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대한의사협회가 대정부 투쟁 방법으로 총파업에 앞서 선불제 투쟁(건강보험 청구대행 중단)을 추진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6월 중 온라인 전국회원 토론회에서 선불제 투쟁 방법을 집중적으로 논의해보겠다고 밝혔다.
선불제 투쟁이란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았을 때 본인부담금과 공단부담금을 모두 환자에게 청구한 다음, 환자가 직접 공단부담금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하도록 하는 방법을 말한다. 의료기관이 환자의 건강보험 청구를 대행하는 불편함을 알리고, 이에 따른 심사와 삭감을 직접 경험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의협은 국민들의 반발이나 충돌을 피하는 방향으로 선불제 투쟁의 구체적인 시행 방법을 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의협은 프랑스에서 시행되는 선불제를 참고해 이 같은 방안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해 환자에게 모든 비용을 청구한 다음 환자가 나머지의 70%를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의원급 의료기관 진료비에 한해 환자 선불제로 운영
6일 프랑스 건강보험 설명자료를 확인한 결과, 프랑스는 전국민 건강보험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서 환자 부담금의 70%를 국민건강보험공단(CNAMTS)이 지원한다. 만성질환이나 암, 일부 중증 질환은 전액 건보공단에서 지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연구위원의 2011년 프랑스 출장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선불제를 시행하는 곳은 의원급 의료기관이다. 선불제 항목은 의원의 진료비와 약제·의료기기 처방료 등이다.
보고서는 “프랑스 병원은 포괄수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은 입원 치료를 시행한 다음 환자에게 본인부담금만 청구한다. 나머지는 포괄수가제에 따라 건보공단에 청구한다”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의원은 행위별 수가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행위가격목록에 따라 각 의료행위당 수가를 매긴다”라며 “환자는 의원에 모든 진료비를 선(先)지불하고, 환자가 후불로 건보공단으로부터 상환을 받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했다.
의원급 의료기관은 약제와 의료기기 처방에 대해서도 선불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보고서는 “약제는 건강보험 목록에 허용된 품목(포지티브 목록)에 한해 환자가 의원에 선지불하고 후불로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상환을 받는다. 의료기기, 보장구 등의 기타 치료재료도 목록에 따라 후불로 상환된다”고 했다.
2016년 기준 프랑스 환자가 의원급 의료기관을 한 번 방문했을 때 금액은 25유로(약3만원) 가량이며 건강보험에서 16.50유로(약2만원)를 지원하고 환자가 8.50유로(약1만원)를 지불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편, 프랑스 건강보험 설명자료를 보면 프랑스 의원은 2016년 86% 이상 주치의제가 정착돼있다. 이를 통해 환자가 자신의 주치의를 지정한 다음 해당 의원 한 곳에서 꾸준히 진료를 받고, 주치의를 등록한 환자와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환자가 여러 의원에서 진료를 받거나 의료전달체계를 무시하고 무작정 병원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또한 민간 의료보험에서 외래 진료비의 본인부담금을 보장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프랑스, 관리체계 구멍·환자 불편으로 선불제 중단 계획…선불제 투쟁 혼란 불가피
프랑스 정부는 현지 언론 등에서 "환자가 우선 진료비를 낸 다음 후불로 청구비를 받게 하면 도덕적 해이나 진료를 남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건강보험 재정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선불제의 긍정적인 효과를 해석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선불제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판단한 상태다. 문제 제기된 내용을 보면 의원과 환자가 결합해 진료비를 과다 청구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으며, 정부가 의원에 대한 건강보험 관리체계를 마련하기 어렵다고 했다. 무엇보다 청구 과정에서 환자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문제가 가장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환자에게 본인부담금만 내도록 하고 건보공단 등 제3기관이 의원급 의료기관에 직접 공단부담금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도 선불제 투쟁을 통해 환자가 본인부담금 외에 공단부담금을 전부 내도록 한다면 환자들의 반발이나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의협이 선불제 투쟁 계획을 밝히자마자 '환자를 볼모로 하는 투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의협 정성균 대변인은 5일 기자 브리핑에서 "원래 선불제 투쟁은 현실적으로는 고민할 부분이 있다. 국민들이 얼마나 동의를 하고 동참을 해줄지에 대해 많은 충돌이 있을 수 있다”라고 했다. 정 대변인은 "의료계 내부적으로 충분한 의견 조율을 하고 국민들에게 최대한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의견 조율이 어떻게 될지는 논의를 통해 이뤄진다”고 말했다.
정 대변인은 "선불제 투쟁은 선불제로의 제도 개선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민들에게 '심평의학'으로 불리는 잘못된 건강보험 심사와 삭감 제도를 알리는 방안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의사들이 의학적으로 최선의 진료를 하지 못하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건강보험법상 급여 진료를 한 다음 환자에게 본인부담금 이외의 전액 진료비를 받으면 임의 비급여가 된다. 또한 건강보험 청구는 개인이 아닌 의료기관만 가능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의협이 어떤 방법으로 선불제 투쟁방법을 마련할지 관건으로 보인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선불제 투쟁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의사들은 '선불제 투쟁 자체가 법적으로 맞지 않다.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선불제 투쟁은 환자에게 전액 선불로 받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 만에 하나 국민 반발을 의식해 일부 본인부담금만 받는 것은 투쟁이 아니라 청구대행 포기에 불과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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