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9.06 07:14최종 업데이트 23.09.0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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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수술 아닌 보존적 치료 결정한 외과의사에 '금고형' 확정…"대한민국 의료 파행 불가피"

수술 지연으로 환자 좋지 않은 결과 초래 판결...의료계 "최선 다한 의사에게 형사책임, 필수의료 기피 심화 우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의학적 판단에 따라 수술 대신 보존적 치료를 결정한 의사가 해당 환자의 악결과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수술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의학적 전문지식을 갖춘 의사의 고유의 권한이다. 또한 수술 시기를 늦춘다고 의사에게 어떤한 이익이 있거나 해당 의사가 환자에게 피해를 입히려는 고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대법원은 환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원인이 이를 예상 못한 의사에게 있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고등법원이 8월 대동맥박리를 경증으로 오진한 전공의에 실형을 선고한 것에 이어 이번엔 대법원이 악결과만을 문제삼아 의사에 실형을 선고했다. 이에 의료계는 사법부의 의료과실 형벌화 경향이 고착화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6개월 전 개복수술 이력 있고, 환자도 보존적 치료 원했지만…즉각 수술 안한 의사에 '책임'

6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이 2017년 11월 소장폐색환자를 담당한 외과의사 A씨에게 수술 지연에 따른 주의의무 위반으로 환자에게 장천공, 복막염, 패혈증, 소장의 괴사 등이 발생했다며 원심의 금고 6개월과 집행유예 2년형을 확정 판결했다.

A씨는 당시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 B씨가 장폐색임을 의심했으나, 환자의 통증이 호전되고 있고 6개월 전 난소 종양으로 인해 개복수술을 받은 과거력이 있음을 감안해 우선 보존적 치료가 적절하다는 의학적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보존적 치료를 하던 중 B씨가 혈변증상을 보이는 등 장괴사가 급격히 진행돼 응급수술로 소장을 절제했고, 환자는 괴사된 소장에 발생한 천공으로 인해 패혈증과 복막염 등이 발생해 2차 수술을 하게 됐다.

원심인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A씨의 보존적 치료에 대한 판단이 과실이라고 봤다. B씨의 복통 양상, 발열, 소장 괴사로 인한 별변 등의 증상으로 보아 즉각적 수술이 적절한 조치였다고 보임에도 A씨가 이를 시행하지 않아 B씨에게 악결과가 나타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대해 A씨는 ▲피해자가 수술보다 보존적 치료를 원했고 ▲통증의 정도도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으며 ▲혈액검사에 따른 백혈구 구치, 아밀라아제 수치, CRP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거나 증가하는 소견을 보이지 않아 수술을 결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원심 재판부는 "당시 해당 환자의 상태를 감안하면 즉시 수술을 실시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치료 방법이었으며 주의의무 위반으로 수술이 지연됐다"며 A씨에게 금고형을 선고했고,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의사의 '의학적 판단' 사법적으로 부정…최선 다한 의사, 미래 예측 못해 '범죄자'로

의료계는 이번 대법원 확정 판결이 환자의 치료방법 선택에 대한 전문의의 의학적 판단을 사법적으로 부정한 것이라며 이는 곧 필수의료 붕괴를 의미한다고 한탄했다.

의사들은 이제 본인의 의학적 판단으로 내린 결정이 범죄가 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하기에 감옥에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방어 진료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해당 사건은 복부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그 판단은 온전히 의사에게 있지만 사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복부 수술은 신중해야 한다. 복강 내의 장기는 개복수술을 하면 서로 유착할 수 있으며 수술 횟수가 거듭할수록 그 위험도는 비례해서 증가한다. 그러므로 장폐색은 최대한 보존적 치료를 하면서 지켜보다가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수술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대개협은 "그 판단은 환자를 지켜보는 현장의 의사가 가장 정확할 수밖에 없으며 의료감정을 하는 의사라 할지라도 그 상황을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유착 해결을 위해 개복수술을 하면 그로 인해서 또 다른 장폐색의 위험이 증가가 되어 외과의 영원한 난제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법부는 이러한 의료인의 의학적 판단을 부정한 것이다.

대한외과의사회는 "외과의사는 칼을 들고 타인의 신체에 생리적 기능의 장애를 초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었으나 그것을 업무로 인한 정당행위로 그 위법성을 조각시켜 그것을 범죄로 만들어 처벌하지는 않았다. 또한 의사는 처음부터 일부 신체기능의 손상을 감수하더라도 환자의 전체신체의 건강을 회복시키고 유지시키려는 목적을 가진것으로 건강을 훼손하려는 고의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범죄로는 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외과의사회는 "재판부가 의료행위의 악결과만 가지고 해당 외과의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면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훼손하려는 고의도 없고 인체의 불완전성으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의사들은 이제 방어진료를 할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했다.

특히 외과의사회는 모든 수술에 대해 같은 비용을 받아야 하는 당연지정제 체계 안에서 외과의사들은 환자를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서 따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외과의사회는 "(해당 의사는) 수술 없이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했던 것이고 환자도 그것을 함께 원했고, 그러한 희망을 품었다는 이유로 외과의는 범죄자가 됐다"며 "형벌은 그 처벌로 인해 범죄가 재발되지 않도록 교화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그 형벌로 인해 이제 외과의사들은 수술을 하는 대신 감옥에 가지않고 의사면허를 지키는 것이 목적이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수술실서 소신진료 할 수 있는 의사 있을까…필수의료 붕괴 가속화, 그 피해는 '환자가'

사법부의 이러한 판단의 여파는 의료계 필수의료 붕괴로 연결될 것으로 우려된다.

대한의사협회는 "이와 같이 환자의 상태 악화에 대해 다시 개별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면, 우리나라 모든 의사들은 의식적으로 보다 강화된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며 "미래 한국의 의료현장에서는 매사 법적 단죄를 상정해 환자에게 최선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치료 방법을 선택하고 권유하는 소신진료를 할 의사들을 만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의료계는 현재도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의 전공의 정원모집이 지속적으로 실패해 필수의료 분야 수술이나 진료 자체의 붕괴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경시하고 악결과에 대한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 판결이 반복되는 것을 비판했다.

외과의사회는 "나보다 경험많고 수술 잘 하던 존경하는 선배 외과의사가 내가 똑같이 하고 있는 수술의 결과로 인해 실형을 선고받고 범죄자가 되고 나의 생명과 같은 의사면허를 박탈당하며 처참하게 병원에서 쫒겨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다른 외과의사들은 같은 수술을 주저함없이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고 꼬집었다.

외과의사회는 "외과의사들은 수술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이제 살 수 있는 희망이 있었던 환자들의 가능성에 눈감게 만들어 놓고 그나마 몇 없는 수술하는 외과의사들 마저 범죄자로 만들어 강제로 수술방 밖으로 끄집어내어 형사처벌의 감옥에 넣어 버리고 있다. 그만큼 대한민국 의료계의 파행은 불가피하다"며 "앞으로 발생할 모든 파탄의 책임은 오롯이 법원에 있음을 엄중히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분노했다.

대개협 역시 "대한민국 여기저기서 필수 의료 붕괴를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신이 되지 못한 의사들을 노리는 브로커가 활개를 치고, 그에 부응하는 법의 판단과 이에 박수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완벽할 수 없는 의술은 범죄 취급을 받고 있다. 이번 대법원의 판단은 파멸로 치닫는 대한민국 의료의 한 단면일 뿐이다"라며 "완벽한 의사도 없고 완벽한 의술도 없다. 의사의 판단 기준이 오로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이 되도록 사회적 동의와 법적인 지지가 없다면 그에 따른 결과는 오로지 환자에게 귀결된다"고 우려했다.

한편, 사법부의 의료과실 형벌화 경향이 필수의료 위기를 가속화시킨다는 지적 속에 의료계는 의료사고 발생시 의사의 형사책임을 면책하는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으나 입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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