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간호법과 함께 국회 본회의 통과…의료계 "행정 부담만 커지고, 부정수급 적발 실효성 없어"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의료기관이 내원 환자의 본인 여부 및 건강보험 자격을 의무적으로 확인하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내년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해당 법에 따라 앞으로 병‧의원은 내원 환자에게 일일이 건강보험증이나 신분증명서를 요구해 본인 여부를 확인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 및 징수금 등 처벌의 대상이 된다.
정부는 법을 통해 건강보험 도용 등 부정수급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당장 의료기관의 행정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신분증을 소지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환자들과의 갈등이 예상되면서 의료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요양급여의 부정수급 통제 위해…의료기관이 직접 환자 '본인 확인' 의무화법
4월 27일 본회의를 통과한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지난 2020년 10월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최초로 관련 내용을 발의한 이래로 같은 당 남인순, 김원이, 고영인, 김성주, 정춘숙, 최강욱 의원과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 등의 의원이 대표발의한 유사 법안을 보건복지위원회가 통합‧조정해 위원회 대안으로 만든 법안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조항은 제12조 제4항으로 "요양기관은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에게 요양급여를 실시하는 경우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건강보험증이나 신분증명서로 본인 여부 및 그 자격을 확인해야 한다. 다만, 요양기관이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의 본인 여부 및 그 자격을 확인하기 곤란한 경우로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내용이다.
최초 법안 발의자인 강병원 의원은 타인의 명의 대여‧도용으로 인한 요양급여 수급을 방지하기 위해 요양기관이 요양급여를 실시할 경우 본인 여부 및 건강보험 자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마련된 위원회 대안에서도 "요양급여의 부정수급을 엄격히 통제"하고 "보험급여 및 보험급여비용의 부정수급자에 대해 부당이득을 전액 환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 부정수급을 원천 차단하고 건강보험재정의 누수를 방지할 수 있다"고 제안 이유를 밝히고 있다.
실제로 2007년 '수진자 자격확인 전산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대부분의 의료기관들은 환자에게 건강보험증 또는 신분증명서 제출을 요구하는 대신 시스템을 통해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 확인만으로 건강보험 자격을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러한 개인정보 확인만으로는 가입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워 명의 대여‧도용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해당 법을 찬성해 왔다. 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명의 대여‧도용 부정수급 현황은 적발인원 463명, 결정 건수 3만 1433건으로 결정 금액은 7억3800만원으로 나타났다.
의료계 우려에도 본회의 통과…복지부 "국민 불편 최소화 위해 확인방법 다양화"
문제는 본인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주체가 '요양기관'이며, 이러한 의무를 위반한 의료기관은 과태료 및 징수금 제재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등 의료계는 해당 법에 강력 반대해왔다.
의협은 해당 법이 요양기관에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으며, 법이 시행될 경우 환자들의 요양기관 접근성 저하 및 취약계층의 진료공백이 발생할 것이라며 부작용을 우려했고, 병협 역시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온라인·키오스크 활용 등 비대면 접수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신분증 사진 확인만으로는 부정수급 예방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되면서, 조만간 대통령이 법을 공포하면 내원환자 본인확인 조항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본격 시행된다.
보건복지부도 법 시행을 앞두고 환자의 본인여부 및 그 자격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그 자격을 확인하기 곤란한 경우로서 정당한 사유 등을 정하는 하위법령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외래 진료시 환자 자격 확인이 의무화되지 않아 자격도용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건강보험 자격확인 본인확인에 따른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QR코드 등 확인방법을 다양하게 마련하고, 미성년자와 응급상황 등 본인확인 예외 사유도 함께 검토 중이다"라고 전했다.
환자 반발 우려, 의료기관 행정부담 가중…의료계 "행정편의주의 법에 분통"
구체적인 본인 여부 확인 방법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건강보험증이나 신분증명서 등으로 환자 확인 절차를 수행하게 된 일선 의료현장은 이미 반발심이 커지고 있다.
대한의원협회 유인상 회장은 "의료기관이야 법이 시행됐으니 따라야 하겠지만 환자들의 반발이 대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은 한 병원에 10년 이상 이용한 경우가 많은데 이제 와서 매번 신분증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며, 잘 따라줄지도 의문이다"라고 우려했다.
유 회장은 "이 법이 요양급여 부정수급을 막겠다는 의도라고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우리나라 국민은 건강보험 가입률 100%라고 봐도 되는데, 부정하게 사용하는 케이스는 해외에서 온 노동자 등 극히 일부일 것이다. 물론 일부 환자 중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악용해 의도적으로 수면제, 향정약 등을 처방해 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속이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병원에서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러한 일부 부정 사용을 적발하기 위해 의료기관이 부담해야 하는 행정부담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해당 환자가 타인의 신분을 이용해 의약품을 처방받은 사실이 드러나면 정부는 의료기관이 정확하게 환자 본인 확인을 하지 않은 책임을 물을 것이고, 공단은 병원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도 있다"고까지 내다봤다.
대한개원의협의회도 해당 법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개협 김동석 회장은 "정부가 QR코드 등 간편화할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것은 젊은 사람이나 가능하다. 나이드신 분들은 코로나19때도 QR코드 등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크지 않았나"라며 "신분증을 들고 다니는데 익숙하지 않은 환자들이 깜빡하고 본인 확인을 할 수 있는 수단을 두고 오면 해당 환자에 대해 진료를 거부해야 하는데 환자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실현이 불가능한 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건강보험을 도용한 사람을 잡고 처벌하는 일을 왜 의료기관에 떠넘기는지도 알 수 없다"며 "악의를 갖고 속이려는 사람을 의료기관이 어떻게 적발할 수 있겠냐. 이제부터 접수처 직원들은 환자가 제출한 신분증 사진을 보고 본인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환자들에게 일일이 모자를 벗어달라, 안경을 벗어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것이냐. 병원 직원들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 회장은 "의료기관이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지는 못할 망정 규제만 쌓여가는 데 대해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며 "의료현장을 전혀 모른 채 행정편의주의로 만든 법들이 쏟아지고 있어 정말로 답답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의협도 복지부의 후속 조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의협 김이연 홍보이사는 "법의 의도는 부정수급 등을 막는 것인데 의료기관이 사법기관도 아니고 신분증만으로 본인 여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어 해당 법은 실효성이 전혀 없다"며 "지문 등을 이용해 의료기관이 정확하게 본인 확인을 할 수 있는 기술이 도입되면 가능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개인정보보호법과 결부돼 있어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수의 대리처방, 범죄를 막기 위해 그 많은 비용을 들여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대해 환자들도 과연 동의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정부는 원활한 제도 시행을 위해 정부는 건강보험증 대여, 도용 등 부정수급 방지를 위한 계도나 캠페인을 시행하고 신분증 소지 등의 진료문화가 정착시키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홍보이사는 "현실적으로 의료행위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법이 시행돼야지 의료기관 규제가 돼서는 안되며 환자의 수용성을 고려해 법이 시행돼야 한다는 것이 의협의 입장이다"라며 "현장에서는 본인 확인 과정에서 발생할 분쟁과 진료 지연, 환자와 병원 간 관계 훼손 등이 가장 큰 걱정이다"라며 복지부 하위법령 마련 과정에서 의료계의 우려사항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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