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
그들의 수익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의사들의 처방량이다.
특정한 질환과 본인 회사 약물을 연결해 의사에게 선택하게 하는 게 영업사원이 하는 일이다.
제약회사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작은 지방병원까지 그들의 손이 뻗치기를 원하지만 그 정도 규모를 제대로 갖추기란 쉽지 않다.
이들은 한정된 회사의 인력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타게팅(Targeting)'을 한다. 마케팅의 가장 기본 말이다.
모든 소비자(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의사)가 똑같은 소비력, 소비 잠재력을 가진 것은 아니어서, 이들 모두에게 똑같은 비용을 들여서 마케팅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최근 환자 진료·처방정보를 불법 수집·판매한 혐의로 약학정보원 원장 등 24명이 기소됐다.
이 사건은 제약회사 입장에서 그들의 소비자 선별에 대한 니즈를 파악해야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유출 정보의 최종 도달자가 '제약회사'로 밝혀진 이상 핵심은 '환자 정보'가 아니다.
관련기사 : 환자정보 불법 수집 약정원 등 24명 기소
정보 유출의 핵심은 '의사별 처방 정보'
제약회사는 효율적인 영업을 위해 처방을 많이 하는 의사와 적은 의사를 선별해서 대우한다.
혈압약, 당뇨약 같은 만성질환 약물을 주로 판매하는 제약회사에게 대학병원 의사가 'VIP(흔히 이쪽에서는 'Key Doctor'라고 불리는)'로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업이 필요한 곳과 해도 의미 없는 곳을 정리한 지표는 제약회사가 물불 가릴 거 없이 얻고 싶은 데이터다.
제약 관련 산업에서 20년 넘게 일했다는 한 전문가는 "제약영업사원이 종합병원에 근무배치를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키닥터(Key Doctor)에게 인사하고 다음이 전산실 직원을 찾는 일"이라며 "영업 사원은 그들과 친하길 원하고, 그들에게 접대하는 게 또 중요한 업무였다"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의사 개인별로 처방 정보가 노출되는 것은 불법이지만, 그동안 제약회사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처방 데이터를 얻어왔다고 한다.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전산실 직원을 통해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던 한 의사는 "제약회사의 직원은 자기가 밀고 있는 약품의 의사별 처방량을 알고 있다"고 전하며 "특정 달에 처방량이 적은 의사에게 접근해 그들 나름의 개인화된 영업을 펼치더라"라고 귀띔해줬다.
하지만 최근 병원 내부적으로 정보 유출에 대한 제약이 늘자 다른 방법이 절실했을 것이다.
현재 종합병원에 근무 중인 다른 의사는 "최근에 병원에서 제약회사 직원에게 처방 정보 주는 것을 꺼리자 영업사원은 약국을 통해 관련 정보를 얻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법을 어기면서까지 데이터를 팔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의료 프로그램 회사와 통계 회사가 제약회사의 이런 니즈를 몰랐을 리 없다.
그리고 경쟁사의 약품 정보까지 얹은, 매력적으로 가공된 데이터에 혹하지 않을 제약회사는 없다.
허접한 보안 환경
맘먹고 정보 팔아넘기는 환경에서 원격의료???
의사들은 관련 기사에 분노하고 있다.
SNS에서 관련 기사를 접한 한 의사는 "경악이다. 의사는 환자한테 불리한 것은 보험회사 직원이 챠트 열람 위임장을 가져와도 안 알려주는데, 가공해서 팔아넘기다니...이건 범죄 수준"이라 반응을 보였다.
본인이 사용료까지 지급하던 전자챠트 회사가 실은 뒤에서 정보를 빼내 팔아넘겼다는 사실에 많은 의사는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이번 유출된 정보는 현재까지 제약회사에만 전달됐다고 밝혀졌다.
하지만 우리는 건강한 고객만을 유치해야 수익구조가 좋아지는, 따라서 (이번에 유출된) 환자 병력과 관련한 정보를 가장 필요로 하는 또 다른 회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원격의료가 걱정되는 이유다.
원격의료가 시작되면서 그에 필요한 하드웨어 장비와 애플리케이션이 늘어남에 따라, 데이터 처리와 시스템 유지 명목으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주체와 채널은 그만큼 다양해질 것이다.
반면 국내 회사들의 정보 보안에 관한 인식은 처참한 수준이어서 대중들 사이에선 국내 개인정보는 이미 '공공재'라는 말까지 나온다.
게다가 외국 같았으면 파산을 몇 번 했어도 부족할 개인 정보 유출을 국내에선 솜방망이 처벌에 머무른 사례가 많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