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은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으니 검증된 것 아니냐?"
"그래도 화학물질인 양약보다 천연 한약이 몸에 좋지 않겠냐"
"그래서 양약은 뭐가 다른데?"
한약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효과도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종종 이런 반응을 듣게 된다.
먼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양약'이라는 명칭이 흔하게 쓰이고는 있지만 의미 상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한약은 옛날 중국전통의학의 음양오행 원리를 통해 만들어지거나 민간에서 전래된 처방인 반면 ‘양약’은 서양의 전통의학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거나 서양 민간에서 전래된 요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약'은 과학과 임상시험을 통해 개발된 것으로 '현대의약품'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한약과 현대의약품, 이렇게 용어를 정리하면 둘 사이의 차이가 드러난다.
그 차이는 유래한 지역의 차이가 아니라 음양오행 대 과학, 민간의 경험과 믿음 대 임상시험의 구도로 대비된다.
의약품이 승인되려면 과학적인 배경 근거를 갖추고 임상시험을 허가 받아서 3단계의 임상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최소 수백 명에서 천 명 이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해야만 의약품으로 출시될 수 있다.
과학중심의학연구원과 전국의사총연합이 지난 3월 서울시민을 상대로 거리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열 명 중 아홉 명이 한약은 현대의약품과 달리 아무런 검증 없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임상시험을 하지 않고 효과가 있을만한 약들을 환자에게 빨리빨리 적용하면 좋지 않을까?
개발비용이 적게 드니 약값도 싸지지 않을까?
임상시험을 의무화한 이유는 실험실에서의 과학적 근거만 가지고서는 인체에서 정말로 효과를 나타낼지, 동물실험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을지 반드시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4년 Nature Biotechnology에 발표된 분석에 따르면 신약 개발에서 임상시험 단계를 통과하는 비율은 10% 남짓으로, 실험실에서의 데이터와 실제 인체에 적용 사이에는 상당히 큰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한약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현대의약품은 고작 몇 년에 걸친 임상시험만 거쳤지만 한약은 수백년에서 수천년에 걸쳐 사용되어 왔으니 효과와 안전성이 더욱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동의보감에는 중금속인 납을 '성질이 차고 독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수은 또한 여러 처방에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아리스톨로킥산(aristolochic acid)의 위험성이 1990년대 유럽에서의 대규모 피해 발생으로 인해 알려지면서 이 성분을 함유한 쥐방울덩굴류 한약재가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사용이 금지되었는데 그 때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제약회사가 해당 한약재를 이용한 한약제제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현재 널리 사용되는 한약재들 중에서도 간독성이나 신장독성이 밝혀진 것들이 많으며 의사들은 임상에서 한약으로 인한 중독 환자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는 사실도 한약이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옛날부터 오랫동안 사용해왔다고 해서 우리가 안전성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효과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동의보감에는 사람과 동물의 똥의 효능을 수십 가지 처방에서 언급하고 있으며 머리의 때, 오랫동안 입은 속옷, 쇠도끼를 달인 물 등 상식적으로만 봐도 효과가 없음이 명백한 처방들이 수두룩하다.
닭똥은 빠진 이가 자라게 할 수 있고 비둘기 똥은 탈모를 치료한다고 하는데 믿을 수 있겠는가?
옛날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리고, 조상의 묏자리를 잘못 쓰면 자손들에게 나쁜 일이 생긴다고 믿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천연두 등 중증 질환에 대해서는 한의사가 아닌 무당에 의지했다.
이래도 옛날 사람들의 오랜 경험과 믿음이 효과를 입증하는 근거라고 여길 수 있겠는가?
서양에서는 네 가지 체액의 균형이 건강을 결정한다는 사체액설을 근거로 환자의 피를 뽑는 치료법인 사혈요법(bloodletting)이 2천년 동안이나 널리 사용되어 왔다.
서양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2천년 동안이나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1800년대에 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치료를 한 그룹과 하지 않은 그룹을 비교해 효과를 판별하는 임상시험이 개발되어 사혈요법을 검증해 보니 치료효과는 없고 오히려 환자가 사망할 확률을 높인다는 결과가 속속 나왔다.
그 결과 사혈요법은 폐기됐고, 전통을 지배한 엉터리 이론도 과학으로 대체됐다.
이렇게 서양에서는 19세기 무렵부터 전통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통의학을 버리고 현대의학을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사용해 왔다거나 천연물질이라고 해서 한약 등 전래요법에 대해 효과와 안전성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의학계에서는 상식이 된지 오래다.
임상시험 없이는 치료법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것인지, 단지 위약효과(placebo effect) 때문에 나은 것인지, 병이 우연히 나은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임상시험을 해야만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현행 법규 상 한의사는 몇 가지 금지된 한약재를 제외하고는 천연물질이면 똥이든 오줌이든 단지 의사의 영역만 침범하지 않는다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또 제약회사는 동의보감 등 지정된 10종류의 '기성 한약서'에 나온 처방으로 한약제제를 생산하겠다고 신청하면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자료 없이 의약품으로 승인받을 수 있다.
한의학 연구에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인 사용되고 있는 치료법들의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는 일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한의사들은 이미 한약으로 돈을 벌고 있는데 검증을 했다가 안전하지 않거나 효과가 없다고 나오면 더 이상 그 한약을 팔수가 없어 매출이 떨어지고 환자들의 항의에 직면할 수도 있다.
따라서 기존 치료법에 대한 검증은 한방 진료기관이나 한의사 출신만이 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한국한의학연구원에게는 기피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모든 일을 한의사들 손에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주도해서 한약을 검증하고, 검증을 의무화해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한약만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검증에 대한 요구는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0.2%가 모든 한약에 검증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17%는 일부 한약에 대해서라도 검증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검증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당장 한약 판매를 중단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면 최소한 모든 약과 한약에 대해서 허가 과정에서 과학적인 근거를 제출했는지, 임상시험을 통한 검증을 거쳤는지 표기해 환자들의 알고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은 한약을 검증 없이 사용하게 한 현행 법규가 국민의 건강에 대한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해 헌법소원을 제기해 현재 헌법재판소가 심리하고 있다.
위헌 판결이 몰고 올 한의계와 제약업계의 큰 파장이 부담되겠지만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건강권을 지켜줄 용기 있는 판결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이 칼럼은 메디게이트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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