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뜬금없던(?) 이 한 장의 프리젠테이션은 ‘인문학 열풍’을 만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인문학이 열풍이다.
'인문계'를 선택하지 않고 평생 이과 밥만 먹고 살았던 나 같은 종자들은 '인문학'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학문인지 이해하는 데부터 애를 먹는다.
선배의 권유로 구경(?)하게 된 '의료윤리연구회'엔 월요일(6월 1일)부터 갓 진료를 끝내자마자 달려온 것처럼 보이는 열댓 명의 의사들이 모여있었다.
‘의료인문학 사용법’이란 주제로 강의는 시작되었고, 관련 내용을 어떻게 정리할까 하는 나의 고민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
'의료'란 단어를 일단 떼어내고, '인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알리는 게 글을 쓰는 기자의 우선 목표다.
네이버나 구글에서 '인문학'의 정의를 다시 찾아보기도 하고, 그 영어 어원인 Humanist(유럽)와 Liberal Arts(미국)에 대해서 곱씹어 보기도 한다.
강의를 맡았던 이일학 교수(연세의대)는 '인문학적 역량'을 소개하면서
-자신을 객관화
-체계를 넘나드는 사고
-통합 능력
-소통하고 이해시키는 능력
-타인이 될 수 있는 능력
-절대화에 저항하는 독자적인 인간
에 대해서 언급했다.
나를 직관적으로 이해시킨 것은 '잉여스러운 것'이란 단어다.
이일학 교수에 따르면 '필요 없는 말'이 오히려 관계를 확인시켜 준다고 한다.
우리가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것은 사실 생존에 꼭 필요한 행위는 아니지만, 그런 행위가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자연의 생존법칙'에서 보자면 이것은 사치스러운 행위이고, 결국은 '잉여 행위'가 되는 셈이다.
내가 이해한 인문학의 시작은 바로 여기부터다.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연법칙, 그 이상의 것에 관해 '쓸데없이' 고민하는 것이다.
강의가 끝난 후 '인문학'이란 단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전달할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부터 나는 이미 '인문학'적 행위를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루틴(Routine)'의 삶이 반복되는 의사들, 특히 개원의는 근무 특성상 '인문학적 역량'을 키우기는 좀 힘들지 모르겠다.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오는 순간, 빨리 처방전 끊어 내보내고 다음 환자를 받아야만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구조에서, 평생 '인문학'의 근처에도 못 가봤던 ‘이과적 사고의 소유자’들은 여전히 '인문학'과는 거리가 먼 행위를 하고 있다.
많은 개원의와 봉직의들 바쁜 것은 잘 알지만,
진료 후든지 주말이든지 딱 2시간만 할애해서 한가한 카페에 멍때리고 앉아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며, '인문학적 허세'를 시작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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