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07.21 06:56최종 업데이트 25.07.2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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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규정된 프랑스 의과대학 임상실습 학생의 진료권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의대 명예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프랑스의 의학 교육은 1, 2, 3주기(cycle)로 구분한다. 1주기 교육은 의과대학 1~3학년 과정으로 기초 과학과 임상 진입 이전의 전임상(pre-clinical) 교육을 의미한다. 2주기 교육은 4~6학년 과정으로 ‘Externat’이라고 명명된다. 통상 1주기를 마치면 학사 자격을, 그리고 2주기를 마치면 석사 자격을 수여한다. 이후 4년의 일반의(가정의) 과정이나 전문의 과정을 마치면 박사학위를 준다. 임상과 연구의 학위와 전문의 자격을 동시에 부여한다. 

제 2주기 실습 학생인 Externat의 임상 진료 범위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프랑스의 공중보건법 – L.4131-2조와 보건고등교육부의 법령 및 회람에는 Externat의 직무 범위를 기술하고 있다. Externat는 아직 정식 의사 면허를 취득한 것이 아니어서 이들의 진료 권리는 자격을 갖춘 의사의 감독과 책임 하에서만 수행할 수 있다.

Externat에게 허용된 의료 활동의 권리는 진찰(병력 청취, 신체 검사) 수행, 환자 진료 참여, 일일 경과 기록 작성, 의료 기록 업데이트(감독 하에 수행), 의료 시술 보조, 채혈, 정맥관 삽입, 심전도 측정, 간단한 상처 드레싱, 감독 하에 약물 투여(제한 약물 제외), 수술 참관자 또는 보조자(주치의는 제외)로 수술에 참여, 그리고 당직 근무 참여(항상 감독 하에 수행)로 명료하게 기술돼 있다. 약물 처방, 진단 또는 치료 전략 결정, 감독 없이 침습적이거나 고위험 시술 수행은 단독으로 수행할 수 없고 반드시 감독하에서 할 수 있다. 

임상실습 학생인 Externat는 의과대학 4, 5, 6학년 학생인 동시에 병원의 정식 피고용인의 2중 자격을 인정받는다. 병원과 정식 근로 계약(외부 계약)을 체결하고 적으나마 급여와 수당을 받는다. 의과대학 4학년이면 월 42만 원, 5학년이면 월 52만 원, 그리고 최종 학년인 6학년은 62만 원 정도인데 여기에 당직 근무마다 6만 4천 원의 당직비를 추가로 받는다. 일반 근무 시간은 주당 매일 반나절 기준이다. 임상 순환 근무마다 최소 반나절 10번 정도의 근무가 부과된다. 추가 근무 시간은 강의나 학습에 할애될 수 있다.

프랑스 의학 교육의 강점은 사회 부담 공적 특성 반영

임상실습을 위한 3년간의 기간 중 Externat는 프랑스 공중보건법의 규정에 의해 방학이 아닌 휴가는 일반 근로자의 규정이 적용된다. 연간 유급 휴가 30일(5주)이 보장되며 대부분 한 달 정도 여름철에 사용하고 나머지 1주일은 다른 기간에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휴가는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진료나 시험 등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함이다.

프랑스 의학 교육 시스템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부담 원칙의 공적 특성에 있다. 의과대학 4, 5, 6학년 학생과 졸업 후 교육의 전공의는 모두 학생과 근로자의 이중 신분을 갖고 있으며 학생은 소액의 형식적인 등록금을 납부한다. 등록금이라고 해봐야 학부 과정은 연 170유로, 임상실습인 석사과정은 연 243유로, 그리고 전문의와 박사과정은 연간 380유로에 지나지 않는다. 국, 공립 구별 없이 모든 단계에서 공적 자금이 아닌 학생 본인 부담액인 우리나라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 의학 교육은 국가 표준화, 조기 및 다양한 임상 경험, 경쟁력 있는 성과 기반 진급, 임상과 연구의 통합, 합리적인 교육 비용, 탄탄한 윤리 교육, 그리고 평생 학습에 방점을 둔다. 이러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고도의 기술력과 과학적 근거, 그리고 사회적 의식을 갖춘 의사들을 배출하는데, 이는 탄탄한 국가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핵심 요소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학생과 의사 간의 신분 격차가 너무 급격하고 수직적이다. 임상 실습생에서 인턴으로 이행하는 과정도 너무나 거칠어 부드러운 연착륙이 불가능하다. 학생과 의사의 신분 변화에 따른 근무 여건과 직무 범위가 너무나 다른 것이다. 우리나라 의과대학에서 임상실습은 대개 본과 3, 4학년인 최종 2개 학년이다.

그러나 환자나 국민 대부분은 학생에 의한 진료 참여 경험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대학병원에서 전공의에 의한 진료도 냉소적, 혹은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외국에서는 능동적인 환자단체가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자신의 신체 접촉을 허락해 채혈 등 기초적 임상 교육에 자원 봉사자로 참가한다. 매우 예민한 산부인과 진찰도 여성운동 단체에서 자원봉사 조직을 통해 의과대학생에게 산부인과 진찰 실습과 교육적 조언을 제공하여 의과대학 교육에도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학 교육 개인 부담 후 국가 차원 공공성 강화로 내몰려 

우리나라가 의과대학에서 최종 2년간 임상실습을 했다고 해도 든든한 법적 보장이나 부정적인 사회적 통념이 진정한 경험학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의사 실기시험 덕에 최종 한 학기는 시험 준비나 시험 혹은 임상 참여가 아닌 관람으로 낭비되고 있다. 임상실습 경험을 비록 액수는 적으나 급여를 받으며 하는 프랑스와 자기 돈을 내고 하는 우리나라는 극명히 대비된다. 

현 정부는 줄곧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주장해 오고 있다. 공공성의 시작은 프랑스의 사례에서 잘 보여준다. 실제로 의과대학 학비와 임상에서 교육비 그리고 학생 실습 수준의 근무도 공식화하여 공적 자금에 의한 근로 보상을 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의과대학생과 전공의 교육 모두 피교육자가 교육비를 자가 부담한다. 결국 역량 있는 전문의 배출은 공공성 보다는 의료의 생산 주체로 양성되고 있다. 모든 비영리 의료기관이 영리 기관의 작동 원리를 이용하여 전공의 교육도 병원과 전공의의 부담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 공공성의 의미만 강조할 뿐 학생들에게 실제로 체화된 공공성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다. 전문의 취득 이후부터 실제 의료 현장에서 각종 규제로 공공성을 경험하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의 의료 이데올로기의 표류는 전문가집단과 행정 권력의 지루한 투쟁만 만들어 내고 있다. ‘의학 교육의 사적 투자로 의료의 공공성 강화!’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고, 국민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학생들과 전공의들의 가장 큰 불만이기도 하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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