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의사들은 파업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의사들이 많다. 사실이 아니다. 의사들도 보건의료노조처럼 파업할 권리가 있다. 다만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도, 갖춰본 적도 없을 뿐이다.
업무개시명령 때문에 의사들은 파업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역사상 업무개시명령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단 한건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에게 내려지는 업무개시명령은 의료법 제59조에 근거한다. 이 조항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업무개시명령 때문에 의사 파업이 불가능하다면 간호사도 파업을 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보건의료노조 파업 핵심에는 간호사가 있다. 업무개시명령 때문에 파업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2020년과 2024년의 전공의 투쟁 어디에도 ‘파업’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2020년 당시에는 파업이 합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았기에 '단체행동'이라는 표현이 사용됐고, 2024년에는 '개인의 사직'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2020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됐다. 업무개시명령은 의료법 제59조에 근거하여 발동되며, 처벌에는 행정부의 자의적 판단이 아닌 사법부의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처벌'이 아닌 '고발'을 진행했다.
업무개시명령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다. 업무개시명령으로 실제로 처벌받은 사례가 없기 때문에 처벌이 가능한지, 그리고 명령이 유효한지는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판결이라는 '상자를 여는 행위' 이전에는 이 명령이 살아있는 것인지 죽어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2020년의 고발조치도 사태 종료 이후 취하됐고, 업무개시명령의 위헌 여부를 다투는 헌법소원 역시 ‘피해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참고로 대한민국 역사상 업무개시명령으로 처벌 받은 사례는 단 한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업무개시명령은 유효한지 그렇지 않은지 실제 처벌 사례와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유효한 명령인지 알 수 없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인 셈이다.
그렇다면 업무개시명령 폐지 요구는 타당한가? 이 요구는 두 가지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첫째. 요구 대상이 불명확하다.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은 의대정원 2000명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부와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정책이다. 그러나 업무개시명령의 근거가 되는 의료법 제59조를 개정할 권한은 국회의 과반을 점유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 있다.
2020년에도 의정, 의당 협상의 주체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었다. 업무개시명령을 폐지하려면 윤석열 정부가 아닌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상이 필요하지만, 지금의 구도는 그러한 협상과 어긋나 있다.
두번째.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았다.
입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을 설득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명분과 여론이 필요하다. 여야가 앞다퉈 발의한 '의사수급추계위원회'는 2000명 증원이 근거 없이 추진됐다는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전공의 수련시간 주 60시간 제한’도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근무가 과로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업무개시명령은 의사만이 아니라 간호사, 약사, 화물기사에게도 적용된다. 화물기사 파업 당시 침묵하던 의사들이 의정사태가 닥치자 업무개시명령 폐지를 외치는 것은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 이번 사태에서 업무개시명령 폐지가 실현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2020년 전공의 단체행동 이후, 문제 해결을 위해 병원별 전공의 노조 설립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다. 필자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전공의 노조에 대한 인식이 낮았고, 2000명 증원 4달 전부터 의지가 있는 전공의를 전국에서 알아보았음에도 단 한 명밖에 찾지 못했다. 결국 노조도 설립할 수 없었다.
전공의와 의대생의 투쟁은 1년 3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언제 이 사태가 마무리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 사태가 끝난 이후 큰 혼란과 후유증이 뒤따를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한 후유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의사노조와 합법적인 의사파업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오는 5월 10일 토요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대한병원의사협의회가 주최하는 ‘의사노조 정책 심포지엄’이 열린다. 업무개시명령 폐지의 한계를 넘어 많은 의사와 의대생들이 이러한 문제점과 나아가야할 점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해보았으면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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