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의료기기 영업 사원 등의 대리수술 논란과 동시에 자율규제권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의협은 의료계에 대한 국민 불신을 초래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자율규제란 공동의 관심과 일정한 목적을 추구하는 조직이 구성원에게 조직의 권위와 일정한 권한을 바탕으로 규제와 감독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즉, 규제를 받는 대상이 스스로 규제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의협은 10일 외과계 의사회 및 학회와 함께 발표한 공동 결의문에서 “무자격자의 대리수술을 묵인, 방조하거나 종용하는 회원을 더 이상 우리의 동료로 인정하지 않겠다. 중앙윤리위원회 회부를 통한 무거운 징계를 추진하고, 관련 법규 위반사실에 대해 수사의뢰와 고발 조치를 통해 법적 처벌을 추진한다”고 했다.
의협 등은 “무자격자 대리수술의 실태 파악을 위한 조사를 포함해 이번에 결의한 특단의 대책을 시행해 나간다”라며 “정부는 의료계 스스로 강도 높은 자정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의협에 강력하고 실질적인 자율징계 권한을 부여해 줄 것”을 주장했다.
변호사는 직접 징계, 변리사 세무사는 직접 의결
15일 치과의료정책연구소 연구결과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법률상 전문직업성을 가진 전문가들에게 면허를 통해 독점권을 부여하는 대신 독점권 유지를 위한 자율규제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변호사를 들 수 있다.
변호사법 제10장에 따르면 변호사는 품위손상, 변호사법 위반 등 징계사유가 발생하면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징계위원회에서 직접 징계를 할 수 있다. 변호사는 변호사협회에 등록해야 개업을 할 수 있다. 변호사협회 징계로 최대 영구제명까지 가능한데, 사실상 변호사직 업무가 불가능해진다.
변리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은 변리사법 제16조, 공인회계사법 제48조, 세무사법 제17조 등에서 제시한 전문가 위원회 의결에 따라 독립된 기구에서 징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법은 제65조 면허자격취소처분, 제66조 제1항 면허자격정치처분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이 징계를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의료법 제66조의 2항에 ‘중앙회의 자격정지 처분요구’ 조항만을 두고 있다. 이는 의협이 복지부 장관에게 자격정치 처분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의협회장이 처분을 요구하더라도 대부분 실제로 처분이 이뤄지지 않거나 자격정지 3개월 이내로 알려졌다.
의협 측은 “일부 회원들의 일탈 행위가 있더라도 처벌이 미미하면서 오히려 내부 고발이나 징계를 하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논란이 생긴다. 국민들에게 신뢰를 쌓기 위해 복지부에서 의협으로 자율징계권 이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의협, 아직은 시기 상조 비판에 "국민 신뢰를 위해 필요"
한국환자안전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12일 열린 수술실 CCTV 설치 토론회에서 "현재 대리수술은 국민들이 지켜보는 한계를 넘었다"라며 "하지만 의료계가 주장하는 자율징계로는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의료계가 신뢰를 회복해야 자율징계권 설치에 대한 주장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의료계 내에서도 문제 해결에 앞선 자율징계권 주장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최근 의협은 대리수술 사태를 전문가 평가제 시행 및 자율징계권 획득의 기회로 삼으려 하는 모습을 보여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전문가 평가제와 자율징계권은 오히려 정부 등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다. 의료계 내부적으로 충분한 논의와 안전장치 마련 계획을 세워야 하며 섣불리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특히 최대집 회장이 선거 공약에서 전문가 평가제를 통한 자율징계권을 반대한다고 밝혔고, 이를 기억하는 회원들은 더욱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최 회장은 추무진 회장 집행부 당시 동료를 고발하고 징계한다는 취지의 전문가평가제를 반대했다. 하지만 취임한 이후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의협 방상혁 상근부회장은 “자율징계권이 있어야 의료계에 대한 국민 불신을 뛰어넘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방 상근부회장은 “최 회장 등 집행부가 공약과 달리 입장이 바뀐 것은 맞다. 이는 막상 실제로 의협에서 회무를 해보고 다른 나라 사례를 두루 살펴보면서 자율징계권이 정말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방 부회장은 “기존에는 자율징계권이 없고 일부 회원의 일탈 행위가 있더라도 복지부를 통해 요구를 하다 보니 근본 문제 해결이 어려웠다”라며 “의사사회의 신뢰 회복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율징계권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 부회장은 “회원들을 보호하고 국민 신뢰를 얻고 의료계를 위해서라면 공약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일부 회원들의 반대를 감수하더도 의료계 신뢰 확보를 위해 자율징계권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회원들의 의견수렴을 하면서 반대하는 회원들도 설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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