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비중증 구분해 차등보상이 핵심…의료계, 잘못된 중·경증 분류 체계 문제 지적·1세대 보험 가입자 반발도 거세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비급여 과잉 및 의료 남용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실손보험 개편안을 발표한 가운데 의료계가 비급여가 확대된 근본 원인은 고치지 않고 실손보험 가입자인 미래 환자들에게 부정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에 비판을 쏟아냈다.
9일 보건복지부는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정책토론회’를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정부 개편안, '중증 질병·상해' vs '비중증 질병·상해' 구분해 보상내용 차등화 핵심
1부 ‘비급여 관리 개선대책’에 이어 진행된 2부 ‘실손의료보험 개혁방안’에 대해서는 금융위원회 고영호 보험과장이 그간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마련한 개편안을 발표했다.
고 보험과장은 "실손보험의 과다 보장이라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3차례 실손보험을 추진했으나 비급여 관리 수단이 부족한 가운데 비급여 확대, 필수의료 기피 및 건강보험 효과 저해가 지속됐다"며 "실손보험이 필수의료를 강화하는 의료체계와 조화를 이루고 가입자 간 공정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의료개혁특위는 먼저 실손보험의 급여 자기 부담률을 건강보험의 본인 부담률에 연동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동안 실손보험의 급여 자기 부담률은 약 20% 수준이었다.
이에 고 보험과장은 "경증 환자의 상급종합병원 외래 재진이나 권역응급의료센터 이용 등 건강보험이 급여 진료에 20%보다 더 높은 본인 부담률을 부과하는 경우, 실손보험도 이와 동일하게 자기 부담률을 인상하도록 했다"며 "반면, 의료비 부담이 높은 중증‧희귀질환자 등에 대한 보장은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비급여 보장에 있어 오남용 우려가 크고 일부 가입자 혜택 편중이 큰 주요 과잉‧남용 우려 비급여 대상 분쟁 조정 기준을 마련하고, 암, 심뇌혈관, 희귀질환 등 중증 위주 비급여 보장으로 상품을 개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실손보험 가입자의 상위 9%가 전체 실손보험금의 약 80%를 지급 받고 있는 추세 등을 고려할 때, 오남용을 막기 위한 비급여 관리 개선방안과 함께 실시되는 이번 실손보험 개혁은 대다수의 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완화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를 통해 실 보험료 인하효과는 최대 50% 내외로 추산됐다.
의료개혁특위는 약관 변경 조건이 없어 기존 약관이 100세까지 적용되는 초기 실손 가입자 1600만건(전체 44%)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대응책을 강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구체적으로 주요 비급여에 대해서는 심사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하고, 소비자가 원할 경우 보험사는 금융당국이 권고하는 기준에 따라 보상하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고, 소비자 보호를 위해 철회권‧취소권을 보장하는 등 보완 장치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환자가 생각하는 중증·비중증, 실손보험사와 달라…환자 치료에 도덕적 잣대 들이대는 문제 지적
이어진 토론회에서 의료계 인사들은 실손보험 문제 역시 비급여 팽창을 문제로 드는 정부에 문제를 제기했다.
로체스터병원 서인석 병원장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움직인다. 정책 목표가 옳을지언정 도덕성 잣대로 강요하는 정책은 사실 무조건 실패한다고 본다. 현재 건강보험 영역에서 비급여 영역으로 의사들이 이동했다고 하는데 그 시발점은 원가 이하의 저수가에 있다"며 "비급여 팽창에 대해 정부가 원인과 현상을 잘못 구분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 원장은 "묻지도 따지지 않고 가입하라는 실손보험이 이렇게 많이 판매되고 이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3년도 이후에 폭발적으로 판매가 됐다. 다양한 상품이 나오자 2009년도에 표준화 과정이 이뤄졌다"며 "실손보험은 시장 진입 상품으로, 타 보험 상품 판매로 연결하는 마케팅 전략에 사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손해율 부담에도 고객 기반 확대 수단으로 사용된 면이 있다. 그래서 보험사도 문제가 있음을 인지했지만 진작에 이를 개선하지 못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대책은 1세대 보험 가입자가 2009년도 이전, 벌써 20년 이상 된 50대 중후반 연령대인데, 그들은 이제야 슬슬 병에 걸릴 때이다. 그간 실손보험 청구를 안 하는 사람이 60%가 넘는다고 하는데, 과연 그 사람들이 환매해서 넘어가려 할지 의문이다"라고 전했다.
서 원장은 "또 하나는 실손보험은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최선의 진료를 받기 위함이다. 암에 걸려 환부를 노출하기 부담스러워 1인실을 쓰고 싶은 사람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인가?"라며 "실손보험 가입자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해결하지 못 한다"고 우려했다.
대한의사협회 이봉근 보험이사는 "실손보험에서 중증과 비중증 분류 자체가 잘못 돼 있다. 그걸 기본으로 실비보험 지급을 결정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예를 들어 골절 암 환자가 집에 가다 넘어져 팔이 부러졌을 때, 현재로서는 경증이다. 팔에 암이 전이돼 부러졌을 때만 중증이기 때문이다”라며 “그런데 환자들은 이것을 경증 외상이라고 인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유는 중증과 비중증을 나누는 기준 때문이다. 1차 의료기관인 의원급의 진단코드가 많은 것을 다 경증으로 분류했다. 그렇다 보니 환자가 느끼는 중‧경증과 정부가 지정한 중‧경증이 전혀 다르다. 그렇다보니 그걸 기준으로 실비 보험 지급률을 정한다고 하면 굉장히 많은 민원에 부딪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보험이사는 "잘못된 분류체계를 갖고 환자를 중‧경증으로 나누면 환자들은 엄청난 피해를 받게 될 것이다. 팔이 부러진 환자가 어떻게 본인이 경증이라고 느끼겠나"라며 "현재 정부 개편안은 정부 입장에서 개혁이지 환자를 위한 개혁이 아니다. 환자가 손해보지 않는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의료기관 종사자 A씨는 질의응답 시간을 이용해 "실비보험을 보험사가 만든 지 알았는데 알고보니 정부 경제부처 쪽에서 실손의료보험 제도를 만든 것을 알게 됐다"며 "이미 보험회사들은 실비보험으로 많은 돈을 벌어 건물도 짓고, 빌딩도 샀을 텐데 이제와서 개혁을 한다는 것은 기만이고 사기다. 다 보장될 것처럼 가입시켜놓고 비급여의 안 좋은 부분만 부각해서 환자와 의사들을 보험사기 취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A씨는 "최근 2~3년 동안 보험관련 분쟁에 대해 관리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원의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보험사기 누수 방지를 위한 보험사를 대변하는 내용이다"라며 "비급여의 근본 문제는 정부의 무관심이다. 지난해 7월 신의료기술로 비맥주사(무릎 줄기세포주사)가 나왔는데 백내장과 함께 이슈가 됐다. 양쪽을 동시에 200만원을 받는 병원이 있는 반면, 한 쪽에 1000만원을 받는 병원이 있다. 같은 치료이고 같은 재료인데 이런 차이에 대해 관리 감독을 안 하면서 무슨 개혁을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장에는 실손보험 가입자와 단체들이 대거 참석해 명확한 기준 없이 보험료를 사정하고 있는 보험회사와 이를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원의 도덕적 해이를 비판하는 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가입자들은 1세대 보험가입자로서 정부가 내 놓은 개편안이 환자가 아닌 보험회사를 위한 개혁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