큼 각자가 살아온 배경이 달라 부딪치는 스트레스도 많다. 이런 것을 속으로 꾹꾹 눌러담기보다는 자기 의견을 바로 잘 표현하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지내기가 조금 수월할 것이다.
다만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는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지 않나. 나조차도 아직도 그런 의견 개진과 추진이 익숙하지 않음을 느낀다. 그런 의사표현을 잘 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내향적이더라도 스스로 스트레스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 MSF 활동에 비교적 적합할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조직 생활에 적합한 사람’이 잘 어울린다. 단체생활이라면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팀 안에서 뭔가를 해야하므로 단체 생활에 익숙하고 잘 적응하는 사람, 또 환자 진료 이외에도 현지 인력 관리, 교육이나 프로젝트 계획 및 추진까지 해야 하는 상황을 잘 다룰 수 있는 리더십 있는 사람이 활동에 잘 맞을 것이다.
- MSF 활동 중 생명의 위협, 또 정신적인 스트레스 내지는 무력감 등과 싸우는 것은 익숙해지지 않는 힘듦일 것 같다. 이런 부분뿐 아니라, 외부에서 알기 어려운 다른 어려움도 많을 것 같은데 실제로 어떤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지적한 부분들이 많다. 첫 활동이었던 나이지리아 북부에서의 모자보건 프로젝트 당시에는 무력감과 회의감이 가장 컸다.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는 한국에서 익숙하게 쓰던 좋은 약과 장비들도 그리고 주요한 결정과 의료행위를 마치면 나머지 과정을 지원하고 책임져주던 동료들이 없었다. 현지 직원들이 분명 있지만 한국에서처럼 모든 것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은 당연히 아니었다.
의사로서 오더를 전달하면 그에 따라 모든 것이 순탄하고 신속하게 수행이 되는 시스템이 아닌 곳에서 순전히 혼자만의 머리와 손만으로 하는 의료행위는 쉽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그동안 내가 해온 것들은 장비와 약품에 의존해서 해낸 것들이었네’ 싶어 힘들었다.
특히 모자보건 사업인 만큼 난산의 부작용으로 생긴 방광질 누공(vesicovaginal fistula) 수술을 비롯해 제왕절개 등의 산과적 응급수술, 자반증 등에 대한 산모 관리 등을 모두 맡았는데, 그 과정에서 여성건강의 전반적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는 것을 체감했다. 10대 초반에 결혼해 임신을 하는 경우, 열세 번씩 임신을 하는 경우 등 여성의 건강이 보장되지 않는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현재 증상에 대한 치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사회경제적 문제라는 데서 회의감을 크게 느꼈다.
외부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캠페인 정도이고, 현지의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으면 다 바꿔놓기가 힘든 상황이다. ‘우리가 치료하고 수술해도 새로운 환자는 계속 생길 것이고 이 환자도 다시 비슷한 문제로 치료가 필요해질텐데, 우리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싶었다.
그러나 이후두 번째, 세 번째 활동을 다녀오며 어느 정도 이러한 구호활동의 한계를 인정하고 활동가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게 됐다. 결국 ‘지금 할 수 있는 일’ 안에서 최대한을 하는 것도 의미가 충분히 있겠다는 결론이 나더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해도 지금 내 눈 앞의 환자는 당장 치료가 필요하고 이 상황을 누군가는 해결해줘야 하니까.
그 다음에는 각각의 활동 특성에 따라 힘든 일들이 있었다. 특히 2014년 남수단에서 근무할 때 분쟁 지역 한가운데에서 지냈는데, 직접적으로 생명 위협까지는 아니었어도 폭격 소리나 총소리 등이 거의 날마다 들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분쟁 지역에서의 프로젝트였던 만큼 날마다, 혹은 정기적으로 치안 상황에 대한 보고(security briefing)가 있었는데, 그때때로 근거리 총격이 있었다는 소식 등이 들렸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 1인 1실을 사용할 수 있어 개인적 공간이 확보됐던 이전의 활동들과는 달리 UN 군사기지 안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다 보니 공간적 한계와 권한의 한계 등을 느끼기도 했고 비가 새는 등의 문제도 잦았다.
이외의 대개의 활동들에서는 환경도 지낼 만했고, 의료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요리나 청소 등의 업무는 따로 MSF 측이 현지 인력을 고용해 해결해줬다.
- 이런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MSF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각 프로젝트를 마친 후 심리사회적 지원 패키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설명을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실제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남수단 활동을 마쳤을 당시는 MSF 한국 사무소에 지원 프로그램이 존재하기 이전이었다. 그래서 해당 프로젝트 담당이었던 암스테르담 센터에 활동 보고를 위해 방문했을 때 그곳의 프로그램(psychosocial unit)을 통해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는 한국 사무소에도 지원 프로그램이 생겨 정신건강의학과와의 연계를 통해 활동가들을 지원해주고 있다. MSF 중앙 운영센터 측에서도 특히 분쟁 지역에 다녀온 경우에는 운영센터 사무실에서 직접 상담을 제공해 주기도 하고, 온라인 상담도 요청 시 제공하고 있다고 하더라.
”제가 즐거워서 계속 하고 있습니다“ - 이곳에 있을 때 나의 도움이 몇 배는 더 가치있기에
- 이외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을 활동 때마다 수없이 경험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스스로 즐거워서 계속 하고 있다. 단순히 재미가 있다거나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병원을 사직하고 MSF 활동에 합류한 이후로의 삶이 확실히 그 이전보다 대체로 행복하고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현지에 도착하면 당연히 ‘집에 가고 싶다’, ‘냉면 먹고 싶다’ 이런 생각도 들고(웃음), 분명 힘든 것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귀국해서 한 달쯤 있다보면 ‘다음 활동을 또 나가야 하는데 언제 가지? 시간 맞는 활동을 찾을 수 있으려나’ 싶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즐겁기 때문에 10년 동안 이런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왜 그런 삶이 즐겁냐’ 고 물으면 그것은 마치 ‘너는 파란색을 왜 좋아하냐’는 질문과 비슷한 것 같다. 일정 부분은 개인적 성장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의사로 일할 때 느끼지 못했던 보람을 순간순간, 하루하루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사람의 건강과 생명에 연관이 있는 의료활동을 해왔고 그만큼 가치가 있는 일을 하며 살았지만, 아프리카 등 현지에서 그런 의료 활동이 갖는 가치의 크기나 무게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크다.
솔직히 한국에는 나 말고도 의사가 정말 많다. 그런데 아프리카에는 50만 명당 의사 한두 명이 겨우 있는 수준이고, 국가 전체에 신경외과 의사가 한 명도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만큼 의료 인력 자체가 드문 환경이고, 의료인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그만큼 나의 도움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 싶어서 보람을 훨씬 더 많이 느꼈다. 한국에서는 나 하나 빠진다고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자원이 제한된 그곳에서는 의사 한 명이 더 있을 때 차이가 훨씬 크다.
- 2년 전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 ‘60대까지는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그 계획에 변화가 생기진 않았나. 앞으로 다른 분야에서 일할 계획도 가지고 있나.
그렇게 이야기했었던가? 사실 60대보다 더 오래 하고 싶다. (웃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래 하고 싶다.
다른 MSF 활동가 선생님들 중 보건대학원으로 가서 국제보건과 관련해 공부를 더 하거나 학위를 취득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쪽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의료 구호 활동을 하다 보면 환자 한 명, 한 명의 진료뿐 아니라 그 국가나 사회의 보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제 보건에 관심이 안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논문을 쓰기가 싫고(농담) 행정적인 일을 싫어하는 편이다. 아직까지는 손을 직접 사용해 현장직으로서 마취과 의사의 일을 하는 것이 더 잘 맞고 이를 더 선호한다. 어떤 큰 계기가 있지 않는 한 아마 당분가는 지금까지처럼 현장에서의 활동가로서 일할 계획이다.
- 그렇다면 프로젝트를 마친 후 다음 파견까지의 시간 동안은 어떻게 보내는가.
한국에 귀국해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번다. 그런 측면에서 마취과가 참 이 일과 잘 맞는 것 같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분들이 예전부터 계셨고, 실제로 그렇게 하기가 다른 과에 비해 훨씬 수월하다. 나는 가장 긴 활동이 3개월 정도였는데, 소아과나 가정의학과 등의 경우에는 6개월~1년짜리 활동을 다녀오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런 경우 한국에서 1~2년 정도 취직을 하셨다가 장기 활동에 또 다녀오시기도 하고 그야말로 진리의 ‘케바케’다.
병원과 스케줄을 잘 조정해서 1년에 어느 정도 기간은 활동을 다녀오는 것으로 계약을 하신 분도 있는 것으로 안다. 유럽이나 호주, 뉴질랜드 등 복지가 잘 돼있는 국가의 활동가들은 휴가나 유급휴직 등을 활용해 활동에 참여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부럽다.
(한성하 MSF 커뮤니케이션 국장: 일반외과에서 근무하시던 활동가 선생님께서 사직하고 프로젝트에 다녀오시려 했는데, 외상센터에서 인력이 너무 부족한 상태였다. 보건복지부 측과 협의를 통해 권역외상센터에서 MSF 활동 등의 사유로 나가야 하는 경우에는 휴직 처리가 가능하다는 운영지침이 포함됐다고 한다. 근속년수에 따라 다르지만 50%까지의 급여도 챙겨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활동가들이 권역외상센터 쪽으로 취직을 생각해도 좋지 않을지도 생각했다. 나는 10년 전에 첫 활동을 나갈 때 6주짜리 짧은 프로젝트였는데 무급 휴직도 불가능하다고 해서 결국 사직하고 다녀왔다. 점점 좋은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활동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더 많은 곳들이 바뀔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바꿔주지 않는다.
- 마지막으로 MSF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의대생들, 그리고 의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일단 MSF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나는 의대생 때 이런 쪽에 관심을 갖고 알아보고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서 그런지, 너무 일찍부터 이 일만 준비하고 이 일만 바라보고 그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솔직히 의사로서 실력 있고 능력 있고 좋은 의사가 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서 MSF에 합류해서 활동하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의사라는 직종이 의미있는 일을 찾기 좋은 직종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구호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의료가 필요한 사람을 찾으러 굳이 아프리카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너무 힘들 것 같고, 위생이나 분쟁 지역에 가는 것 등 스트레스가 걱정되고 힘든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는 사람이 가면 되는 것이다. 국내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활동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일찍부터 ‘나는 꼭 MSF에 들어가야지’, ‘꼭 UN에 들어가야지’ 이렇게까지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 좋은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목표를 갖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의사들에게는 내가 뭐라고 주제넘게 얘기하겠냐마는, 한국에서 의사가 인식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직업이지 않나. 그래도 계속 얘기하듯, 의사는 자신의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다. 그만큼 다른 사람과 공동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뭐라도 찾아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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