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 내 10억 가량의 초유의 횡령 사건이 발생해 의료계 내 충격을 주고 있다.
민간기업과 달리 의협 회원들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공제조합의 특성상 당장 의협 공제사업에 대한 의료계 내 불신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조합은 신뢰 회복을 위해 전직원 전수조사와 업무 프로세스 개선을 약속하면서 공제금 지급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비정상 거래 현황 60여건, 24일 중 민형사 고발 진행
의협 의료배상공제조합은 23일 긴급 서신을 통해 "현재 조합 내 공제금과 관련해 직원의 업무상 배임과 횡령 등의 의심 사건이 있어 조사 중에 있다"며 "명확한 사실관계를 면밀히 따져 일부 확인된 사실을 근거로 당사자에 대한 채권 및 부동산 가압류 등 법적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경찰은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며 의협 측도 사실 관계를 파악 중인 상태다. 의협은 오늘(24일) 중으로 민사·형사 고발을 진행할 예정이며 이번 기회에 전직원 전수조사까지 염두해두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배상공제조합 이정근 이사장은 서신을 통해 "지난 40여 년간 조합원의 성원과 신뢰에 힘입어 적지 않은 성과를 내왔다"며 "이번 불미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깊은 실망과 우려를 끼친 것에 대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밝혀진 비정상 거래 현황만 60여건에 이르며, 피해 규모는 약 10억 정도다.
의료배상공제조합 박종혁 대변인은 "지난주 사건이 불어지면서 바로 변호사 선임이 이뤄졌고 해당 직원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이 이뤄지고 있다. 공신력 있는 업체를 통해 엄격한 잣대를 통해 전체 직원에 대한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라며 "공제조합의 특성상 신뢰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우선 긴급 서신을 통해 사건 자체를 알린 것이다. 자세한 부분은 경찰 조사가 진행돼 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공제조합 이미지 추락 수순, 깜깜이 현행 법률상 문제도
이번 횡령 사건으로 인해 의료배상공제조합 측의 신뢰성엔 금이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다시 업무가 정상 괘도에 오르기 까진 수일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손해배상책임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책임지는 보험성 상품 관련 조직인 만큼 안전성과 신뢰가 생명이라는 점에서 내부 배임과 횡령이 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합 측의 자산운용 자체가 폐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위험이 많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어왔다.
현행법에선 보건의료인단체 및 보건의료기관단체가 의료사고에 대한 배상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배상공제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면서 공제조합의 설립·사업과 조합원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대부분의 사항은 조합 정관에서 알아서 규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은 2018년 8월 의료배상공제조합 투명성 강화를 위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법률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현행 법률의 미비로 인해 공제조합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늘어나고 폐쇄적인 자산운용에 따른 공제조합의 부실가능성 상승하고 있다는 게 법 개정의 취지였다. 당시 최 의원은 "공제조합의 운영에 대한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어 공제조합의 운영에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공제조합이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 등의 주요 경영정보, 외부전문가에 의한 회계감사결과 등을 공시하도록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 또는 중요한 사항을 누락하거나 거짓으로 공시한 경우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정 또는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개정안은 2020년 5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폐기됐다. 관련해 최인호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법안 개정을 통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시정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이유에서 추가 논의 없이 법안이 계류됐고 결국 임기만료로 폐기됐다"고 설명했다.
가입률 성장 고사하고 30% 유지도 '적신호'…"업무 프로세스 개혁 약속"
의료배상공제조합은 의료사고분쟁의 합리적인 해결과 안정적인 의료환경 조성을 위해 1981년 의협공제회라는 명칭으로 발족됐다. 출범 초창기 2418명이 가입해 가입률이 36.5%에 달했지만 현재는 전체 의원급 종사자 기준 의료배상공제 가입률은 31.4%에 그친다.
조합 측은 올해 해당 가입률을 50%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로 민간보험에 비해 공제료를 저렴하게 설정하고 가입 조합원이 업무상상해로 사망한 경우 3억원이 보상되는 단체상해 사망보험을 무료로 가입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등 부단한 노력을 보여왔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가입률 성장 가능성도 미지수가 됐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배상공제조합이 민간보험사와 달리 영리를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다 보니 예전부터 방만한 운영이 이뤄진다는 우려가 많았다"며 "횡령에 대한 법적 절차가 이뤄지는 것과 별개로 이번 일로 조합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합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믿음을 줄 수 있도록 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내부 인사 개편 등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합은 신뢰성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내부 직원에 대한 법률상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면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정근 이사장은 "조합은 관련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결과에 상응하는 신속하고 엄격한 조치를 통해 조합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더욱 믿을 수 있는 조합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현재 의료분쟁에 대한 처리와 공제금 지급은 차질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조만한 사건 진행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박종혁 대변인은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적으로 잘못된 부분을 숨김없이 명백히 밝히는 것이다. 이후 회수할 부분은 법적으로 회수하고 신뢰 회복을 위해 조합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사건 경과를 공유할 예정"이라며 "공제조합 운영 전반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며 큰 쇄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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