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정책을 두고 전공의 파업, 의대생들의 국시 거부 등 젊은 의사들도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자 교수들이 '화력 지원'에 나섰다. 필수의료 영역의 인력부족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지, 젊은 의사들을 겁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의사들 사이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면서 상당수 공유된 고신의대 김부경 교수, 서울아산병원 최세훈 교수, 한동대 법학과 송인호 교수 등의 글을 간단히 소개한다.
김부경 교수 "가만히 있는 의사들에 칼 빼든 것은 정부, 의료현장에 돌아가게 해달라"
고신대복음병원 내분비내과 김부경 교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금 당장 전쟁을 멈추고, 의사들을 코로나 진료 현장으로 투입시켜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을 최근 게시했다.
김 교수는 "(고신대복음)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 환자를 진료할 때 단 한번도 업무를 수련의들에게 전가하지 않고 직접 음압병상에 들어가 진료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절대적인 조건은 밖에서 다른 환자들을 책임져 주는 전공의와 인턴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상황에 전임의 이하 모든 수련의들과 내년에 수련의로 배출돼야 할 의과대학생마저 의료현장을 떠나게 만드는 것은 전장에서 싸우는 장수의 수족을 자르는 것과 같은 일이다"고 했다.
김 교수는 "가만히 환자들을 보고 있는 의사들에게 칼을 빼든 것은 정부이지, 전쟁을 먼저 시작한 것은 의사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을 멈출 수 있는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도 정부이지, 의사들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코로나 뿐만 아니라 일반 독감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가을과 겨울은 폐렴과 같은 감염성 질환 뿐만 아니라 심근경색, 뇌졸중과 같은 심혈관 질환 환자들도 증가하는 시기다. 지금 코로나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조짐을 보이는 시기와 이 시기가 일치할 때 이 환자들을 직접적으로 돌보던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에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의료 대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유럽과 뉴욕주에서 코로나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에 공통적으로 부족한 의료 인력을 메우기 위해 의대생들에게 더 일찍 의사 면허를 주고 환자를 돌보게 했다.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고작 20대 어린 청년에 불과한 수련의들에게 말로 설득이 되지 않으니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겁박하는 것은 국가의 방역을 책임지고 있는 수장이 할 수 있는 판단과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의료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 현장에 있던 의료인력마저 거리로 내몬 것은 국가다"면서 의료현장에 의사들이 없으면 그 위험은 결국 코로나의 위험에도 삶의 현장을 떠날 수 없는 국민들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지금 의사들이 반대하는 것은 정부가 필수의료 영역의 인력부족의 원인을 잘못 진단해 의대 정원 확대라는 잘못된 치료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의사가 오진을 하면 환자가 죽는다. 정부가 오진을 하면 5000만 국민이 세금을 더 내고도 여전히 응급 외상을 당했을 때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 상황이 닥쳤을 때 여전히 의사가 부족한 현상을 겪게 된다"라며 "그리고 그것을 몸소 체험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것이 지금 당장 코로나 환자가 폭발하는 상황에서 의료 현장에 있는 의사들을 거리로 내몰 정도로 시급한 문제인가"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이어 그는 언론에 밥그릇 싸움이라는 단면적인 기사 대신 왜 지방 필수 의료영역이라는 제 밥그릇은 아무도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지, 그래서 아무로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 그 밥그릇의 주인을 국민의 세금을 들여 새로 키워내는데 지불해야 할 세금이 어느정도 규모인지, 각 국민이 감당해야 할 의료보험비는 얼마나 증가하는지 추산하고, 10년 후 그렇게 키워낸 의사들이 현장에 나오게 되면 과연 지금보다 필수의료영역의 상황이 좋아질 지 예측해달라고 주문했다. 거리로 나온 의사들이 다시 의료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보도해달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에는 당장 전쟁을 중지하고, 의사들이 의료 현장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공공병원과 공공의사양성의 당위성과 방법론은 차치하고서, 지금은 코로나 절체절명의 위기다. 코로나 환자들은 폭증하고, 코로나 외의 질병은 치료가 연기되고 있으며, 병원에 남아있는 교수들의 심정적 동요가 심상치 않다"면서 "의대정원 확대 문제는 코로나 상황이 완전히 해결된 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더이상 수련의들을 겁박하지 말고, 설득해 의료 현장으로 돌려보내달라"고 강조했다.
최세훈 교수 "학생/전공의/전임의 누구도 이번 파업으로 손해를 보지 않게 할 것"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최세훈 교수도 "적어도 내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는 학생/전공의/전임의 누구도 이번 파업으로 손해를 보지 않게 할 것이다. 그들은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내 팀원들이다"면서 젊은 의사와 예비 의사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최 교수는 "힘도 없는, 곧 바뀐다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 몇 마디에 파업을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진행/완료된 상태다"면서 "그렇게, 애당초 다 정해진 상태에서 의사 파업이 시작됐다. 반면, 우리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미 의사국시를 취소한 상태에서 본과 4학년 유급은 확정됐다. 의대생들이 낼 수 있는 가장 센 카드를 이미 사용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이어 "인턴/전공의도 곧 최강의 카드(사직서)를 사용할 태세다. 이제 휴전을 주장하는 의사는, 의대생 구제의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는, 적전 분열이고 프락치로 여겨질 뿐이다. 이미 다리를 건넜다"고 했다.
이미 진행된 의료정책을 철회하는 것은 이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정치적 부담을 넘어서며, 이 문제의 원인은 명백하게 '할 수 없는 것/해서는 안 되는 것'을 코로나 사태 와중에 밀어붙인 정부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2000년 파업과는 크게 다르다. 당시는 리베이트가 이슈였고 개원의들이 주축이었기 때문에 정부와 여론의 공격에 취약했는데도 4개월 동안이나 파업을 진행했다"면서 "지금은 잘못된 '4대악 의료정책'을 들이대는 정부에 대한 저항이며 주력도 젊은 의사들이다. 젊은 의사들은 세무조사도 두렵지 않고, 밥그릇도 상관 없는 반면에 급증한 의사 수 앞에서 싼 값에 정부 정책대로 휘둘릴 암울한 의사로서의 미래는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지껏 비급여 진료의 숨통이라도 남아있었지만, 의사 수가 늘어나고 한의사까지 몇 시간 보수교육 후 시장에 쏟아져 들어온다면 방법이 있나? 싼 값에 쫓겨다니며 생존을 위한 이전투구를 벌이는 수 밖에 없다. 이 '4대악' 정책으로 인해 바뀔 의료의 미래를 알고서도 이에 반대하지 않는 젊은 의사가 있다면 오히려 이해할 수가 없을 듯 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교수이게 한 것은 학생들이며, 내가 그동안 마음껏 수술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나의 전공의들과 전임의들이다. 같이 정말 즐겁게 많은 환자들을 살렸다. 그들이 옳은 주장을 하며 다른 어떤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 우는 심정으로 진료 현장을 떠나기로 결정했는데 내가 어찌 그들을 돕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최 교수는 "나는 나의 투쟁을 할 것이다. 명백히 잘못한 것은 정부다. 외래에서 만나는 모든 환자들에게, 택시를 탈 때, 가족모임이나 어디서든, 의사의 파업을 설명하고 설득할 것이다. 여론전이다. 어떤 파업이라도 생명보다 소중할 수는 없기 때문에 생명이 위협받는 환자에게는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지만, 그 이상의 진료는 모두 전공의와 전임의들이 돌아온 후로 미룰 것이다"고 강조했다.
송인호 교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단순히 의대 정원 늘린다고 기피과 문제 해결 안돼"
변호사인 한동대 법학과 송인호 교수도 지지를 표했다. 송 교수는 이번 의사 파업 사태에 대해 "의사들의 분노가 임계점을 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해도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설립한다고 해서 기피과 문제(외과의사 부족은 사실 의사수라기 보다는 수술을 할 수 있는 일자리의 부족의 문제), 무의촌 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이미 무의촌에도 보건소가 있고, 의사 수가 OECD 수준보다 낮다고 하지만 의료접근도는 이미 최고 수준이다. 문제의 근원인 의료수가는 OECD의 1/3 수준이니 해결하려면 이것부터 해결해야 할텐데, 이 부분에 대한 정부 대책은 현저히 부족하고 오히려 건강보험 재정 고갈 속도를 더 촉진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교수는 "정부당국의 선의를 조금이라도 믿고 싶지만,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 원인에 대한 고찰, 다양한 해결책에 대한 열린 논의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현실을 지켜보니, 결국 정치적 표심의 이유로 선거 공약적 관점에서 추진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2월 코로나 사태 직후부터 보였던 보건복지부 당국자들의 의료진에 대한 무성의와 일종의 하대 정책, 그리고 지난 수년 간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의료정책의 문제점들이 의사들의 분노 표출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면서 "그런데 만일 정부의 엄포에 따라 의사들이 처벌이 무서워서 억지로 업무를 수행하게 하면 국민들에게 바람직할까? 오히려 조금이라도 남아 있던 사명감마저 사라지게 되고 영혼 없고 열정 없는 의사들만 더 양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송 교수는 "하필이면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의료진의 심신이 피폐해진 지금 이 상황에서 시급하지도 않고 정책적 효과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의 회의적인 정책을 의료인과의 대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 추진해 의사들의 극심한 분노를 초래하는 이런 상황, 정말 국민을 위한 정책 추진인지 정부 당국자에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기득권을 경험해본 40대 이상 의사들은 그래도 앞으로도 사명감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기득권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주 80시간 이상의 비정상적인 업무환경을 감내해온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이번 사태 추이에 따라 정부의 압력에 굴복당했다고 느끼고 피해의식과 좌절감에 빠져, 혹시라도 공공성의 부정적인 측면, 즉 사명감 부족, 무사안일과 책임회피, 방어진료 등의 의식으로 가득차게 되지 않을지, 이로 인해 10년 후의 대한민국의 의료현실이 근본부터 무너지지 않을지 진심으로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송 교수는 "다른 사회이슈도 그렇지만 특히 의료체계에 대한 문제는 결국 우리 삶에 직결되는 일이므로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의사들에게 국민을 위한 사명감과 헌신을 요구하려면 적어도 그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안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주려는 정부 당국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그 시작은 보여주기가 아닌 진정한 열린 태도일 것이다"고 했다.
송 교수는 "파업으로 인한 환자의 피해가 없길 바란다. 의사분들도 분노를 가라앉혀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정부 당국은 무리한 정책 추진을 전면 취소하고 원점에서부터 의료계와 국민 전반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여 의료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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