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문제 놓고 의료계∙법조계∙환자단체 의견 갈려…배상 관련해선 정부 책임 강화 목소리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사법 리스크를 두고 의료계∙환자단체∙법조계가 머리를 맞댔다.
의료계는 시급한 사법 리스크 해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 반면, 법조계와 환자단체에선 의료계에 대한 특혜로 볼 수 있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내놨다.
19일 서울의대 융합관에서는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 주최 의료분쟁조정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미 응급의료 등 예외 적용…의료사고특례법, 전세계에 전례 없어"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는 필수의료 기피의 원인이 사법 리스크라는 전제 자체에 의문을 표했다. 그는 “더 크게 보는 부분은 의료 영리화다. 미용∙성형하고, 과잉진료 하고 필요 없는 걸 하면 밖에서 더 쉽게 살 수 있기 때문에 대학에서 힘든 일(필수의료)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의료사고특례와 관련해선 “과실치사상에 대해 의료인에 대해서만 면책을 요구하면 특혜를 준다는 논란을 이겨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미 응급의료 관련 법률에도 사상의 결과 발생 시 중과실이 없다면 임의적으로 형 감면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조인 시각에서 보면 왜 의사에게만 이럴까 싶은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환자단체 측에선 환자들도 의사들의 형사처벌을 원하는 건 아니라면서도 전면적인 형사처벌 면제에 대해선 시기상조란 입장을 보였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응급은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의료사고특례법은 미용∙성형을 제외한 모든 의료사고에 대해 형사 고소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전 세계에 없는 법”이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어 “대부분의 환자들이 원하는 건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이 설명하고, 명백한 과실일 경우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그리고 적절하고 신속한 보상, 재발 방지책 마련”이라며 “이 정도만 해도 대부분의 환자와 가족들이 수용한다. 이걸 먼저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형사처벌 면제를 논의하자”고 덧붙였다.
"사법 리스크 해소 안 하면 의사들 사라져…사직 전공의도 복귀 요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의사 출신인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은 필수의료 기피 원인이 사법 리스크가 아니라는 박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사법 리스크 때문에 내 동료들이 모두 떠났고 나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 의원은 응급의료종사자의 의료행위에 대해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준비 중이다.
이 의원은 “전깃줄에 새 5마리가 앉아 있는데 포수가 총을 쏴서 한 마리가 떨어지면 몇 마리가 남겠나. 한 마리도 안 남는다”며 “의사도 마찬가지다. 10명이 기소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1명이 기소당하면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기소당한 의사가 내가 봤을 때도 정말 잘못했다면 불안해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나였어도 그렇게 했을 일반적∙정상적 의료행위였고, 그 결과가 내가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피한 정도의 일이라 의료계가 분노하고 이탈하는 거다. 그럼에도 정부, 사법부가 끝까지 잘못이 없다고 하면 의료계는 솔직히 말해서 힘이 없다. 사라질 뿐”이라고 우려했다.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곽재건 교수도 최근 의정갈등 속에 사직한 흉부외과 전공의가 사법 리스크 때문에 앞으로도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온 사실을 전했다.
곽 교수는 “(사직 전공의가) 긴박한 상황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려고 흉부외과에 들어왔는데 너무 무서워서 못 하겠다고 하더라”며 “나도 경찰서를 몇 번 들락거린 적도 있고 환자에게 어이없이 뒤통수 맞은 적도 많다”고 했다.
위험도 수가 활용 별도 배상기구 운영 고려해야
배상 부담과 관련해선, 이미 수가에 포함된 배상 용도의 위험도 수가를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위험도 수가 비율은 1차 상대가치점수 개편 당시 1.8%, 2차 개편에서 1.2%로 수술(4%)이나 분만(11.5%)의 경우 더 높다.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 윤구현 중앙위원은 “서울대병원의 2022년 매출이 1조2000억원 정도인데 배상액으로 쓴 비용은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연 평균 12억 정도로 0.1% 정도”라며 “1.2%라는 배상액이 부족하다고 하려면 1.2%보다 더 쓰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10분의 1도 안 되게 쓰면서 위험도 수가가 부족하다고 하면 누구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1년에 12억 정도를 배상하는 서울대병원에 위험도 수가로 주는 150억~170억을 빼서 재원으로 내라고 하면 병원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위험도 수가에 주는 돈을 재원으로 해 배상 책임을 맡는 제3의 기관을 운영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배상 책임보험 강제 가입, 의협의 의료배상공제조합 등이 가지는 한계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안덕선 원장은 “의사들이 (보험료) 부담하는 것에 대한 전제 조건은 공정한 보상이다. 줄 만큼 주고 내라고 해야 하는 건데 지금은 원가 이하의 수가를 주고 있다”며 “분만비의 경우 일본에 비해 절반으로 주면서 그중에서 일부를 빼가겠다는 건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정부 책임보험 강제 가입∙의협 배상공제조합 한계 '뚜렷'
이주영 의원은 “의사별, 병원별로 상황이 달라 자동차보험 같은 식으로는 접근이 어렵다. 공제조합을 운영하려면 필요를 느끼는 균일한 집단이 모여야 하는데, 정부 주도에 의해 의사라는 직업만 동일한 사람들을 넣어서 돈을 만들어내라고 하니 쉽게 동의가 어려운 것”이라며 “의료행위에 대한 가격 결정이 정부 주도 단일 체계로 이뤄진다면 그에 대한 책임도 정부가 져야 한다”고 했다.
서울대병원 조강희 전 전공의는 “배상공제조합의 경우 중증응급환자를보지 않는 개별의원 기준으로는 보험료가 쌀 수 있지만 외과의사 기준으론 보험료가 연 1200만원이다. 그런데 배상 한도는 5억원”이라며 “그럼 17억 배상 판결이 나오면 12억은 본인이 변제해야 한다. 평소엔 연 1200만원이란 비싼 보험료를 내는데 정작 사고가 나면 배상액으로 보장이 안 되고 파산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위험도 높은 필수의료 의사에게 보험료를 더 많이 받는 게 이해는 된다. 하지만 젊은 의사 입장에서 위험하고 보험료를 많이 내야 하는 필수의료 전공은 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며 “필수의료를 전공한다는 이유만으로 각자 비싼 보험료를 부담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정부의 지원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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